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國葬)은 나라에 공로가 많은 사람이 죽었을 때 국비로 지내는 장례를 말한다. 비슷한 말로 국민장이 있다. 국민장은 국가와 사회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이 죽었을 때 국민의 이름으로 치르는 장례를 말한다. 이때 경비 일부를 국가에서 보조하기도 한다. 국장은 정부 명의로, 국민장은 국민 명의로 엄수된다는 점이 국장과 국민장을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장으로 장례를 치렀다.그러나 국장, 국민장의 대상을 구분하는 판단 기준이 뚜렷하지 않았던 터라 논란이 된
경동열차는 지금의 수여선이다. 지금은 철도가 없어지고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으니 수여선이었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경동철도는 수원에서 여주를 연결했고, 수원과 인천을 잇는 수인선까지 함께 운행했던 회사였다.우리나라의 유일한 협궤열차로 남아 있었으나 도로교통의 발달로 적자를 견디다 못해 1972년 폐선됐는데 용인의 경우 경전철이 당시 수여선의 노선과 비슷한 경로를 지나고 있다.기사는 용인역을 출발한 경동철도주식회사의 25열차가 기관수 김봉호가 운전해서 용인역에서 약 7㎞되는 멱조현터널을 통과하다가 기관차 연통에서 불똥이 튀어서
‘용인군 지방에서는 근년에 보기드믄 대풍이라고 하는데 집 한 칸 의지하지 못하고 파산되는 자가 예년에 비해 훨씬 많다고 하는데, 내용인 즉 재작년부터 계속된 흉년으로 계속돼 온 농채와 농사지으며 사용된 금비(金肥), 즉 비료 값으로 인해 각 방면의 채귀들은 독촉이 성화같으므로 또다시 연기할 여유도 없이 입도차압이 대유행되므로 피땀 흘려 농사지은 것이 모두 허사로 돌아갈 뿐 아니라 곡가도 여지없이 폭락해 백미 한 섬이면 평년의 정조(正租) 한 섬의 대가가 못됨으로 농부들은 손도 대어보지 못하고 당장의 호구지책은 어찌 못하고 생활의 길
탕패는 탕진과 같은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산은 말 그대로 집안의 재산이니 탕패가산은 탕진가산이 된다. 즉 ‘집안의 모든 재산을 탕진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패가망신과 뜻이 거의 같다고도 볼 수 있다. 기사는 황성신문에 난 광고 가운데 하나인데 나란히 4개의 광고가 실려 있다. 잇달아 있는 연산, 용인, 대구, 문화 네 개의 광고 가운데 세 개가 모두 내용이 비슷하다.용인의 광고는 김원선이 낸 것인데 ‘동생 원규가 부동패빈(附同悖頻)하고 탕패가산하여 이번에 또 4~5촌의 전답과 종답(宗畓), 일가
옥안(獄案)은 옥사를 다루는 서류를 말한다. 조선시대 관리들은 지방관이라 해도 사법권과 행정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살인 같은 중대한 범죄까지 직접 문초하고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때 죄인을 문초하고 자백을 받은 다음 판결까지 받는 과정을 문서로 작성하게 되는데 이를 ‘옥안’이라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범죄수사기록과 재판판결문을 합쳐놓은 문서쯤 되지 않을까 한다.지금도 잘못된 판결로 인해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강압이나 고문을 통해 멀쩡한 사람들이 간첩으로 조작되기도 했고 남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는 경우도 있었다
염병이나 이질, 장질부사, 호열자, 적리 등은 지금은 듣기 어려운 병명들이다. 아마도 연로하신 어르신들은 금방 이해할 수 있지만 청소년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이름들일 것이다.위에 열거한 대부분의 질병들은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대부분이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돼 있다. 때문에 위의 질병들이 생기면 국가적인 방역시스템이 작동하게 된다.예전에 비해 영양공급이 좋아지고 생활환경이 몰라보게 좋아진 지금, 이 질병들은 후진국형 전염병으로 불리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최근 남해안에서 15년 만에
담배는 인류가 가장 사랑해온 기호품의 하나이다. 요즘은 담뱃값도 많이 올랐고 공공장소는 물론이요 작은 식당에 이르기까지 어지간한 장소에서는 담배 피우기도 쉽지 않다. 그야말로 눈치를 보고 조심해서 피우는데 애연가들은 세금은 가장 많이 내면서 눈치까지 봐야 한다고 푸념하기도 한다. 늦저녁에 방영하는 주말의 명화 같은 것을 봐도 석양의 카우보이가 멋지게 담배를 물고 있는 장면을 보기 어렵다. 요즘은 모두 흐릿하게 화면을 처리하기 때문인데 금연정책 때문인지 몰라도 보는 재미가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예전에는 연초경작기술의 발전을
