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섣달에 드는 동짓날은 음기가 가득한 세상에서 미약하게나마 새로 양기가 싹트는 첫날이다. 세찬 바람이 부는 겨울 추위가 혹독하고 길지라도 따스한 봄을 기다리는 첫날이다. 시인 이성부가 『창작과 비평』(1974)이 발간한 시집에서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이라고 말한 것처럼.조선 후기 숙종은 ‘동지(冬至)’라 쓴 어제시(임금이 지은 시)에서 “동짓날 미세한 양기가 땅 아래에 돌아오니, 천지간에 생기가 온화하게 열린다네. 움직이는 곳에서는 일찍이 안정하여 기르지 못하니, 어찌 능히 큰
슬픈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유가 있느냐 없느냐를 넘어 슬픈 감정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든지 하는 특정한 사건 사고로 인해 나타난다. 슬퍼해야 할일에 슬픔을 느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심리 현상이다. 이런 감정을 극복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걸리거나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어느 때는 다시 슬픈 감정에 젖어들 수도 있다.슬픈 감정을 치료하는 데는 약도 없다. 슬픈 감정과 우울증을 구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슬픔은 곧 사라지지만, 우울증은 치료하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유 없이 시달리는 우울증과 달리 슬픔은
2008년 몰운대 문학축전에서 강원도 정선 출신의 강기희 작가는 “내 눈에 핏발이 붉게 선 것은 모두 화암팔경을 활활 태우는 단풍 불이 옮겨붙었기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이말 한마디로 단풍 드는 계절을 집약했다.고려의 계관시인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능파정기〉에서 “화가는 그 대체만을 형상할 뿐이다. 아무리 잘 그린다고 해도 그 단청이 능히 진상과 같지 못하다”라며 단풍을 직접 보는 것을 좋아했다. 조선 전기의 서거정은 문경 주흘팔경에서 “푸른 벽에 빨간 단풍 빨간 잎이 푸른 벽을 장식하니, 강산이 아주 딴판이로구나. 내가
밤낮의 길이가 똑같은 추분(秋分)을 지나면서 여름도 강남으로 갈 채비를 한다. 길었던 장마도, 잠 못 이루게 90데시벨(㏈)로 울어대던 외국산 매미도 지쳤는지 쏴~아 하던 울음도 잦아들고, 귀뚜라미 소리도 들린다.또 아이스께끼와 차갑게 얼린 찹쌀떡의 야식 맛은 망개떡으로 바뀐 도시의 밤과 달리 산야는 가을꽃으로 장식된다. 모진 여름 뒤에 찾아온 향기로움은 ‘남쪽에선 과수원의 능금(林檎)이 익는 냄새, 서쪽에선 노을이 타는 내음. 산 위엔 마른 풀의 향기, 들가엔 장미들이 시드는 향기.당신에겐 떠나는 향기, 내게는 눈물과 같은 술의
요즈음 날씨에 관한 정보는 과학적이다. 인공위성을 이용한 기상관측은 세밀함을 넘어 내일을 예측하게 한다. 그래서 날씨 정보는 달력, 시계와 같이 우리의 일상을 가리키는 나침반과도 같다.때때로 어른들은 팔다리가 쑤시고 아플 때면, 비가 온다고 했다. 이제, 호랑이 담배를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됐다. 그래도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이 생겨나곤 한다. 그중에 잘 알려진 내용은 미국의 작가 로저 젤라즈니가 1993년 출간한 소설 《고독한 시월의 밤》에 실린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시월의 마지막 날’이란 제목까지 덧붙인 젤라즈니의 글은 “음악
최근 소나기가 빈번하다. 곧, 유월 장마가 시작될 모양이다. 굳은 땅에 물고랑이 생길 정도이니 때 이른 장마와도 같다. 혹여 기후변화의 징후라면 심상치 않다. 하지만 비 온 뒤 산사는 참 맑다. 깨끗함을 넘어 청량감마저 준다. 때마침 불어온 하늬바람은 산사의 즐거움을 더 한다.한여름에나 즐길법한 느낌이다. 이 해맑음은 1952년 발표된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에 그려진 순애보와 같은 청초함을 비켜설 만큼 순수하다. 몇 호흡으로 받는 신선한 기운은 온몸을 깨끗하게 하고, 정신까지 맑게 한다.산사의 즐거움이 아니라 자연과 가까이하는
우리 조상들은 가는 세월을 ‘깐깐 오월・미끄덩 유월・어정 칠월・둥둥 팔월’이라 불렀다. 농경문화의 절기에 대한 표현이다. 보리타작과 모심기에 쉴 틈이 없다고 깐깐 오월, 벼 심은 논길에 자꾸 미끄러진다고. 모기와 더위에 씨름하다가 잠 못 이루면서 지나간다고, 곡식 익는 계절을 일컫는 말이다.그 시작은 오월이다. 어린이날・어버이날・스승의 날 등이 있어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또 청소년의 달이라서 지갑을 열고 지출이 많은 달로 꼽힌다. 48개 기념일이 5월과 겹쳐 있다. 1886년 5월 1일 미국에서 시작된 레이버데이(Labor Day
