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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많은 용인 몽둥이 든 강도 또 나타나향토사학자

 

   
▲ 1925. 3. 15. 매일신보

도둑과 강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도둑이 주인 몰래 재물을 훔쳐간다면 강도는 주인을 겁박해 강제로 빼앗아 간다. 강도는 주먹이나 몽둥이, 심지어 총이나 칼 같은 흉기를 갖고 물건을 빼앗기 때문에 도둑보다 더 흉포하다고 할 수 있다.

물건을 빼앗기는 주인 입장에서 본다면 도둑맞는 것보다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더러는 상해를 입거나 아예 목숨을 잃는 경우도 생긴다. 소극적인 방어도 강도에겐 커다란 저항으로 느껴지고 이를 제압(?)하기 위해 더 큰 폭력을 행사하는 게 일반적인 강도들의 행태이기 때문이다.

기사는 작년 말이나 근래에 강도사건이 빈발해 민심이 시끄럽고 경찰 당국의 경계도 비상한데 용인군 구성면 중리 이 아무개집에 한자 다섯치나 되는 몽둥이를 든 강도가 2명 출현했다.

한명은 방 바깥에 서서 망을 보고 한명은 방안으로 들어가 몽둥이로 주인을 때려서 일으킨 후 “만일 돈을 안 내놓으면 너희 목숨을 죽여서 없애고 집을 불 질러 없애겠다고 협박하고 백미, 흑두, 벼, 의류 등을 빼앗아 도망했다는데 아직도 그 범인을 체포하지 못한다 하더라”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백성들 살림살이가 어려우면 도둑이나 강도가 늘어나게 된다. 흉년이 들면 유랑민이 도둑이 되거나 산속에 들어가 산적이 되기도 한다. 더러는 임꺽정이나 홍길동 같은 의적을 칭하기도 했지만 남의 재물을 약탈한다는 점에서는 결국 강도라 할 수 있다.

1920년대는 일제 치하이다. 1922년에는 용인을 거의 쓸다시피 한 임술년 장마가 있었고 그 여파가 여러 해 갔을 것이다. 또 식민지 치하의 삶이 그리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앞의 강도가 위 내용처럼 생계형 강도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또 나중에라도 잡혔는지 후속기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살길이 없어 할 수 없이 나선 착한(?) 강도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정양화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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