1968년 12월에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 경부 1구간 준공식이 있었다. 서울~신갈 구간이었다. 그로부터 54년이 지나 용인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고속도로가 준공된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용인구간이다. 경부와 영동, 중부고속도로를 동서로 연결하는 화성에서 출발해 용인을 가로질러 광주로 연결하는 고속도로다.용인구간은 화성시 동탄~기흥 공세동-지곡동-삼가동(서용인IC)-포곡 마성리(서용인JCT)-포곡읍(포곡IC)-양지면 한터-광주 노선이다. 2017년 착공 이후 5년 만이다.2020년 6월 11일, 서용인IC가 있는 삼가동을 중심으
좋은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 성장동력을 만들어나가는 용인 소재 강소기업들. 특례시로서 자족도시를 향한 용인의 미래에도 그 역할에 대한 기대감은 크기만 하다. 선두에는 혁신과 창조, 성장의 상징 강소기업을 이끌어가는 최고경영자(CEO)들이 있다. 이들의 삶과 경영철학 그리고 땀으로 일군 현장모습을 통해 꿈과 용기의 메시지를 공유하고자 기획 지면을 마련한다./편집자신도시와 제조업 공장.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더구나 도시형 지식산업센터(구 아파트형 공장)가 들어서 있는 땅값 비싼 동백‧어정 주변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이곳
용인시가 처인구 첫 공영사업을 시작한 곳은 역북마을이다. 신성‧보성‧금강 아파트인데 합쳐야 채 800세대에 미치지 못한다. 1998년 전후로 지어졌다. 이곳 주변에 역북지구라고 해서 미니신도시가 들어섰는데 사업시행을 용인도시공사가 맡았다. 용인시가 공영개발에 나선 것은 별로 없는데 공교롭게도 역북마을과 역북지구가 해당된다.사업은 잘 됐을까. 역북마을은 첫 데뷔 무대였으니 작게 시작했고, 역북지구는 2008년 금융위기와 맞물리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장기간 토지매각이 안 돼 용인도시공사가 한때 부도위기에 몰리기도 했다.다행히 201
지난 호(1116호)에선 삼봉산에서 바라본 모습을 담았다. 이번엔 드론 촬영을 한 사진이다. 드론을 구입해 이용하기 시작한 즈음인 2016년 10월경이다.용인은 중산간지역으로 너른 들판이 많지 않다. 그나마 대표적인 곳이 백암들과 이동호수 밑으로 이동·남사읍에 걸친 들판이 있다. 하나를 더 꼽으라면 덕성리 들이다. 원덕성과 금현에 걸쳐 있는데 경지정리가 잘 돼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용인테크노밸리 일반산업단지(구 덕성산단)가 조성됐지만 농업진흥구역(일명 절대농지)은 제외해 덕성리 들녘 모습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만들어지면서 터전을
14년 전, 2008년이다. 고향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덕성리에 산업단지가 조성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찬반 입장을 떠나 먼저 든 생각은 기록이었다. 그 때부터 틈만 나면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사진으로 담았다. 마을 전경은 쉽지 않았다. 결국 삼봉산(414m) 정상에 올랐다. 최대한 렌즈를 당겨 담았다. 드론이 없던 시절 얘기다.그 후 이동읍 금현마을은 용인테크노밸리 일반산업단지(구 덕성산단) 조성으로 마을 일부가 수용되었지만 대부분 주민들은 주변으로 집단이주를 택했다. 다행히 일부만 떠나고 주민들은 여전히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나라에 건국신화가 있다면 지역엔 향토설화가 있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선문대할망 설화가 있다면 용인엔 마고할미 설화가 있다. 용인 마고할미 설화의 배경이 할미산성이다. 선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베개 삼아 잠을 이뤘다는 것처럼 마고할미는 하룻밤 사이에 치마폭에 돌을 날라 성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둘 다 전형적인 거인(巨人)설화 또는 대모(大母)설화의 일례로 볼 수 있다.할미산성은 설화뿐만 아니라 성벽이 현존하는 관방유적으로도 용인을 대표한다. 위치는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로 둘레가 651m, 면적 7만3504㎡(2만2274평)으로 비교적 낮
저자 이건영(69)씨는 전 시의원 직함 보다 환경활동가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만큼 오랫동안 전력을 다해 행동으로 경안천 살리기에 매진한 결과다. 그가 3선 시의원까지 선출직 공직을 역임하다 보니 더러는 순수성을 의심할 만도 하다. 그러나 지칠 줄 모르고 경안천 살리기에 쏟은 그의 열정을 보아 온 터라 삐딱한 시선은 찾아보기 어렵다.그가 이번에 다시 두 번째로 자신의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지역 일을 중심으로 책을 썼다. 제목이「경안천에서 경강선까지」인 이유도 개인사보단 지역사회에 참여해 일을 하면서 겪었던 일화와 못 다한 이야기