지금, 모든 산과 들판은 꽃밭이다. 천상의 화원도 우리가 이맘때 보는 광경일 게다. 그저 느끼고 못 느낄 뿐이다. 광활한 산야의 야생화 천지가 아니라도, 잘 꾸며진 화단 속이 아닐지라도 담 밑 틈에 핀 한 줄기 민들레가 보여주는 세계다.어느 곳에 있을지라도 잘났다 못났다고 서로 시샘, 원망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꽃피운다. 벌과 나비 곤충들은 찾은 꽃에 꽃분이 없으면, 또 다른 꽃에 날아다니는 데 만족한다. 그야말로 자연스럽다.뭇사람들은 이것저것을 비교할지 몰라도 풀과 나무는 봄날 자양분을 얻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다. 누구에게 사
올 한 해도 벌써 석 달이 지나가고 있다. 다시 세운 꿈과 희망을 펼치기도 전에 두 달이 훌쩍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지나간 시간만이 아니라 수십 년의 세월이 사라진 것만 같은 기분이다.지금, 지나버린 세월이 아쉬워 누구에게 하소연하는 것도 아닌데, 세월의 속도가 너무 빨라 그 속도감에 간혹 주눅마저 들 정도다. 이 세월마저도 자연의 이치일진대, 어찌 가는 세월에 무어라 할 수 있을까마는.음력 이월이라 그나마 위안을 얻고, 지나간 세월의 무상함을 이겨낼 용기를 가져본다. 생명이 약동하는 춘삼월에 푸른 별, 지구를 놀이터로 삼아 주어
매년 12월 하순에 드는 동지(冬至)는 ‘겨울에 이르렀다’는 의미이고, 동지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다. 일 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 “동지섣달 긴긴밤에”라는 황진이의 노랫말이 상징적이다.거꾸로 생각해보면, 동지 다음날부터 밤이 짧아지고 낮이 처음 길어진다는 점에서 ‘태양이 새로 태어나는 날’인 셈이다. 태양 기준의 양력과 다르게 달의 운동을 기준으로 날짜를 정한 음력에서 동짓날이 한 해의 첫날이다. ‘작은 설(亞歲)’이라 부르게 된 까닭이다.동짓날은 ‘양력 기준으로 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설날과
다가온 겨울에 대한 익숙한 그림으로 ‘세한도(歲寒圖)’가 회자된다. 조선 말기 추사 김정희가 1844년 제주도 귀양살이할 때 그린 세한도는 “한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라는 의미다.소한(小寒)이 지나면서 눈 내리고 추운 날씨에 소나무의 푸르름이 더 빛난다는 뜻이 담겨 있다.네그루의 나무와 집 한 채만을 묘사하고 주변은 텅 빈 여백으로 남긴 채 차가운 겨울의 모습을 표현한 수묵화 ‘세한도’는 중국 청나라 명사들의 제영(題詠)과 우리나라 정인보, 이시영, 오세창 등에게서 받은 발문까지 덧붙여
가을은 햇볕(火)이 쬐여 벼(禾)를 거두는 때라는 뜻이다. 그 의미는 기원전 1200년 즈음에 처음 등장한 갑골문자로 메뚜기를 그린 형상이다. 결실을 앞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메뚜기를 잡기 위해 불을 피운 모습이다. 고대 농경사회와 달리 현대인들에게 가을은 풀이 마르고, 나뭇잎이 떨어지는 시기이다. 또 이파리에 오색 단풍이 드는 때를 말한다.절기상으로 입추(立秋)로부터 입동(立冬) 전까지 기간이다. 양력 8월 초부터 11월 초까지인데, 기상학상으로 9일간 하루 평균 기온의 이동 평균이 섭씨 20도 미만으로 떨어진 뒤 다시 올라가지
가을의 첫날인 처서(處暑)가 지나고, 백로(白露)부터는 가을 기운이 완연하다. ‘하얀 이슬’이라는 뜻의 백로 때에는 일교차가 크다. 또 밤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 이슬이 맺히기에 붙은 이름이다.요즘엔 절기 백로의 느낌보다 잠 못 이루도록 쏴~아 하던 외국산 매미의 70㏈ 크기 울음이 대부분 사그라들고, 밤사이에 귀뚜라미 소리가 더 잘 들리는 시기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그다음 맞이하는 명절은 추석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추석이면,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습니다”라는 뉴스의 첫 머리말이 나왔다. 그 후엔 “김포공항에
흔히 ‘피서 간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강더위(비 없이 내리쬐는 더위)가 쨍쨍한 곳으로 가는 것은 피서일까, 휴가일까. 정답은 여름휴가다. 재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어떤 이는 자신의 체력을 고갈하는 일도 있다.피서는 말 그대로 “더운 날씨를 피한다”라는 뜻이다. 뜨거운 햇살을 피하는 일로 무더위(습도가 있는 더위)가 넘실대는 바다 해수욕장으로 가는 속셈은 무엇일까. 예로부터 나무 그늘이나 바람이 불어오는 계곡 정자에서 강더위를 피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피서법이었다. 여기에 더해 수박과 참외 등 여름 과일을 먹는 즐거움은 피서의
