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입추가 지났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아직 초록색으로 영글지 않은 열매들이지만 단풍이 드는 가을이 되면 각자 고유의 색을 담을 것이다. 열매가 빼곡하게 들어찬 느티나무 아래에 서니 마음이 한껏 풍요롭다.한참을 올려다보는데, 두 가지 크기의 나뭇잎이 눈에 들어온다. 열매를 달고 있는 가지의 나뭇잎은 손가락 반 마디만 하고, 열매를 달지 않은 가지 잎은 손가락 길이보다 더 길고 크다. 이렇게 큰 차이로 나뭇잎 크기가 다른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큰 잎은 주로 나무를 먹여 살리는 일을 한다.
여름 휴가철이다. 아이들은 방학을 했고 유난히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장마와 태풍이 후텁지근한 수증기를 잔뜩 남겨두고 가버렸다. 섭씨 36.5도라는 체온보다 높은 기온이 뉴스가 되고 있다. 안팎으로 뜨거운 여름이다.필자는 매년 여름이면 아이들 등쌀에 못 이겨 기어코 찾고야 마는 계곡이 있다. 산과 들이 좋아 만족스러운 용인의 자연이지만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용인엔 계곡이라 부를만한 그럴듯한 계곡이 별로 없다. 경안천, 청미천, 탄천, 복하천, 신갈천 등 여러 하천의 발원지를 갖고 있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맑은 물
숲에 가면 정말 수많은 동·식물을 만난다. 관심을 갖고 숲에 가면 같아 보이는 나무들이 모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필자와 함께 숲에 갔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여러 번 함께 가도 같은 식물을 여러 번 반복해서 물어본다. 똑같은 식물이지만 이 숲에서 보았을 때와 저 숲에서 보았을 때 다르고, 봄에 봤을 때와 가을에 봤을 때가 다르니 여러 번 같은 질문을 받아도 전혀 이상하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다.실제로 같은 식물이지만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생태형’이
눈을 감고 ‘느티나무를 생각해보세요’ 라고 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을 마당에 있는 커다랗게 가지를 벌리고 있는 느티나무를 떠올릴 것이다. 백 년, 이백 년 살아오며 아름드리나무가 돼 마을 사람들을 모두 품어줄 그늘을 만들어 주는 마을 쉼터를 역할을 하는 나무이다. 뜨거운 여름이면 그늘에 모여 앉아 할아버지들은 내기 장기를 두셨고, 할머니들은 부채질을 하며 이야기꽃을 피우셨다. 학교 운동장에도 꼭 느티나무가 있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아이들은 고무줄을 하며 놀았고, 운동장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그어가며 사방치기나 땅따먹기를 하며
숲을 위에서 내려다볼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고층아파트도 많고 항공사진도 많아 숲을 내려다볼 경우가 종종 있다. 필자 또한 높은 층에 살고 있어 변하는 숲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땅과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은 언제나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여름 숲은 봄의 단풍과도 가을의 형형색색의 단풍과도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소나무숲은 뾰족뾰족하게 보이고, 참나무숲은 둥글게 보인다. 대나무숲은 풀처럼(?) 보이고, 삼나무숲은 핫도그를 세워놓은 것처럼 보인다. 삼나무는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 오래전에 심어서 기른 나무이다.
장마철이라 얘기하는 요즘 한창 노란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 영어 이름도 ‘Gold rain tree’ 황금비 나무이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노란 꽃잎들이 함께 흩날리며 떨어지니 황금비가 내리는 듯해 그런 이름이 붙었으리라 생각된다.다른 계절에 피면 좋으련만 꼭 장마철 즈음에 피어 예쁜 꽃을 얼마 보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나무가 야속하다. 장마철만 되면 생각나던 그 나무가 이제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는데 더 큰 의미로 다가온 모감주나무다.작년 9월 우리나라엔 큰 변화가 있었다. 남북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
