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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귤든 원술 용인에 재생면민 그 효행을 표창
  • 정양화(향토사학자)
  • 승인 2016.05.22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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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엄즉 하다마난 품어가 반길이 없을새 글로 설워 하나이다”

초등학교 시절 소리높이 외우던 박인로 선생의 시조이다.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나중에서야 중국의 회귤(懷橘) 고사를 인용한 것을 알게 됐다.

원술은 후한말 군벌의 한사람이다. 원술이 세력을 떨쳤던 지역은 후에 삼국의 한나라인 오(吳)나라 땅이 되는데 육적이 원술을 만났다가 돌아갈 때 인사하다가 품속에서 귤 세 개를 떨어뜨렸다. 원술이 까닭을 묻자 병든 노모에게 가져다드리려 했다고 대답했다. 원술이 감격해 효심을 칭찬하고 귤을 더 내주었다는 고사로 ‘육적회귤(陸績懷橘)’이라고도 한다. 이때 육적의 나이 불과 여섯 살이었다고 하는데 후에 청백리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 마음바탕이 이미 있었던 듯하다.

기사 제목은 회귤든 원술이다. 회귤은 귤을 품었다는 뜻이고 고대 중국의 효자 원술이 우리나라에 다시 났다고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효자는 원술이 아니라 육적이다. 제목을 잘못 뽑은 것이다.
기사의 주인공은 처인구 양지면 주북리에 사는 이건주이다. 두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오막살이에서 ‘삼순구식(三旬九食)’의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홀로 남은 어머니를 50여 년간 봉양했다. 가난한 살림에 쌀밥이나 고깃국을 구경할 리 없었다. 하지만 품을 팔러 가거나 남의 일을 할 때 쌀이 섞인 밥이나 생선토막, 고기가 든 반찬을 보면 차마 먹지 못하고 낮이든 밤이든, 거리가 멀던 가깝던 가져다 노모를 봉양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가세가 곤궁하지만 동네사람 가운데 이씨의 모친보다 맛있고 귀한 음식을 많이 먹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성으로 섬긴다고 영원히 살 수는 없는 법, 노모가 세상을 떠나자 애통한 울음소리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하며, 초종장례를 정성으로 모시고 조석삭망으로 지극정성을 다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묘에 참배했다. 이에 면내 유지들이 효성에 감격해 효행표창식을 성대히 거행하고 효자비까지 세웠다고 한다.

기사 내용 가운데 삼순구식은 삼순(三旬), 열흘이 세 번이니 한 달이고 구식은 아홉 번 먹는다는 뜻이다. 한 달에 아홉끼 밖에 못 먹는다는 뜻이니 지극한 가난을 나타내는 사자성어이다.
주북리에 사는 사람들에게 수소문해 보니 현재 효자비는 남아있지 않다. 셀프효도라는 말이 나오는 현대에 사는 우리들이 한번쯤 돌아봐야 할 기사이다. 비록 조석상식이나 삼년상은 치르지 못한다 해도 그 정신만큼은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양화(향토사학자)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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