서울에는 흔하지만 용인엔 흔치 않은 것이 산동네다. 특징을 살펴보면 대개 무허가촌으로 구성돼 있다. 또 도로망이 가파르고 무질서하며 도시기반시설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차량 접근도 어렵다. 하지만 도심과는 가깝다. 이 같은 특징은 도시 형성과정에서의 빛과 그늘이라 할 수 있다.즉 사람들은 일거리가 많고 생활터전을 제공해 주는 도시로 몰리게 되나 소득수준 등에 따라 거주지는 갈리게 된다. 소득이 일정하지 않거나 소득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주로 불가피하게 도심 속 변두리에 자리를 잡게 된다. 과거 이들을 사회학적 용어로 ‘도시
1996년 즈음으로 기억된다. 용인향토사학자 고 박용익 선생과 한국민속촌 방향에서 기흥구 지곡동으로 산길에 다름없는 고개를 넘어간 적이 있다. 고갯마루에서 본 광경은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뜻 밖에도 산 아래 너른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피난골이란 이런 곳이구나!’ 싶었다. 당시 올라섰던 곳이 ‘사은정고개’였다.불과 몇 해 만인 2000년 들어서 마을은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는데, 바로 지방도 제315호선 개통이다. 기흥구 서천동-상하동 노선으로 국도 42호선 효자고개 부근과 연결되는 도로다. 이로 인해 마치 울타리를 개방한
도로망이 촘촘해지면서 터널도 늘고 있다. 용인에서 운치있는 고갯길을 가자면 처인구 곱등고개나 양지면 정수리와 한터를 연결하는 정수고개 정도다. 편리성과 안전성을 우선하는 요즘 사회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고 생태환경 관점에서 봐도 고갯길을 넓히는 것보단 낫다. 하지만 마음 한편의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문수산터널은 이동읍 묵리 굴암골과 원삼면 학일리 고초골을 연결하는 터널이다. 터널의 완성은 주변을 바꿔 놓았다. 전원주택지가 급격히 늘고 교통량도 많아졌다. ‘고초골’하면 용인에서 대표적인 오지(奧地)로 통했다. 고초골이 천주교 박해시
대학은 한 도시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흔히 대학도시라고 한다. 용인에는 1980년을 전후로 여러 대학 캠퍼스가 자리 잡았다. 강남대학교도 그 중 하나다. 요즘은 ‘강남마을’로 더 익숙해졌다. 1990년대 말 기흥구 구갈동 일대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됐을 때 이곳을 ‘구갈 3지구’로 불렀다. 경기도시공사(현 GH경기주택도시공사)가 개발주체였다. 예나 지금이나 지상의 모든 구조물을 남김없이 밀어내고 고층아파트를 짓는 개발 방식은 거의 대부분 원주민들과 갈등과 충돌을 동반한다.그러나 보니 개발사업자 측은 용역깡패를
앞으로 지방문화원이 지역학 중심지로 육성되고 지역생활사 등 다양한 지역 삶의 모습을 기록하는 등 기억저장소 기능이 강화될 전망이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 이하 문체부)는 지난 달 22일, 사회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지방문화원 지원·육성에 관한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을 발표했다.이 계획에 따르면 지방소멸 위기 속, 고유문화를 보존해 온 지방문화원 역할의 지속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전국 231개 지방문화원에서 ‘문화학교’ 등 고유 문화프로그램을 통해 지역문화 진흥과 주민 문화향유권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하지만 지역문
부아산(402.9m)과 동쪽에 있는 함박산(349m) 사이에 학고개가 있다. 용인대학교와 처인구 이동읍 서리 사이를 넘나드는 고개다. 학의 날개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예전엔 ‘하고개’라 했는데 오늘날의 도로와는 다른 상상력으로 봐야 한다.무네미고개(천리 노루실-남동 경계)와 함께 용인 남-북을 연결하는 주요한 교통로로써 한양가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즉 멀리는 평택이나 오산 등지에서 남사를 거쳐 서리 하반, 중덕 상덕마을을 지나고 하고개를 넘어 삼가동 궁촌마을과 메주고개를 거쳐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이었다.한
명지대학교 산학협력단(단장 김영욱)은 2021년 연말 및 성탄절을 맞이해 용인시 관내 취약계층 아동을 대상으로 물품을 후원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2020년부터 매년 진행하고 있는 이 행사는 수집방식이 독특하다. 산학협단관 건물 1층 로비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고 그 밑에 입주 기관들이 자발적으로 나눔 선물을 놓도록 유도한 것이다.2주간 공지를 한 결과 문구, 의류, 간식, 서적, 보드게임, 영양제 등 다양한 품목이 쌓였다. 재능기부를 약속한 기관도 있었다. ㈜명지대학교 기술지주회사 자회사인 ㈜스위머스(써브마린, 대표이사 노유석)은
