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르포)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되는 처인구 원삼면의 하루

유난히 찬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던 지난 1일,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되는 원삼면 사업대상지 일대를 찾았다. 독성리와 죽능리는 물론 원삼면 소재지 고당리에서 요즘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어지러울 정도로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과 여기저기 들어선 부동산 중개업소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기온마저 많이 떨어져서인지 오가는 이 없는 황량한 벌판을 잠시 걸어본다. 흔들리는 현수막의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독성리 소재 가까운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들어섰다. “토지거래야 뭐 지금 다 막아놔서 없다고 봐야하고. 호가만 올랐어요. 요즘 이슈? 보상문제 때문에 사업자와 토지주 간에 밀당이 심한 상황이죠.” 그리 바빠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처인구 원삼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예정 부지 전경.
처인구 원삼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예정 부지 전경.

현재 SK산단 조성사업은 보상작업 단계를 들어서 있다. 그간 토지 및 지장물 조사를 거쳐 사업자와 용인시 그리고 주민대표 측에서 각각 감정평가사를 지명해 치열한 신경전 끝에 토지 및 시상물 보상가 공시열람을 이미 마친 상태다.

지금은 보상이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이다. 가장 예민한 보상문제가 제대로 풀리고 있을까. 우선 토지조사 작업부터 보상에 이르기까지 실무집행을 대행하고 있는 용인시도시공사로부터 기본자료를 받아봤다.

# 현수막과 공인중개사 사무소 즐비한 농촌의 이색 풍경

자료에 의하면 보상대상 토지는 필지 1546곳이고 토지주는 1072명으로 집계돼 있다. 꽤 손이 가는 작업인지라 용인시 승낙을 받아 인원까지 충원해야 했다. 도시공사 보상관계자에게 전화로 상황을 물었다.

“글쎄요. 아직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는 애기하기 곤란한 측면이 있어요.” 용인도시공사 측은 현재 토지보상 진행 상황을 알려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여러 얘기를 종합해 유추하건데 아직 관망하는 토지주들이 많아 진척속도는 10% 미만인 것으로 보인다. 신경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사업자를 대표하는 용인반도체조성사업 용인일반산업단지(주)가 한 축이고 지역과 토지주를 대표하는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연합비상대책위원회(이하 연합비대위)가 그 맞상대다.

원삼면 반도체 산단 해당부지에 들어선 부동산업체
원삼면 반도체 산단 해당부지에 들어선 부동산업체

지난달 30일엔 용인시청 앞마당에서 연합비대위 주최로 ‘원삼면 수용주민 죽이는 헐값보상 당장 중단하라’며 시위까지 벌였다. “수용지를 제외하고 인근은 물론 안성지역까지 땅 값이 많이 올랐어요. 보상가 대비 5배가 넘는 정도가 됐는데 보상을 받는 순간 나앉으란 얘기 밖에 안돼요.”

연합비대위 관계자는 말을 이어갔다. “결국 토지주나 주민들은 망해 빈손으로 내몰리는 처지가 된 거죠. 개발업자만 돈 벌어 말썽이 생긴 성남 대장동 사건과 뭐가 다른가요?”

실제 인근 지역 땅 값은 벌써부터 올랐단다. 피해자가 있으면 수혜자도 생기는 모양새다. 가장 수혜지역을 꼽자면 안성이란다. “안성은 최근 깨어나는 도시가 되고 있어요. 포천-세종간 고속도로(제2경부고속도로)가 지나면서 IC가 두 곳이나 생깁니다. 무엇보다 SK산단 수혜가 크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단이 추가로 들어설 텐데 안성시와 협약까지 했으니 비약적으로 발전할 겁니다.” 지역사정에 밝은 J씨(60. 원삼면 맹리)의 설명이다.

# 원삼지역 상생협력사업 각 주체 합심해야

SK산단 조성사업 관련 이해 당사자는 토지주 뿐만이 아니다. 원삼면 지역사회가 온통 뒤집어질 판이니 기대심리도 없지 않으나 걱정도 많다. 원삼면지역발전협의회(회장 정동만) 관계자를 만나 입장을 들어봤다.

“농사가 주업인 시골마을에 최첨단 반도체 산단이 들어선다는 건 문화적, 정서적 차이로 인한 충격도 크겠지만 엄청난 환경문제를 필연적으로 불러 올 수밖에 없어요. 심각한 문제죠. 그렇다고 나라와 용인시를 비롯해 큰 틀에서 보면 반대만 할 순 없잖아요. 적극적인 지역사회와의 상생협력에 나서야 합니다. 사업자는 물론 용인시도 협의서 채결도 없이 첫 삽을 뜨기만을 기대하고 있는데 잘못된 접근입니다.”

지난달 30일 용인시반도체클러스터 연합비상대책위 회원들이 용인시청에서 헐값 보상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지난달 30일 용인시반도체클러스터 연합비상대책위 회원들이 용인시청에서 헐값 보상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지역발전협 관계자가 말하는 지역사회 상생협약서는 꽤 신선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삼 대부분은 성장관리계획구역에 포함돼 있어요. 8m 도로가 없으면 집짓는 것은 물론이고 웬만한 개발행위는 할 수가 없어요. 결국 꼭꼭 묶인 지역이죠. 시골 자연부락에 8m 도로가 확보된 곳이 어디 있겠어요. 이번 기회에 마을진입로와 주요 골목길을 확장하게 되면 실질적으로 고루 주민들에게 혜택이 가고 좋은 소릴 들을 겁니다. 물론 다른 내용도 있지만 꼭 관철시켜야 할 내용으로 꼽고 있습니다.”