우리나라 6월의 하늘은 잿빛이다. 숭고한 호국 영령들을 추념하는 향연(香煙)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또한 6월 6일 현충일부터 6월 25일 전쟁 발발일까지 추모와 보훈의 정신으로 가득 채워진다.이런 이유는 1950년 6월, 세계사적으로 보기 어려운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시작됐다. 누구나 생각하기조차 싫은 6·25전쟁은 처음부터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이데올로기 전쟁이면서도 민족 내부의 전쟁이었다. 미국과 구소련이라는 양대 냉전 세력에 의해 전쟁이 유도됨으로써 결국, 우리나라 전쟁인 동시에 세계 전체의 전쟁으로 인류 공동의 전쟁이
지난 2월 1일 동남아시아 미얀마에 군부 쿠데타가 발발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미얀마의 현실은 그와 정반대다. 쿠데타가 발발한 지 7일부터 미얀마 양곤, 만달레이 등 전역에서 일어난 저항시위가 대규모로 이어지고 있다.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표식을 하며 군부독재 거부에 맨몸으로 맞서고 있다. 미얀마 전국에 통행금지와 계엄령을 선포한 군부가 총칼로 저항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있다. UN 등 국제사회가 연일 비난의 목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계엄군의 폭력진압으로 사망한 미얀마 국민이 40명을 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
까치설날에 입었던 설빔인 한복이 다시 옷장으로 들어갔다. 한복은 거의 1년에 두세 번 정도 차려입는 옷으로 변한 지 오래다. 아니면 고궁 갈 때 약간의 이득을 보려고, 또 예쁜 사진을 찍기 위해 입는 옷 정도로 변모하고 말았다.1980년대까지만 해도 설빔은 설날에 처음으로 입는 옷이었다. 비록 예쁜 한복이라 하더라도 두툼한 겨울옷과 양말이 아이들의 설빔이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말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할 테지만, 그땐 새 옷 입은 들뜬 마음이나 기쁨으로 한 해를 거뜬하게 지냈다. 새 옷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느라
올해에는 12월 21일이 동짓날이다. 음력으로 보름 가까이 일찍 드는 셈이다. 24절기의 하나인 동지(冬至)가 들어 있는 달을 동짓달이라고 한다. 동절(冬節)·교동(交冬)·하동(賀冬)·소한절(消寒節) 등으로 불리는 동지가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혹은 ‘애기동지’라고 한다.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하순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 불린다. 섣달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끝 달인데, ‘설’과 관련이 있는 달이다. 섣달이 지나면 바로 새해가 시작되는 설날이 되므로 그 의미를 살려서 섣달이라고 했다. 조선 중기 황진이는 개경
이번 가을은 빨리 지나가서 찰나의 계절과 같다. 기원전 6세기 공자는 에서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라 했다. 몹시 만나고 싶은 마음에, 15분쯤 되는 한 시각이 세 번의 가을처럼 길게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삼추가 여일각이라고 해야 할 만큼 짧아진 가을이다. 가을철 석 달은 만물이 성숙해 결실을 보는 시기이다. 하늘 기운은 맑고 소슬해지고, 땅의 기운은 서늘해지며, 만물의 색이 변한다. 일찍이 공자는 에서 “하늘에는 사시가 있으니, 봄·여름·겨울·가을과 바람·비·서리·이슬이 가르침이 아닌 게 없
지금은 트로트 노래가 호황을 맞았다. 며칠 전 유명 톱가수의 공연에 이르기까지 트로트 복고풍이 그야말로 대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상처 입은 국민을 위무하는데, ‘미스터 트롯’이 일조를 했다. 갑갑한 심정에 흥을 일으키고, 답답한 실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뿐인가. 제2, 제3의 트로트 지망생이 나타나고, 유사 방송프로그램까지 등장할 정도다. 기나긴 무명시절과 어려운 환경과 마주해온 젊은이들이 부르는 트로트는 모두에게 ‘사이다’ 같은 맛과 흥을 갖게 했다. 우리가 지금, 트로트 노랫말에 열광하는 것은 시대적 아픔을 같이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