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문화예술분야에서는 한해를 결산하는 의미로 각종 시상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대중음악을 이야기하다 보면 가끔 ‘명예의 전당’이 언급되곤 하지요. ‘블루스 명예의 전당’ ‘로큰롤 명예의 전당’ ‘컨츄리뮤직 명예의 전당’ 등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는 이야기를 필자도 연주자나 가수를 소개할 때 가끔 거론하곤 했지만, 도대체 그게 무엇인지 한 번도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오늘은 작심하고 그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대부분의 명예의 전당은 1980년대부터 시작됐는데,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의
필자도 그랬지만 주변 연애상담을 받게 된 예전 기성세대들은 의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속담을 인용해서 애정전선의 성공을 위해 더 힘을 내보라고 응원하곤 했습니다. 본뜻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내용이기에 좋은 생각으로 그 말을 쓰곤 했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이 속담의 인용이 이성 관계에 적용되면 안 되는 시대예요. 아무리 상대가 나 싫다고 해도 계속 구애하면 마음을 빼앗을 수 있다는 의미 확장으로 사용됐던 말은 자칫하면 스토킹까지 미화하는 경우가 될 수 있다는
대중음악을 듣다 보면, 귀에 익은 유명한 곡인데 다른 가수가 불러서 좀 더 새롭게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보통 커버곡 내지는 리메이크곡이라고 부르지요. 그 경계가 자로 재듯 명확하지 않지만 흔히 구분하는 기준으로는 기존 곡의 원형을 크게 훼손하지 않은 상태로 다시 부른 경우를 커버곡이라고 말하고, 기존 곡에 본인의 특색에 맞게 편곡한 곡을 리메이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다른 가수의 곡이 원곡보다 더 유명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그중 하나가 ‘You Are So Beautiful’이라는 곡이랍니다. 팝송을 조금
대부분의 독자들은 모르시겠지만, 아주 예전에 다운타운가 디스크자키(DJ)로 제 이름이 좀 날 무렵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름이 나고 얼굴도 좀 알려지고 하다 보니 건방 끼가 오더라고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음악을 나만큼 많이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고, 또 진행도 나만큼 잘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거라는 치기 섞인 건방짐. 그러나 세상을 조금 더 살다 보니, 그런 것은 무엇이든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하는 놈들이 거의 다 가지고 있는 보편적 증세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하 하) 여하튼 그때까지만 해도 개인 노트에 유
하늘은 파랗고 아침저녁 서늘한 것이 가을 느낌이 제대로 옵니다. 길가의 푸르딩딩했던 나뭇잎들도 뜨거웠던 여름에 바람이 쉬어갈 그늘을 만들어 주느라 용을 쓰다 보니 핏줄이 올라와 벌겋고 노랗게 변했습니다. 단풍이지요. 아마 몇 차례의 태풍 여파만 없었어도 올해 단풍은 정말 멋졌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가을에는 어떤 종류의 곡이 듣기에 가장 잘 어울릴까요? 샹송, 칸초네, 재즈, 블루스, 트로트. 듣는 이에 따라 취향은 각양각색입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가을 음악은 조용하면서 감성을 자극할만한 그런 곡입니다. 그러다 보니 라
내가 사는 동네에는 필자가 주도한 주민들로 이뤄진 산악회와 여행 동호회가 있습니다. 그중 산악회는 6년여 동안 함께 하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금은 그만두었는데, 함께 등산하다 보니 우리나라의 이름난 산은 거의 다 가보게 됐지요. 그런데, 산에 함께 가는 이웃들의 속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산에 왔으면 정상을 꼭 정복해야지’ 하는 부류와 ‘산에 간 그 자체가 즐거움이지 꼭 정상을 밟을 필요가 있나’ 하는 부류가 있더라고요. 미리 밝히자면 필자는 전자에 속하다가 슬슬 후자에 끼게 된 경우입니다. 처음에는 앞뒤 안보고 열심히 올라가서
수개월 후에 홍콩에 갈 일이 있기에 요즘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홍콩의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들이 송환법 악용으로 인해 중국으로 끌려갈 우려가 있다는 점을 잘 아는 홍콩시민들의 항거와 그들을 진압하는 홍콩 경찰의 모습. 훈련 모습을 보여주며 무력진압 가능성을 자꾸 흘리고 있는 중국 군인과 권력의 편에 선 홍콩언론 등은 얼마 전 우리나라 모습과 아주 많이 닮아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다루는 홍콩의 뉴스화면을 통해 보게 되는 최루탄의 고통을 이겨보려고 복면을 하고 있는 모습, 충혈된 눈에 생수
