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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말리의 ‘No Woman No Cry’
  • 정재근(음악평론가)
  • 승인 2019.02.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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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크루즈 여행으로 카리브해의 섬나라 자메이카에 가본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 아주 인상 깊게 기억되는 두 가지가 있었어요. 가난한 거리 곳곳에서 들려오던 ‘괜찮아’ 또는 ‘문제없어’나 ‘잘 될 거야’ 라는 긍정의 뜻을 가진 ‘야만’ 이라는 그들의 언어와 지나치게 너무 많이 보였던 ‘밥 말리’의 사진과 이름이었지요. 자메이카를 대표하는 인물 중에는 ‘우사인 볼트’도 있지만 ‘밥 말리’의 경우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밥 말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밥 말리’가 자메이카에서 아주 유명한 상표 이름이겠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여기저기에서 밥 말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밥 말리(Bob Marley)는 레게음악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지요. 그 밥 말리도 태생부터 아픔이 있었던 삶이었던 모양입니다. 자메이카에 주둔 중이었던 중년의 영국군 백인에게 유린당한 10대 흑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그는 빈민가에서의 삶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14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나가 용접공으로 유년을 보내게 됐지요. 하지만 음악에 관심이 워낙 많았던지라 음악 활동을 꾸준히 열심히 하게 돼 자메이카 전통적인 리듬인 레게의 흐름에 주술적인 종교성과 저항적인 이미지를 추가해 레게의 전도사라 불리는 뮤지션 자리를 확보하게 됐답니다.

그 무렵 밥 말리가 한 이야기 중에 ‘나는 교육을 받지 않은 대신 영감을 받았다’라거나 ‘의도하지 않은 것을 노래하는 음악은 의미가 없다. 음악은 무언가를 의미해야 한다’ 또는 ‘음악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을 깨우치고 미래를 듣게 할 수는 있다’라는 말들이 전해져 오는 것을 보면 밥 말리의 의식이나 그가 끼치는 영향력을 어림짐작하고도 남을 듯합니다. 게다가 슬슬 인기가 더해져 외국에서도 유명세가 더해지면 정치하는 사람들 중에 보는 눈이 다른 이들에게는 꺼림칙한 존재가 돼버리거든요. 그렇게 되면 사고가 터지기 마련입니다. 국제적인 명성이 높아지고 자메이카에서는 그를 시인이자 예언자 같은 신비로운 존재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결국 암살 기도까지 있었으니 우여곡절도 참 많았지요.

사진 출처/ 유튜브 동영상

1976년 암살 기도가 발생한 후 밥 말리가 영국으로 망명하자 정당 간의 반목으로 인해 자메이카는 내전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 조국에 1978년 정치인들과 국민이 함께 하는 평화콘서트에 참여한 밥 말리가 무대에 올라서서 노래를 부르던 중 갑자기 두 정당의 대표를 무대 위로 불러 두 사람의 손을 맞잡고 ‘이제 자메이카에 평화가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퍼포먼스를 했어요. 그렇다고 자메이카에 정말 평화가 온 것인지 알 수 없어도 그의 성향 자체가 그랬다는 것과 레게음악이 가지고 있는 저항적인 성격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주기만 하면 됩니다.

밥 말리는 우연히 몸에서 암세포를 발견하게 되고, 흔히 택하는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계속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음악 생활을 하다가 죽겠다는 선택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는 정말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연주 투어를 하던 중 1980년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조깅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3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어찌 보면 장엄하기까지 한 일생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남긴 레게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사실은 레게뮤직을 세계에 알리게 되는 가장 큰 계기는 밥 말리가 아니라 에릭 클랩튼이었습니다. 에릭 클랩튼은 워낙 레게음악을 자주 접해서 별로 신선하게 느껴지는 장르도 아니었는데, 주변에서 밥 말리의 ‘I Shot The Sheriff’를 에릭 클랩튼이 부르면 정말 잘 어울릴 것이라고 졸라대는 바람에 못 이기는 척하고 녹음을 했어요. 그런데 이 곡이 에릭도 놀랄 정도의 결과인 빌보드 싱글차트 1위가 돼버린 게 아니겠어요? 도대체 이 기가 막힌 곡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 하고 사람들이 찾게 돼 밥 말리가 일약 떠올랐고, 그로 인해 레게가 세계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하튼 레게의 전도사가 돼버린 밥 말리의 대표적인 히트곡이 ‘No Woman No Cry’입니다. 문학이든 미술이든 아니면 음악을 막론하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활동하게 되면 자기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에게 작품을 바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 곡이 밥 말리에게는 그런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머니를 향한 마음속 헌시이면서 영국군들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했던 자메이카 여인들과 빈민가에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인들에게 울음을 거두고 웃음을 찾으라고 위로하는 슬픈 이야기를 아름다운 선율에 담아낸 ‘No Woman No Cry’

이번 호에서는 이 곡을 올려놓으며 밥 말리의 마음속을 한번 훔쳐봅니다.

밥 말리의 ‘No Woman No Cry’ 공연 동영상 https://youtu.be/2Dq33kK9nDU

 

 

정재근(음악평론가)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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