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표의 용인 어제와 오늘

용인이씨는 용인지역의 관향 성씨로 원래 용구현(龍駒縣)의 토성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고려개국에 일조한 이길권을 시조로 하는데 당시 시조는 용인지역 토호(土豪)였다. 요즘 토호라는 개념엔 부정적 의미가 담겨있으나 당시엔 향촌에 토착화한 재지사족(在地士族)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위 사진은 1918년 음력 11월 27일 당시 용인군 포곡면 가실리 청백리공 산소 시향 모습이다. 청백리공은 이백지(1361~1419)로 중시조 구성부원군 이중인의 손자다. 이중인은 조선 건국에 참여하지 않고 은둔을 택한 ‘두문동 72현’ 중 한 분으로 묘소는 용인이씨 발상지인 기흥구 영덕동 잔다리 마을에 있다.

매년 봄에 사당인 추원사에서 추모대제를 봉행한다.(아래 사진). 예나 지금이나 옷차림새만 다를 뿐 조상을 모시는 똑같은 마음이 느껴지는 사진들이다. 1908년 모습은 포곡 이광섭씨 소장본으로 강남대 홍순석 교수가 체계적으로 정리해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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