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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산의 ‘Yesterday’
  • 정재근(음악평론가)
  • 승인 2018.12.1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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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스페이스 공감 웅산의 ‘Yesterday’ 라이브 영상 유튜브 화면 캡처

며칠 전 주변으로부터 ‘맨날 잘 알지 못하는 외국곡만 소개하지 말고 사람들이 많이 아는 대중적인 팝송이나 우리나라 곡도 한번 소개해 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위주로 글을 쓰거나 곡을 소개하지 않는 이유는 잘 아는 팝송이나 가요들은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이미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보다 정보력이나 필력이 제가 더 강해서 나아 보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듯해서 굳이 저까지 거기에 숟가락 얹어놓을 것까지야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음이 작은 변명이에요.(하하)

재작년 이맘때쯤 ‘브라보! 재즈라이프’라는 영화 한 편을 보게 됐습니다. 류복성 강대관 이판근 등등 80세가 다 돼가는 우리나라 재즈 1세대들이 어느 겨울날 탁주 한 사발 앞에 놓고서 이야기를 나누는 다큐영화였어요. 국내 타악기의 1인자 류복성 씨의 영화 속 회고 중에 본인이 처음 봉고라는 타악기를 연주하자 방송국에서 출연해달라는 연락이 왔는데, 그게 음악프로그램이 아닌 묘기대행진이라는 프로그램이더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서는 ‘그랬겠구나. 지금도 재즈를 한다고 하면 일단은 평범한 눈으로 쳐다봐주지 않는 분위기인데 하물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곤 이내 ‘주변에 음악을 소개할 일이 많아지는데 이왕 재즈나 블루스 곡을 소개하면 조금 새롭게 느껴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되도록 쉽고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곡을 소개하고, 그런 글을 쓰면 주변에도 심심치 않은 일이 되겠다 싶어 글과 음악의 방향을 이쪽으로 잡게 됐습니다. 많이 소개되지 않아서 그렇지 뒤져 보면 반할 수밖에 없는 재즈와 블루스 장르의 많은 곡들이 있거든요. 

제가 블루스와 재즈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되고서는 엘라 핏제랄드, 사라 본, 빌리 할리데이 등의 보컬이 생생한 곡을 자주 듣게 됐는데, 그때마다 우리나라에도 악기 도움 없이 이렇게 목소리 하나만으로 대중들에게 어필이 가능한 그런 가수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물론 찾아보면 우리 가수들 중에서도 그 이상의 소리꾼들이 많겠지만 지극히 제 주관적인 생각으로 말입니다.(하하)

그러던 중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우리나라 블루스뮤지션의 앨범을 몇 장 건네받았는데 그중에서 그야말로 짝짝 달라붙는 그런 목소리를 하나 발견하게 됐지요.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당사자가 이 글을 본다면 표현을 너무 막 한다고 뭐라 할지 모르지만, 당시 제 느낌은 어쩌면 그렇게도 목소리가 퇴폐적이며 끈끈해 내 마음 깊숙한 곳을 후벼 파는지요. 만일 조금이라도 우울한 날이었다면 옆으로 와 내 어깨에 손을 턱 걸치고 앉아 끈적한 술 한 잔 권하며, 마음 속 무겁고 힘들었던 이야기를 남김없이 툭툭 털어낼 것 같은 그런 분위기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이름은 ‘웅산’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통사람들하고 달라도 많이 다른 삶을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웅산은 불교 집안의 영향으로 열여덟 나이에 비구니가 되고자 절로 들어갔었다네요. 그리고선 1년 반의 시간을 절밥 먹으며 염불하며 지냈는데,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소리가 염불이 아닌 노래임을 깨닫고 하산해 음악을 시작하게 됐다는군요. 가부좌 틀고 앉아 복식호흡을 하며 염불을 외었던 내공이 그의 삶에 녹아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웅산도 처음 음악을 시작하고 눈을 떴을 수 있었겠어요? 생각과 목표대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무진장 고생하다가 어느 날 친구가 ‘야! 이거 한번 들어볼래?’ 하고 들려준 빌리 할리데이의 ‘I’m a Fool to Want You‘가 웅산의 삶을 바꿔버렸다네요. 빌리 할리데이가 툭툭 던지는 듯 노래한 ’I'm a Fool to Want You‘를 처음 들었던 웅산은 완전히 빠져들어 이 곡이 어떤 장르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이런 음악을 하고싶다는 생각으로 재즈클럽에 살다시피 했었답니다. 그러다가 드라마 내용처럼 우리나라 재즈 1세대 피아니스트 신관웅 씨 눈에 들게 돼 신관웅밴드에서 1996년부터 매일 무대에 오르다시피 하며 본격적인 재즈보컬리스트로 태어나게 됐습니다.  그렇게 2년여 동안 트레이닝이 된 웅산을 우연히 보게 된 일본의 한 밴드 초청으로 1998년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을 한 이래로 손꼽히는 재즈가수가 됐습니다.

제가 웅산의 목소리를 처음 듣게 된 앨범은 두 번째 앨범 ‘Blues’였습니다. 앨범 전체에 들어가 있는 곡 하나하나가 구성이나 연주, 그리고 보컬까지 허투루 들을래야 들을 수 없는 보석 같았습니다. 목소리로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그 여운이 가시기 전에 이번 주 소개해드릴 ‘Yesterday’를 듣게 되었는데, 전과 달리 이 곡은 듣는 이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하는 분위기가 ‘샤데이’나 ‘노라 존스’를 닮았습니다. 목소리만 듣고서도 애잔한 사랑이 묻어있음을 느끼게 해주지요. 아마도 제가 느끼기에 이 곡은 맨정신에서 만든 곡이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술을 왕창 마시고 난 다음날 무거운 머리를 털어내면서 게으르게 떠오른 영감으로 썼거나, 아니면 말 못하게 사랑해왔던 연인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썼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분위기이거든요. 

여하튼 웅산은 그 이후로도 꾸준하게 앨범을 내어놓고 있는데, 곡이 모두 조금씩의 발전적인 변화를 꾀하면서 결과적으로 기본 바탕은 블루스에 둬 마치 먹고픈 과자와 사탕으로만 이뤄진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을 줍니다. 얼마 전에 요즘 스님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자꾸 줄어들어서 불교계에 비상이 걸렸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불교계로 보면 아까운 인재 하나 떠나간 것이고, 웅산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는 참 다행이다 싶은 일이 된 것이겠지요.(하 하)

웅산의 ‘Yesterday’ 공연 보기
https://youtu.be/reZ7pwOB568

정재근(음악평론가)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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