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기업을 이끄는 CEO열전│임갑순 비룡전자 부사장

좋은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 성장동력을 만들어나가는 용인 소재 강소기업들. 특례시로서 자족도시를 향한 용인의 미래에도 그 역할에 대한 기대감은 크기만 하다. 선두에는 혁신과 창조, 성장의 상징 강소기업을 이끌어가는 최고경영자(CEO)들이 있다. 이들의 삶과 경영철학 그리고 땀으로 일군 현장모습을 통해 꿈과 용기의 메시지를 공유하고자 기획 지면을 마련한다./편집자

비룡전자(주).(주)이파람 사업장 전경
비룡전자(주).(주)이파람 사업장 전경

신도시와 제조업 공장.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더구나 도시형 지식산업센터(구 아파트형 공장)가 들어서 있는 땅값 비싼 동백‧어정 주변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이곳을 지키며 21년째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 비룡전자(주)와 ㈜이파람이다. 무려 1만 2948㎡(4316평)의 터전에 자리잡은 국내 굴지의 기술기업 비룡전자(주). 이곳에서 생산하는 주요 제품은 단자대, 다시 말해 터미널 블록(TERMINAL BLOCKS)과 사출 프레스/ 금형제작이다. 한편 센서사업부에선 자동차 스피드 휠 센서(SPEED WHEEL SENSOR)를 만들어낸다. 그 밖에도 각종 전기·전자부품까지 생산하는 자랑스런 용인의 선진기업이다.

# 강소기술기업 주역으로 우뚝 선 여성기업인

임갑순 부사장
임갑순 부사장

대한민국은 여전히 제조업 강국으로 꼽힌다. 그러나 인력수급의 어려움은 물론 각종 규제와 기업 수익률 약화로 제조업 경영은 가장 힘든 영역으로 꼽히는 요즘이다.

더구나 여성기업인으로선 더욱 어려운 분야임에 틀림없다. 실외기 없는 수냉식 차세대 에어컨 개발 생산으로 유명한 ㈜이파람 대표이사이면서 냉난방기 관련 부품 조달업체 에코윈드 대표를 겸하고 있는 임갑순 부시장. 임 부사장은 남편 정창교 대표이사와 함께 처음부터 생사고락을 함께 한 사업 파트너이자 당당한 주역이다.

그 시작은 1989년 안양1동 진흥상가의 허름한 지하상가였다. “열처리 사업장에 다니던 남편(정창교 대표이사)이 어느 날 자동제어 회사로 옮기고 1년 정도밖에 안되었을 때였죠. 갑자기 사표를 내고 사업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걱정이 앞섰죠. 그래도 워낙 우직한 남편을 믿었기에 전셋돈 900만원을 월 3만원 사글세방으로 옮겨 초기 사업자금을 마련했어요. 사실 처음엔 사업이라기 보단 부업이었죠.”

그랬다. 사출물을 가져오면 상을 펼쳐놓고 볼트를 결합해 회사에 납품하는 가내수공업이었다. 이웃 아주머니들이 직원(?)이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정시 출퇴근하는 직원이 28명까지 불어났을 때 그녀는 잠시나마 아내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 공부와 봉사, 인생 내적 성장의 디딤돌 되다

그에겐 두 가지 갈증이 있었다. 제대로 된 엄마노릇 그리고 학업에 대한 열망이었다. 삶에 떠밀려 미뤄두었던 공부를 뒤늦게 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배움은 엄청난 에너지와 또 다른 내면적 성장의 디딤돌이 됐다. 당당히 대학 졸업과 함께 멈추지 않는 학구열은 대학원까지 마쳤지만 지금도 여전하다.

또 하나의 과제였던 엄마노릇은 또 다른 인생의 새로운 가치를 채우는 세상으로 그를 인도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간단한 봉사활동에 동참했는데 참 재미있고 의미가 있었어요. 신나서 열심히 했죠.” 이를 눈여겨 본 사람들이 있었다.