자기 인생의 진행 방향이 아주 사소한 계기로 결정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가령, 우연히 범인을 검거하는 경찰의 모습을 보고 “난 나중에 경찰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된 경우 또는 평소 좋아했던 선생님의 따뜻한 관심을 받고서 “나도 우리 선생님처럼 훌륭한 선생님이 될 테야” 하고 선생님이 됐다는 경우 등 종종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지요? 오늘 소개해 드리려는 틴슬리 엘리스도 그런 경우입니다.누가 정했는지 몰라도 세계 3대 기타리스트 하면 흔히 에릭 클렙튼, 지미 페이지, 지미 핸드릭스 등을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3
오랜만입니다. 커피 한잔 하시지요. 커피, 즐겨 하시지요? 커피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료 1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커피가 와인과 더불어 인류문화를 이끈 어마어마한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먼저 와인은 기독교 쪽에서는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하며 기독교문화가 뿌리 내린 어느 곳에서나 포도농장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사랑을 받았지만, 커피는 악마의 음료라고 해서 한동안 음용을 금지할 정도로 배척했답니다. 반면 이슬람 쪽에서는 그들이 추구하는 이성과 절제를 망가뜨리며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와인을 혐오하며 멀리했습니다.
지금까지 참 많은 영화를 봤지만 아직도 필자의 마음속에 잔잔하게 자리하고 있는 사랑 영화 중에 ‘노팅힐’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미 제가 ‘Ain't No Sunshine’이라는 곡을 통해 독자들께 한번 소개를 했던 영화인데, 폭발적이지도 않으면서도 아주 은근한 여주인공의 유혹에 남주인공이 헤어나지 못하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아있습니다. 세상 어느 남자라도 그 영화 속 이야기가 자기 앞에 막상 현실로 나타난다면 여간해서는 뿌리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바로 그 영화 속에는, 세상 남
잘 사는 법 못지않게 잘 죽는 법도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세상입니다. 용인에 터를 닦고 사는 한 개그우먼은 자기 묘비명을 미리 써두었다는데, 그 묘비명은 ‘웃기고 자빠졌네’ 랍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죽음을 있어서는 안 되는 아주 큰 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 보면 죽을 때도 별일 아니듯이 흥미롭게 느껴질 수도 있는 모양입니다.가끔 회자되는 글귀 중에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줘, 운이 좋으면 술통 바닥이 샐지도 몰라’ 라는 일본의 선승 ‘모리야 센얀’의 묘비명이 있습니다. 걸레스님으로 유명했던 중광스님의 묘비
아무런 예고 없는 이별처럼 황당하고 슬픈 일이 또 있을까요? 그것이 그냥 생활 속에서 있을 수 있는 이별이라면 그런대로 견딜 수 있는 아픔일 수 있겠지만,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남아있는 이로 하여금 황망함을 가져오지요. 그렇게 황망해하고 절망하던 마음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활 속에 녹아버려 점차 잊히고 마는 것을 보면 참 알다가도 모르는 게 사람의 감성인 듯합니다.그래도, 무언가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위해 후배들이나 동료들이 헌정하는 일을 하게 됐다는 소식을 가끔 만납니다. 그중에 언뜻 생각나는 음악 작업으로는 나탈리 콜(Na
요즘에는 조금 활동이 뜸하지만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알법한 가수와의 인연을 잠깐 이야기하겠습니다. 고등학교 선·후배 인연으로 필자가 다운타운가 DJ와 대학가 축제 MC로 나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후배는 무엇에 홀렸는지 거의 매일 찾아와서 음악을 선곡해 달라며 듣고 수습 DJ도 하고, 간혹 무대에서 노래도 부르면서 젊은 시절을 함께 보냈습니다. 긴 무명의 터널 끝 언저리에서 첫 음반을 취입했을 때, 필자는 그 음반을 들고서 여기저기 알만한 다운타운가 DJ를 찾아다니면서 그의 음악을 꼭 틀어주라고 강권했습니다.