SK산단 조성사업을 둘러싸고 지역사회가 일사불란 한 것은 아니다. 이해관계가 얽히고 사정이 다르다보니 다양한 목소리가 섞이기도 한다. 실제 산단지역 주민들을 사실상 대표하는 연합비대위 외에도 여러 주민대표 단체들이 생겨났지만 지금은 얼추 정리돼 가는 상태라는 게 지역의 분위기다.

# 손실보상 협의 늦어져…내년 상반기 넘겨야

총 사업면적이 415만3502㎡로 1백만 평이 넘는 대단위 규모인데다 협력화 단지와 공동주택단지, 단독주택(이주택지), 지원시설, 상업용지, 복합용지 등 앞으로 다양한 부지가 포함돼 있다. 특히 이주택지는 주민들의 관심사항 중 하나다. 토지와 집이 있는데 이주지역에 포함된 주민들에게 주어지는 이주택지는 여전히 불씨거리다.

“수용가와 분양가 간에 가격차가 너무 큰 것이 문제죠. 보상가는 낮게 책정하고 기반시설이 갖춰진 단지가 조성됐다는 이유로 이주택지 분양비용을 높게 책정하다보니 소위 ‘딱지’로 불리는 입주권을 포기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현재 조성중인 이주택지는 80여 세대로 80평~120평대로 구성돼 있다. 층수도 4층까지 지을 수 있도록 협의를 마친 상태다.

하지만 일부에선 집단적으로 입주를 포기하고 아예 따로 이주자 마을을 조성하자는 움직임도 있는 상태다. 특히 독성2리(잿말)은 마을 전체가 사업부지에 수용된다. 그러나 이주택지에 대해 불합리하다고 판단하는 다수의 주민들은 사업지 밖이면서도 본래 고향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집단이주단지 조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산단조성 사업에 의해 예기치 못한 피해를 입게 된 경우도 있다. 바로 용인의 3대 독립운동가문의 마지막 생존자 오희옥 지사가 그 처지다. 집이 헐리지만 돌아갈 집이 없어지는 기막힌 상황에 놓인 것이다.

애초 용인시와 SK산단 측은 올해 중 보상을 마무리하고 내년부턴 본격적으로 착공에 들어간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재로선 사업일정 연장은 불가피해 보인다. 용인도시공사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까지 손실보상(계약체결) 요청이 오면 협의 성립시 소유권 이전 및 보상급을 지급하면 절차는 종결됩니다.

그런데 지금상태로는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예상해야 되고 그러면 토지수용위원회를 거쳐 수용재결 신청을 해야 하고 재결 불복시 이의신청 등 법적으로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이 있어야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일을 주업으로 삼았던 수용대상지역의 다수 주민들은 올해 한 순간 순간을 마지막으로 보냈다. 다시금 씨앗을 뿌리거나 모내기를 하거나 가을걷이를 하는 것 만큼은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한상의 연합비대위 직무대행은 이렇게 쓸쓸히 말했다. “올해 농사가 마지막이란 생각을 하니깐 기가 막힙디다. 추억으로나마 남겨야겠기에 사진을 찍었어요. 허허.”

돌아갈 집 사라진 오희옥 독립유공자의 집

‘독립유공자의 집’ “지사님의 고귀한 희생에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처인구 보개원삼로 1740-2에 주소를 둔 3대 독립운동가문의 유일한 생존자 오희옥(94) 지사댁에 걸린 문구다. 대지면적 410㎡, 건축면적 76.6㎡ 규모로, 방 2개와 거실, 주방을 갖춘 1층짜리 단독주택이다.

오 지사가 거주한 주택은 용인시의 ‘오희옥 애국지사 고향정착 프로젝트’와 용인지역 단체, 해주 오씨 종중, 향토 기업인 등의 관심과 지원으로 성사됐다. 시 공무원들이 주택 건립비용으로 2133만원을 모았고, 원삼면 기관단체장협의회와 용인독립운동기념사업회 등이 기금을 전했다. 해당 부지는 해주 오씨 중중에서 제공했다.

용인지역 기업들인 유원건축사사무소, 세화이엔씨, 인창건설, 네이코스엔지니어링, 매일전기와 승원엔지니어링 등이 재능기부를 했다.

그런데 이 주택은 곧 헐릴 처지다. 그럼에도 병환 중인 오 지사가 갈 집은 없다. 주택과 대지 소유자는 이주택지 입주권을 갖지만 오 지사의 경우 그럴 수도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토지와 건축물이 해주오씨 종중 앞으로 등기돼 있기 때문이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산업단지에 편입되더라도 손실보상 협의 주체는 중종이다. 결국 오 지사는 ‘세입자’ 취급을 받으면서 이사보조금 이외엔 아무런 법적 요구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해결방법은 없는 걸까. 주택 건립을 주도한 용인시는 물론 해주오씨 종중, 그리고 토지를 수용하는 사업자 측 어느 쪽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대책 마련에 적극적이지 않다. 애국지사를 대하는 후대들의 태도가 곧 독립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이라 했던가. 어이없는 현실이자 부끄러운 우리의 민낯이 아닐 수 없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