주위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아 단위 학교를 넘어 결국 89개 학교를 총괄하는 경기도 학부모봉사단 총단장까지 맡게 됐던 것. 급기야 활동범위가 학교 담장을 넘어 지역사회와 세계로까지 뻗어갔다. 세계 취약 아동·가정·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함께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가는 글로벌 NGO, 월드비전 활동도 그 중 하나다.

임 부사장은 아프리카 대륙 가나 어린이들 정기후원을 계속하는 한편 해외봉사 활동까지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후원봉사 활동은 EBS ‘나눔 그 후’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다. ‘어둠을 탓하기 보다는 한 자루의 촛불을 켜라’는 정신을 바탕으로 리더십 교육과 사회실천을 강조하는 크리스토퍼 평생교육원 안양지부에서 10년 간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이익금 2%를 장학기금으로 기부하는 ‘음성꽃동네’ 장애복지 지원 활동과 수원과 안산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돕기 등 주위를 살피는 일은 어느 새 생활의 한 축이 돼 있었다.

이파람 제품
이파람 제품

# “IMF 위기, 뒤집어 생각하고 도전하니 기회 찾아와”

봉사활동과 공부의 열정을 불태우며 제2의 인생 성장기를 내달렸던 10년의 시간이 흐를 무렵, 그는 다시 회사로 돌아와야 했다. 그동안 사업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IMF 외환위기는 회사에도 직격탄이 됐다.

“직원 한 사람이 퇴직하면 가족 4명의 생계가 흔들린다는 생각을 했죠. 남편은 밤잠을 제대로 못 이루더라고요. 결단을 내렸죠.”

위기 극복 방법은 격일제 근무였다. 급여는 20%만 줄이기로 하고 직원들의 의사를 물었다. 대신 회복되면 밀린 급여를 100%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같이 어려움을 극복하자며 직원들이 동참했다. 임 부대표는 당시 적자를 메우기 위해 운전이라도 할 요량으로 면허도 따고 학교 급식일도 했다. 이렇게 1년 6개월을 버텼다. 거래처였던 엘지산전에 공급 망이 다시 확보되면서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어려운 시기를 버티어내니 뜻하지 않은 기회도 왔다. 바로 용인에 터전을 마련하게 되는 우연이었다. 때는 2000년 어느 날이었다.

“모 은행을 거래처로 하는 상공인 모임에서 정보를 들었어요. 용인 기흥에 공장이 있는데, IMF 사태로 부도난 상태이니 인수해 볼 의향이 없냐고요. 은행지점장과 현장을 방문하고 대출지원을 요청했더니 계약금 이후 중도‧잔금은 은행에서 해결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더군요. 사실 마음에 들었거든요. 저는 그 때 인생에 찾아오는 세 번의 기회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함께 자리한 비룡전자 정창교 대표이사의 회고담이다.

비룡전자가 당시 인수한 공장 터와 건물은 후일 국제투기자본으로 악명을 떨쳤던 ‘론스타코리아’ 수중에 있었다. 외화 유입에 목 말라했던 정부는 외국자본에 세금을 면제해 주던 시절이었다.

비룡전자가 생산하는 단자대(터미널 블럭)제품
비룡전자가 생산하는 단자대(터미널 블럭)제품

# 봉사와 기업경영인의 균형적 삶…CEO의 새로운 모델 제시

용인에서의 새로운 도전은 봉사활동에 빠져있던 임갑순을 다시 회사로 돌아오게 했다. 2014년이다. 비룡전자의 성장과 더불어 새로운 영역으로의 사업확장이 계기가 됐다. 실외기 없는 통합형 워터컨 및 원터치 탈착식 이동형 에어컨으로 잘 알려진 ㈜이파람 대표이사를 맡게 된 것이다. 동시에 벤처기업 에코윈드 대표이사도 겸하게 됐다.

초창기부터 회사 사정을 훤히 알고 있었던 터라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었다. 그간 밖에서 갈고 닦은 경험과 실력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관은 회사에 새로운 문화를 심어나갔다. 다수의 외국인노동자가 일하는 일터이기에 기숙사까지 전면적인 환경개선에 힘썼다. 경영뿐만 아니라 작업 현장에서 같이 땀을 흘리는 일도 많았다. 외국인 노동자 이름까지 외워 스스럼없이 대했다.