재작년 크루즈 여행으로 카리브해의 섬나라 자메이카에 가본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 아주 인상 깊게 기억되는 두 가지가 있었어요. 가난한 거리 곳곳에서 들려오던 ‘괜찮아’ 또는 ‘문제없어’나 ‘잘 될 거야’ 라는 긍정의 뜻을 가진 ‘야만’ 이라는 그들의 언어와 지나치게 너무 많이 보였던 ‘밥 말리’의 사진과 이름이었지요. 자메이카를 대표하는 인물 중에는 ‘우사인 볼트’도 있지만 ‘밥 말리’의 경우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밥 말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밥 말리’가 자메이카에서 아주 유명한 상표 이름이겠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여기저기에
오래 전에 회자 됐던 한 증권회사 광고 문구 중에 ‘모두가 ‘예스(YES)’라고 할 때 ‘노(NO)’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광고 문구가 하도 인기가 있다 보니 장난으로라도 집단의 의견에 누구나 한 번쯤 장난의 ‘No’나 부정의 ‘No’ 를 이유 없이 해봤던 적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광고 문구가 말하는 것은 긍정의 ‘No’였다는 것을 다 알지요? 생각 없는 동의보다 고민한 ‘No’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겠지요. 몇 가지 긍정적 ‘No’로 인해서 생겨난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혹시 십여 년
연말과 연시에는 아무래도 주변에 인사할 일이 많아집니다. 한 해를 정리하고 또 한 해를 여는 시점인지라 그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주변 분들에게 일일이 인사한다는 것은 다소 신경써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간혹 우리나라 사람은 외국인에 비해 인사에 너무 인색하다는 글을 봅니다. 하지만 조금 깊게 보면 우리처럼 인사를 배려 있게 하는 사람들도 드물다는 생각을 합니다. 며칠 전 SNS를 통해 읽은 글 중에 일본의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츠지 히토나리’ 씨가 했다는 우리나라의 인사습관에 대한 글이 떠오릅니다.[한국 사람은 보내는 쪽이 “
어느 글에서인가 ‘힘 잃고 처진 어깨를 가진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자식의 심정은 어색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는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힘 잃고 처진 어깨의 자식을 보는 부모가 가지는 아픔의 깊이는 그보다 수천 배가 될 것이며,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매년 그러하듯 이제 청년들의 입사 등 각종 시험을 치러야 할 시기가 됐습니다. 그 결과가 잘 되면 별 상관 없겠지만 대부분의 응시생들은 몇번의 실패를 통해 아픔을 겪게 될 것입니다.그렇게 아픔을 겪고 또 일어서니까 젊음이겠지만, 마음 같아서는 하나도 아프
며칠 전 주변으로부터 ‘맨날 잘 알지 못하는 외국곡만 소개하지 말고 사람들이 많이 아는 대중적인 팝송이나 우리나라 곡도 한번 소개해 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위주로 글을 쓰거나 곡을 소개하지 않는 이유는 잘 아는 팝송이나 가요들은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이미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보다 정보력이나 필력이 제가 더 강해서 나아 보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듯해서 굳이 저까지 거기에 숟가락 얹어놓을 것까지야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음이 작은 변명이에요.(하하)재작년 이맘때쯤 ‘브라보! 재즈
‘Some say love it is a river that drowns he tender reed~’아무 생각 없이 차에서 라디오를 켰더니 바로 이 가사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정말 오랜만에 듣는 곡이기도 했고, 또 너무 흔하게 듣던 그런 곡이었던 지라 저도 모르게 입에서 흥얼거리게 되더군요. 그래서 오늘 쓰는 글의 씨앗을 이것으로 삼아야겠다 생각하게 됐습니다. 글로 쓰니까 무슨 곡인지 잘 모르시겠지요? 에구~ 음악으로 들으면 금방 아실 곡인데. ‘The Rose’라는 곡이랍니다. 예전에 팝송깨나 들었던 분들은 베트
크루즈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자들이 일컫기를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해서 오른쪽은 동부지중해라고 하고 서쪽을 서부지중해라고 합니다. 그 서부지중해를 바르셀로나에서 크루즈에 승선해서 프랑스 마르세유와 이탈리아 피렌체·로마·나폴리·카프리섬 등을 여러 일행들과 함께 여행했지요. 이번 여행 중에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판테온을 구경하며 지나다가 그 앞 광장에서 우연히 젊은 성악가의 거리공연을 만났습니다.그냥 스쳐 지나가려 했으나 처음에는 조용하고 잔잔하게 시작되던 노랫소리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렀을 때 발걸음이 자연스레 멈춰졌습니다. 이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