4월은 한창 나무에 꽃이 피는 계절이다. 하얗고, 분홍빛 꽃들이 피어서 봄이 왔음을 알게 한다. 그때 피는 꽃들이 살구, 자두, 복숭아, 매실 등 열매를 맺는 과일나무들이다. 모두 장미과(科) 식물이라 그 모양이 비슷비슷하다. 어느 나무의 꽃인지 알아보기는 참 힘들다. 그렇게 비슷한 꽃을 피운 나무들은 여름의 한복판인 7, 8월에 열매를 보면 구분하기 쉬워진다. 6월부터 초록 매실은 상자째 팔려나간다. 살구도 노랗게 익어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복숭아는 가장 늦은 8월, 단연 크기와 맛과 가격에서 차이를 보이며 한철 장사의 정점에 있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 바로 멈춘다. 이렇게 이름이 헷갈릴 수도 있을까? 매실나무? 매화나무? 뭐가 맞을까?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니 의견이 분분하다. 학계나 농업 관련 기관에서는 매실나무가 많았고, 정서적이거나 문화적 성향을 띠는 기관에서는 매화나무가 많았다. 두 이름을 다 쓰는 경우도 많았다. 꽃인 매화와 열매인 매실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엔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비슷한 모양이다. 필자는 국립수목원과 국립생물자원관의 의견에 따라 매실나무라고 우선 부르겠다.올 봄엔 용인보다 더 앞서서 매화를 보겠다고
호두 두 개를 손안에 쥐고 돌려 본 적이 있는가? 수없이 돌려서 반질반질해진 호두알을 필자는 기억한다. 여기에서 하나, 호두열매는 맞는 표현일까? 추석 전에 호두를 털면 알이 완전히 영글지 않아서 딱딱한 속껍질이 잘 까진다. 반면에 추석을 지낸 호두는 열매가 영글어서 속껍질은 잘 까지지 않고 겉껍질은 잘 부서진다. 맛은 당연히 후자가 더 고소하고 양도 많다. 자연에서 얻는 모든 것들이 수월하게 얻어지지 않지만, 호두도 참 여러 단계의 수작업을 거쳐서 탄생한다. 수고스럽게 열매를 털어와 겉껍질을 까고, 또 말려서 속껍질을 깐다. 호두
이맘때 계곡에 가면 꼭 만나는 나무 꽃이 하나 있다. 노란색도 아니고 분홍색도 아닌 애매한 색을 가진 꽃이다. 마치 우리 악기 중에 입으로 불었던 긴 나발처럼 꽃부리가 길게 뻗어있는 모양의 꽃이다. 이미 나팔꽃이란 이름을 가진 꽃이 어엿하게 있으므로 이 꽃에는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그런데 좀 지나니 꽃이 지고 열매가 생겼다. 물병인지 술병인지 보는 사람 좋을 대로 상상하며 볼 수 있는 영락없는 병 모양이다. 요즘 쉽게 볼 수 있는 긴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음료수병처럼 생겼다. 병이 달리는 꽃나무라 병꽃나무라 했을 것이라 필자는 생각
그날도 아이들과 함께 숲에 갔다. 같이 갔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버들피리를 만들어주며 흥겨운 시간을 갖고 있었다. 필자는 그런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흐뭇한 기분에 젖어들고 있었는데, 그때 사각의 핸드폰 액정 안에 엉뚱한 나무가 들어왔다. 벚꽃처럼 생긴 꽃이 한창 피어있었다. 그런데 벚나무치곤 키가 많이 작았다. 저렇게 작은 벚나무가 많은 꽃을 피워내다니 대견하구나! 어느덧 예쁜 꽃에 홀려 가까이 가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어딘가 모르게 꽃이 낯설었다. 벚꽃과 닮았으나 어색했다. 더구나 이미 다른 벚나무들은 꽃이 다 떨어지고,
언제 피었냐며 벚꽃들이 후두두 지고 나니 연둣빛 잎들이 무성하다. 꽃눈도 잎눈도 모두 피어나는 시기이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는 것처럼 우후죽순이다. 가로수들도 지난 가을 무시무시한 가지치기를 당했지만 올해도 죽지 않고 새로운 잎을 내밀고 있다.풀들은 절대적 양에서 나무들을 넘어서기 힘들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겨울눈의 위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풀과 나무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풀은 겨울눈이 땅 근처나 땅 아래에 있다. 풀은 실제로 씨앗을 남기고 모두 죽거나, 땅바닥에 붙어서 겨울을 나거나, 땅 속
우리 조상들은 오랫동안 농사일을 하며 살아오다 보니 나이가 들면 무릎과 허리가 많이 아팠을 거다. 그래서 그런 관절과 뼈에 좋은 약초에 일찍부터 관심이 생기고 곁에 두고 싶어 했다. 봄마다 나무 수액을 받아 ‘골리수’라 부르며 먹었던 고로쇠나무, ‘접골목’이라는 이름의 딱총나무와 덧나무 등이 그것들이다. 또한 여기 이름부터 심상치않은 ‘골담초’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가 있다.골담초는 아주 옛날 중국에서 들어온 꽃나무라고 전해지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무리지어 숲에서 자생하고 있는 것이 발견돼 자체적으로 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아이들이 노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바람이 살랑 분다. 꽃비가 내린다는 표현이 딱 맞아 떨어지게 벚나무 꽃잎이 살랑살랑 바람을 따라 떨어진다. 꽃비를 알아차린 아이들도 그것을 잡으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꽃잎이 무수히 떨어지는데도 쉽게 잡을 수 없는지 쉴 새 없이 뛰어다닌다. 한동안 초등학교에 숲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유행처럼 있었다. 그 덕분에 학교 안에 더 많은 식물들이 자리 잡은 것은 사실인 듯하다. 꽤 넓은 학교숲에 연못을 만들어 수생식물을 볼 수 있는 곳도 있었다.예전에 필자는 학교숲의 나무에 이름표를 붙여주는 활동을 하기도
