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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군민 표창향토사학자

 

   
1941년 2월 15일자 매일신보

[용인군에서는 지난 11일 기원절을 기하야 군 회의실에서 각 관공서장, 각 단체대표, 민간유지 다수 참석하에 각계 공적자 표창전달식을 거행하였는데 표창된 씨명은 다음과 같다. △子福家庭 용인군 기흥면 고매리 平山伸錄 同 平山仲分 △전몰군인유족중 節婦賢母 용인군 용인면 김량장리 山原이세 △총후후원원에 대한 특수공적 용인군 용인면 김량장리 瀨戶스기 △갱생지도 부락중견인물 용인군 고삼면 봉산리 柳澤之秀 △저축장려에 진력한 공적 同 월향리 西原東秀, 同 모현면초부라 松本濟德, 이동면 시미리 森本漢石, 외사면 백암리 林炳文 △납세시설 개선에 진력한 공적 용인면 운학리 靑柳秀雄 △저축성적 우수 同 동김량장리 애국국방부인회국민저축조합 △갱생계획실시 부락성적우수 同 삼가리 궁촌갱생지도부락]

기원은 단군기원나 서력기원처럼 연대나 시대를 계산하는데 기준이 되는 해를 가리키는 말이다. 단기나 서기는 줄임말이 되는데 공자탄생에 기준을 둔 공기나 부처님탄강을 기준으로 한 불기도 있다.

기사에서 칭하는 기원절은 고사기나 일본서기에서 전하는 일본 초대 건국군주의 즉위일인 2월 11일을 가지고 정한 축제일을 가리킨다. 1873년(메이지 6년)에 제정됐다가 패전 후인 1948년에 폐지됐다. 기원절은 과거 일본제국주의 시절 4대 국경일중 하나였을 정도로 비중있는 기념일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국경일에 비한다면 개천절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데 기사는 1941년, 즉 한창 태평양 일대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을 때 용인군민에 대한 표창을 알리는 내용이다. 당연히 일제 협력에 모범이 되는 사람들로 선정했을 것인데 이미 창씨 개명이 이뤄져 외자 성을 쓰는 사람들은 한사람도 없다.

임씨가 보이지만 임씨는 하야시라고 해서 일본에도 수풀 림(林)자를 쓰는 성씨가 있기 때문에 따로 창씨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나미라고 읽는 남(南)씨도 마찬가지였지만 성씨를 읽을 때는 당연히(?) 일본식으로 발음을 따라야 했다.

평산(平山)은 신(申)씨, 송본(松本)이나 삼본(森本)은 이(李)씨, 서원(西原)은 한(韓)씨, 유택(柳澤)이나 청류(靑柳)는 유(柳)씨가 창씨한 것이다. 다만 김량장리에 있는 뇌호나 산원은 용인에 살고 있는 일본인으로 보인다. 총후는 후방이라는 뜻으로 사용됐던 용어이고 갱생계획이란 지금으로 치면 새마을운동쯤 해당되는 용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언젠가 원로정치가의 글 속에서 초등학교 동창회에 갔을 때 히라야마니 마츠모토니 하고 소개를 해야 어린 시절 친구가 누구였는지 알 수 있더라는 회고담을 읽은 적이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대통령이 바뀌면 어김없이 일본에서 초등학교시절 은사가 나타나곤 했다.

최근에 위안부 문제를 성의있게 해결(?)했다고 하고는 유엔에는 일본 정부의 책임이 없다는 보고서를 내는 일본을 보면서 두 번 다시 일본식 이름으로 표창을 받는 일은 없어야하지 않을까?

최근 북한의 핵과 미사일문제를 놓고 중국과 미국이 협상을 벌이는데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본 역시 이른바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고 있다.  해방 이후에 한때 항간에 유행했다던 이야기를 상기해 본다.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마라, 일본이 일어선다, 조선아 조심해라.” 이 말은 우스개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뼈있는 말이다.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영원히 우리에게 교훈으로 남아있어야 할 것이다.

정양화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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