“크리스토퍼 교육의 힘이 컸어요. 그리고 보다 세심하게 두루 살피는 감성적 접근은 여자들이 낫고요.” 이 같은 노력은 ‘착한 기업 선정’ 등 크고 작은 각종 수상으로 이어졌다. 최근엔 용인상공회의소 여성기업인협의회 회장까지 맡으면서 여성경영인들의 리더 역할까지 걸머졌다.

봉사활동가와 기업경영인의 경계에 서 있으면서도 소홀함이 없는 균형적 삶을 즐기는 임갑순 부사장. 그는 이렇게 말한다. “33년간 남편과 함께 기업을 일구며 성취감을 느꼈지만 봉사는 마음을 근육을 살찌우는 내 삶의 에너지가 돼왔죠. 어느 것을 포기할 수 있냐고요? 아뇨. 보다 너 나은 세상을 향해 가는 두 축의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라서 어느 것도 내려놓을 수는 없어요.” 굳은 신념이 감동으로 전해져 온다.

용인상공회의소 여성기업인협의회, 5대 회장 취임한 임갑순 부사장

용인을 대표하는 여성기업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용인상공회의소(회장 서석홍)에 가입된 기업들 가운데 주로 제조업을 경영하는 여성CEO들 모임으로 용인상공회의소 여성기업인협의회다. 지난 2월 14일 여성기업인협의회 제4대 이임식과 5대 회장 취임식이 있었다. 이날 (비룡전자(주) 부사장이자 (주)이파람/(주)에코윈드 임갑순 대표이사가 회장으로 취임했다.

전국 최초로 지역상공회의소를 이끌었던 이순선(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성창베네피나 대표이사가 초대 회장이기도 하다. 현재 용인에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여성CEO 31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임하게 된 김은미 4대 회장(남영산업대표)을 비롯해 밀폐용기 캡 생산 최강자 기술로 우뚝 선 일등기업 금명산업(주) 박길숙 대표이사 등 기라성 같은 여성기업인들이 역대 회장을 맡으며 이 조직을 이끌어왔다.

임갑순 회장은 취임사에서 먼저 선배들의 열정과 이룬 성과에 대해 고마움을 전했다. “그동안 용인여성기업인협의회의 발전을 위해 디딤돌이 되어주신 훌륭한 선배 회장님들의 노고와 업적이 오늘을 만들었지요. 여성기업인들이 치열한 산업현장에서 경쟁하는 것은 몇 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진심으로 존경스런 마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내‧외빈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임 취임회장은 평소 생각했던 3가지의 비전을 밝혔다. 첫째, 품격있는 여성기업인단체로의 더 나은 발전이다. “사업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기회 제공 등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경쟁력이 있어야 판단 때문이었죠.” 그 다음으론 화합하는 여성기업인협의회를 만들겠다는 다짐이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성화되고 있긴 하지만 여성에겐 유리천장이 여전히 존재하지요. 특히 제조업 등 일반 산업 현장에서 여성이 CEO를 꿈꾸는 것은 쉽지 않죠. 따라서 화합과 활발한 소통을 통해서 이해 폭을 넓히고 긍정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여성경영인의 견실함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세 번째는 힘있는 여성기업인협의회가 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저의 임기동안 회원배가에 중점을 두렵니다. 공동대응의 단결력을 바탕으로 한 존재감이 있어야 보다 업계와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과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동시에 회원 기업 상호간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해서 상생발전도 필요하고요.”

평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봉사를 강조하는 그답게 ‘아는 것이 힘이 아닌 실천이 힘’임을 강조하는 가운데 마지막 멘트는 역시 여성기업인의 소명의식이었다. “소프트 리더십이 기업경영에서도 꼭 필요한 시대가 열리고 있어요. 이럴 때 먼저 이 길에 들어선 여성기업인들의 역할이 중요하죠. 단합된 힘과 능력으로 기업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꼭 보여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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