봉고제는 ‘신에게 받들어 고한다’는 뜻이다. 기사의 봉고제는 신사에서 지원병으로 출전하는 것을 신에게 고하는 의식이다. 기사를 보면 용인뿐만 아니라 이천, 평택, 평창이나 김천, 양구, 연천 등 기사에 미처 나오지 않은 것까지 다한다면 전국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지원병제도는 1943년에 본격적으로 시행되지만 이미 1938년경부터 지원병의 형태로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을 끌어가기 시작한다. 기사의 용인 부분에는 내사면 양지리의 안전연백(安田然伯)과 포곡면 삼계리의 매전인기(梅田寅基) 두 청년이 육군 지원병훈련소에 입소하게
지금은 송충이를 보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50대 이상 사람들에겐 학창시절 학교주변으로 송충이를 잡으러 다녔던 기억이 있다.깡통을 들고 나뭇가지로 만든 젓가락으로 송충이를 잡았는데 송충이가루가 옮으면 피부가 부르트고 심하게 가려웠다. 아마도 요즘 학생들에게 송충이를 잡으라고 한다면 학교가 난리가 날 것으로 생각되는데, 당시엔 송충이는 당연히 잡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송충이는 미물이지만 떼로 합쳐 힘을 모으면 현대과학문명을 자랑하는 기계의 힘 같은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하는 난센스극의 결정체가 용인에 있었다. 송충이
지금은 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학창시절 새 학년이 되면 설문조사하는 것이 있었다. 정확한 명칭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부모의 학력이나 신문구독 여부, 전화 유무, 심지어 공부방이 있는지 하는 것도 설문내용이었던 것 같다. 모르긴 해도 학생지도에 꼭 필요한 내용이었을 것이다.비슷한 것으로 사회경제지표가 있는데 2015년 통계 가운데 의사 1명당 국민 567명을 담당한다는 기사를 봤다. 일반의사에 치과나 한의사를 모두 합산한 것으로 보이는데 참고로 약사는 1명당 1585명이라고 돼 있다.의사가 너무 많아도 문제가 되겠으나 병원이 가까이 있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엄즉 하다마난 품어가 반길이 없을새 글로 설워 하나이다”초등학교 시절 소리높이 외우던 박인로 선생의 시조이다.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나중에서야 중국의 회귤(懷橘) 고사를 인용한 것을 알게 됐다.원술은 후한말 군벌의 한사람이다. 원술이 세력을 떨쳤던 지역은 후에 삼국의 한나라인 오(吳)나라 땅이 되는데 육적이 원술을 만났다가 돌아갈 때 인사하다가 품속에서 귤 세 개를 떨어뜨렸다. 원술이 까닭을 묻자 병든 노모에게 가져다드리려 했다고 대답했다. 원술이 감격해 효심을 칭찬하고
산업이 발달하면 경제활동에도 변화가 생기고 사회 모습도 달라진다. 새로운 문물이 생기면 사회 전반은 물론 개인의 직업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작은 변화가 하나 둘 모이면 나중에는 사회 전반이 변화하게 된다.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하루아침에 필름산업이 된서리를 맞았고, 인터넷의 보급으로 신문보급이 줄어들었으며 편지와 같은 우편물이 대폭 감소하게 된다. 또 핸드폰이나 팩스 등으로 인해 전보 같은 것은 아예 찾아볼 수 없게 됐다.이와 같은 변화는 예전에도 마찬가지인데 연탄이 보급되면서 용인 시내를 가득 메웠던 나무장사가 사라진 것과 같은 이
도둑과 강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도둑이 주인 몰래 재물을 훔쳐간다면 강도는 주인을 겁박해 강제로 빼앗아 간다. 강도는 주먹이나 몽둥이, 심지어 총이나 칼 같은 흉기를 갖고 물건을 빼앗기 때문에 도둑보다 더 흉포하다고 할 수 있다.물건을 빼앗기는 주인 입장에서 본다면 도둑맞는 것보다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더러는 상해를 입거나 아예 목숨을 잃는 경우도 생긴다. 소극적인 방어도 강도에겐 커다란 저항으로 느껴지고 이를 제압(?)하기 위해 더 큰 폭력을 행사하는 게 일반적인 강도들의 행태이기 때문이다.기사는 작년 말이나 근래에 강
[용인군에서는 지난 11일 기원절을 기하야 군 회의실에서 각 관공서장, 각 단체대표, 민간유지 다수 참석하에 각계 공적자 표창전달식을 거행하였는데 표창된 씨명은 다음과 같다. △子福家庭 용인군 기흥면 고매리 平山伸錄 同 平山仲分 △전몰군인유족중 節婦賢母 용인군 용인면 김량장리 山原이세 △총후후원원에 대한 특수공적 용인군 용인면 김량장리 瀨戶스기 △갱생지도 부락중견인물 용인군 고삼면 봉산리 柳澤之秀 △저축장려에 진력한 공적 同 월향리 西原東秀, 同 모현면초부라 松本濟德, 이동면 시미리 森本漢石, 외사면 백암리 林炳文 △납세시설 개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