얼마 전 서울 천호동의 한 공원에 가게 됐다. 그날은 마침 날씨도 따듯해 공원으로 산책 나온 사람들, 운동 나온 사람들, 그리고 사람이 그리워 나오신 어르신들까지 공원이 평일 점심때인데도 북적거렸다. 필자가 사는 곳이 용인 처인구의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보니 마치 장날 나온 것마냥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공원이 어색할 정도였다. 그런데 사람들만 북적거리는 것이 아니었다. 노란 개나리, 분홍 진달래, 크고 하얀 목련, 작년 빨간 열매가 가득 달린 채 피워낸 노란 산수유, 분홍과 연둣빛을 띠는 하얀 매화, 작은 밥풀같은 흰색 조팝, 빨간
미세먼지가 잠시 주춤거린다. 햇살도 좋고, 기온도 점점 높아지니 노란색 개나리만 피어있어도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어쩜 저리도 흐드러지게 피어날까. 축축 처지는 줄기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꽃들이 정말로 봄을 느끼게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개나리뿐 아니라 노란색 꽃들의 세상이다. 숲에선 이미 생강나무, 개암나무, 회양목이 꽃을 피웠고, 산수유와 유채꽃은 축제까지 해가며 사람들 눈을 호강시켜준다. 그 흔한 민들레, 꽃다지도 봄에는 더없이 반갑고 예쁘다.노란색은 봄을 알리는 신호색이다. 회색빛이 돌던 겨울에서 이제 햇살은 노란 빛을 띈다.
짧은 봄이 시작됐다. 들에 나가 냉이를 캔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냉이꽃이 피었다고 난리다. 냉이와 함께 꽃다지, 광대나물도 피어나고 개불알풀이 한창이다. 숲에 가니 괭이눈이 기지개를 펴고 있고, 제비꽃과 현호색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올해는 복수초와 너도바람꽃을 볼 수 있는 행운도 찾아 왔다.풀꽃만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나무에도 꽃이 피고 있다. 생강나무는 일찌감치 노란 꽃을 피웠고 개암나무도 암꽃 수꽃 나란히 피고 있다. 브로콜리처럼 생긴 딱총나무의 꽃봉오리도 올라와 있다. 매화, 산수유, 영춘화도 피고 있고 성미 급한
여기저기 나뭇가지가 바닥에 떨어질 만큼 바람이 세게 분다. 바닷가가 고향인 필자는 바람이 부는 날이면 어김없이 고향을 생각한다. 시내를 가로질러 바다로 흐르는 강에는 갈매기들이 수십 마리씩 날아다녔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처럼 바람을 가르며 저공비행을 하는 갈매기도 많았다. 나무의 가지들도 뭉청뭉청 잘려나가곤 했다.요즘 때아닌 봄바람이 세차게 불어 나뭇가지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너무 빽빽하게 난 가지들이 바람 덕분에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렇게 자신만의 모양을 만들어 간다. 나무들은 스스로
3·1운동 및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는 여기저기서 큰 의미를 두고 행사가 치러졌다. 그런데 100주년이 되는 것이 또 있다. 1919년 세상에 알려진 아름다운 우리 꽃나무가 있으니 바로 미선나무다. 1917년 식물을 연구하던 정태현이 처음 충북 진천에서 미선나무를 발견하게 된다. 미선나무는 1속 1종의 식물로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산식물이었으니 처음 본 새로운 식물이 얼마나 놀라웠을까? 그런데 1919년 일본인 나카이에 의해 전 세계 학계에 보고되며 만국공용인 ‘Abeliophyllum distich
이제 봄이 오는구나 싶다. 강가의 버드나무 가지가 노란 빛을 띄고 있다. 작년, 붉은색으로 납작 엎드려 있던 풀에 초록색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 심지어 베란다 화분에는 별꽃이 피고 진다. 시간은 정말 무섭게도 정확하고 거침없다.봄에 가장 큰 꽃을 피우는 목련을 식물학에선 ‘원시적’이라고 표현한다. 꽃이 피는 식물 중 가장 오래전에 생겨난 식물이란 의미이다. 그 큰 꽃 가운데 화려하게 우뚝 선 암술과 수북한 수술이 굉장히 특징적이다. 그리고 가을을 대표하는 국화는 ‘진화형’ 또는 ‘파생형’이라고 한다. 목련이 대표하는 식물 무리에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