위 사진은 2004년 1월 1일 아침 용인시청사와 의회 청사 모습이다. 당시 용인문화복지행정타운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준공을 거쳐 입주 시기는 2005년 6월 말경이다. 18년이 지나 다시 같은 구도로 담으려하니 주변 가로수가 숲을 이뤄 어려움이 있다.용인의 행정구역 체제는 몇 차례 변화가 있었다. 1895년 을미개혁 당시 지방관제 개편원칙에 따라 ‘용인현’에서 ‘용인군’으로 바뀌면서 군청은 당초 읍내면(현 구성동사무소)에서 수여면(현 처인구 4개동) 소학동으로 이전하게 된다. 현재 김량8구역 재개발 사업지 주변으로 정확한
용인이씨는 용인지역의 관향 성씨로 원래 용구현(龍駒縣)의 토성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고려개국에 일조한 이길권을 시조로 하는데 당시 시조는 용인지역 토호(土豪)였다. 요즘 토호라는 개념엔 부정적 의미가 담겨있으나 당시엔 향촌에 토착화한 재지사족(在地士族)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위 사진은 1918년 음력 11월 27일 당시 용인군 포곡면 가실리 청백리공 산소 시향 모습이다. 청백리공은 이백지(1361~1419)로 중시조 구성부원군 이중인의 손자다. 이중인은 조선 건국에 참여하지 않고 은둔을 택한 ‘두문동 72현’ 중
마을숲은 비보풍수(裨補風水)의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 선조들은 마을 입구가 훤하게 열리면 바람 갈무리가 안 되고 나쁜 기운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없다고 봤다. 따라서 마을입구에 숲을 조성하거나 장승 등을 세워 나쁜 기운을 막고 바람과 홍수도 막아주며 마을을 보호하고자 했는데 이를 수구맥(막)이라고 한다.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 가마실은 마을숲이 잘 보존돼 있었다. 밖에서 보면 겨울에도 거의 동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나무가 정렬돼 있었다.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가마실 마을숲의 대단한 가치를 자랑스럽게
용인사거리는 근·현대화 과정에서 용인 중심을 상징하는 장소다. 근대적 도로의 시작은 1908년 수원-용인-여주를 잇는 신작로라고 볼 수 있다. 이 도로 개통으로 그간 용인 중심 길 역할을 해왔던 영남대로는 축소되고, 대신 42번 국도가 교통상 중심축이 됐다. 더불어 용인의 치소(행정소재지)가 구성 언남동에서 김량장 소학동으로 옮기게 되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한편으론 횡축 도로가 용인사거리를 지난다. 45번 국도다. 평택-안성—용인사거리-광주-서울로 연결됐는데, 과거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서울로 가는 길은 주로 광주를 거쳐 천호동
용인 보정동 고분군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2년이다. ‘용인시의 역사와 문화유적’이라는 책자발간을 위해 현장조사에 나선 김충배(국립 고궁박물관) 박사에 의해 발견됐다.이후 여러 차례의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해 신라의 지방에서 운영된 대규모 고분군으로서 실체가 드러나게 됐다. 급기야 2009년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제500호)으로 지정됐고 2015년 종합정비계획이 수립된 이후 현재까지 순차적으로 6차에 걸친 학술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다.이런 가운데 용인시가 3일 경기도박물관 강당에서 ‘용인 보정동 고분군 발굴성과’라는 주제
유난히 찬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던 지난 1일,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되는 원삼면 사업대상지 일대를 찾았다. 독성리와 죽능리는 물론 원삼면 소재지 고당리에서 요즘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어지러울 정도로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과 여기저기 들어선 부동산 중개업소다.가을걷이가 끝나고 기온마저 많이 떨어져서인지 오가는 이 없는 황량한 벌판을 잠시 걸어본다. 흔들리는 현수막의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독성리 소재 가까운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들어섰다. “토지거래야 뭐 지금 다 막아놔서 없다고 봐야하고. 호가만 올랐어요. 요즘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