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아이들과 함께 숲에 갔다. 같이 갔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버들피리를 만들어주며 흥겨운 시간을 갖고 있었다. 필자는 그런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흐뭇한 기분에 젖어들고 있었는데, 그때 사각의 핸드폰 액정 안에 엉뚱한 나무가 들어왔다. 벚꽃처럼 생긴 꽃이 한창 피어있었다. 그런데 벚나무치곤 키가 많이 작았다. 저렇게 작은 벚나무가 많은 꽃을 피워내다니 대견하구나! 어느덧 예쁜 꽃에 홀려 가까이 가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어딘가 모르게 꽃이 낯설었다. 벚꽃과 닮았으나 어색했다. 더구나 이미 다른 벚나무들은 꽃이 다 떨어지고, 오히려 열매가 얼핏 달리고 있는 시기였다. 누굴까 이 나무는?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했다. 결국 지인 찬스를 써가며 알아낸 그 나무는 ‘이스라지’라는 나무였다. 언젠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지만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이스라지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익숙한 나라 이름이 생각났다. 이스라엘. 그 이름에 사로잡혀 ‘왜 이런 이국적인 이름을 갖게 됐을까?’ 라는 선입견에 헤매고 있는데, 어떤 아이가 그랬다.

“이슬과 아지라는 말이 합쳐진 거 아닐까요? 이슬같은 열매가 달리는 나무인데 작은 나무라 강아지 송아지 할 때의 아지가 붙은 거죠.”

아이의 답변에 순간 깨달음의 불꽃이 활짝 들어온 느낌이었다. 정말 그럴듯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스라지는 순수한 우리말로, 오히려 방언이 표준말이 된 경우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산이스랏’을 함경도 말로 이스라지라고 부른다고 나와 있다. 이스랏은 앵두나무를 비롯해 매화, 벚나무 따위 열매를 가리키는 옛 우리말이다. 이스랏이 달리는 나무들을 가리켜 이스랏나무라 했다. 특히 산에 자생하는 산이스랏나무들을 가리키는 함경도 말인 이스라지가 대표 이름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나무를 정확하게 종별로 분류하게 되면서 산앵두나무, 매화, 벚나무 그리고 진짜 이스라지로 나뉘어 이름 붙게 됐다. 이스랏에서 이스랒으로, 그리고 지금의 이스라지가 됐다.

이는 1433년(세종 15)에 간행된 ‘향약집성방’이란 책에 잘 나와 있다. 향약, 즉 우리나라 향토에서 생산되는 약재에 관한 의약서로, 약재 이름과 더불어 식물의 향명을 적어놓아 우리 식물의 옛 이름을 연구하는 귀한 자료이다. 향약집성방에서 이스라지는 욱이인(郁李仁)이라는 약재명과 함께 이스랏이라고 기록돼있다.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열매를 보며 풀잎에 맺힌 이슬과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스랏이라는 말이 생기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이스라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지를 산앵두나무라고도 많이 부른다. 그러나 산앵두나무라는 정식 이름을 가진 진달래과의 나무가 있어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지는 장미과, 벚나무속의 나무로 산앵두나무와 전혀 다른 나무이다.

이스라지는 벚나무 종류 가운데 잎도 작고, 키도 가장 작은 나무로, 줄기가 땅 위로 여럿이 올라와 옆으로 퍼져 보이는 관목의 특성을 갖는다. 많이 커도 어른 평균 키보다 작다. 계곡 주변의 햇빛 잘 드는 곳을 좋아하며 사오월 봄이 한창일 때 잎보다 먼저, 또는 작은 새잎들과 함께 꽃을 활짝 피운다. 벚꽃이나 매화와 비슷한 모양인데 수술이 많고 길다. 꽃이 활짝 피면 꽃받침이 뒤로 젖혀지는 특징이 있다.

이스라지 열매는 여름에 붉게 익는데 버찌나 앵두와 닮았다. 과실로 먹으면 새콤하며 약간 떫다. 쓰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직접 과일로 먹기보다 잼을 만들거나 설탕에 재워 먹기도 한다.

꽃이 아름다워 조경용으로 가치가 높다 하는데,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것을 보면. 숲에 자생하는 우리 나무를 너무 늦게 알아본 미안함에 간절한 소망을 품어본다. 잘 자라고 널리 펴져 많은 사람과 그 아름다움을 나누길 바란다. 예쁜 이름을 가졌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무지한 선입견을 없애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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