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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옥안(獄案)으로 태형 40대
  • 정양화(향토사학자)
  • 승인 2016.11.0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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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안(獄案)은 옥사를 다루는 서류를 말한다. 조선시대 관리들은 지방관이라 해도 사법권과 행정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살인 같은 중대한 범죄까지 직접 문초하고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때 죄인을 문초하고 자백을 받은 다음 판결까지 받는 과정을 문서로 작성하게 되는데 이를 ‘옥안’이라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범죄수사기록과 재판판결문을 합쳐놓은 문서쯤 되지 않을까 한다.

지금도 잘못된 판결로 인해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강압이나 고문을 통해 멀쩡한 사람들이 간첩으로 조작되기도 했고 남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 재심을 통해 밝혀진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이나 전북 완주군 삼례의 슈퍼살인사건 재심청구가 이를 잘 증명한다 하겠다. 민주주의의 본산이라는 미국에서도 살인죄 누명을 쓰고 몇 십 년을 복역하다 무죄로 판명되는 일이 있으니 수사과정이나 재판의 오판은 어디서나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실수는 아마도 인간이기에 있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아닌가 한다. 사형 폐지론자들의 주장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진범

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형 집행 이후 무죄가 밝혀진다면 도로 살려낼 수도 없고 이미 사형 집행으로 죽은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기사 내용은 양지군수인 남계술씨가 옥안을 잘못 다뤄 법부(法部)에서 잡아다 가뒀다는 내용이다. 이어지는 9월 3일자 신문에는 평리원에서 태형 40대를 받고 방면됐다는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평리원은 지금으로 치면 고등재판소에 해당하는 대한제국 당시의 기관이었고, 태형은 말 그대로 곤장을 치는 형벌이다. 군수가 옥안을 잘못 다뤄 태형을 받았으니 나름대로 법이 살아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어떤 사건을 잘못 다뤄 40대의 태형을 받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죄인에게 사형을 내렸던 사건이라면 죽음과 곤장 40대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최근의 금수저니 흑수저니 하는 논쟁을 보면서 법 앞의 평등이란 예나 지금이나 아직도 요원한 과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양화(향토사학자)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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