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개나무 잎과 열매

여름 휴가철이다. 아이들은 방학을 했고 유난히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장마와 태풍이 후텁지근한 수증기를 잔뜩 남겨두고 가버렸다. 섭씨 36.5도라는 체온보다 높은 기온이 뉴스가 되고 있다. 안팎으로 뜨거운 여름이다.

필자는 매년 여름이면 아이들 등쌀에 못 이겨 기어코 찾고야 마는 계곡이 있다. 산과 들이 좋아 만족스러운 용인의 자연이지만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용인엔 계곡이라 부를만한 그럴듯한 계곡이 별로 없다. 경안천, 청미천, 탄천, 복하천, 신갈천 등 여러 하천의 발원지를 갖고 있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맑은 물 쏟아지는 청정 계곡의 모습으론 좀 부족하다. 

찾아가는 길이 험하고 좁은 덕에 숨어있는 계곡이란 뜻을 가진 갈은계곡, 갈론계곡은 충북 괴산의 속리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처음 가게 됐을 땐 그저 계곡의 맑은 물과 시원함에 가장 먼저 매료됐다. 넓은 바위와 적당한 깊이와 양의 맑은 계곡물은 아이들에게 훌륭한 놀이터가 됐고, 이후 매년 갈론 갈론 노래를 불렀다. 차가 들어갈 수가 없어 짐을 메고 걸어 들어가며 물개암, 다래, 머루 열매를 보게 됐고 꺽지, 갈겨니와 함께 헤엄치며 놀았다. 그러다가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나무였다. 

모르는 사람들은 나무가 다 거기서 거기지 갈색 줄기에 초록 잎이라고 얘기하겠지만 관심을 갖고 보다 보면 다 나름의 차이점을 알게 된다. 그 계곡의 주인이자 깃대종인 망개나무였다. 깃대종이란 생태계의 여러 종 가운데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인식해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생물종을 통틀어 일컫는다. 보통 한 지역의 생태적·지리적·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동·식물로 정의된다. 그러다 보니 어떤 특정한 지역에 주로 분포하며, 그 개체 수가 많지 않아 멸종 위기 속에 살아가는 동·식물이 많다. 국립공원이나 유명한 산에서는 깃대종을 마스코트화로 만들어 홍보하기도 한다. 갈론계곡이 있는 속리산은 하늘다람쥐와 망개나무가 깃대종이다. 

망개나무

같이 갔던 필자 시어머니께서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를 보며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셨다. 망개나무라 하자 어머니는 이상하다고 갸우뚱하신다. 당연한 반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망개나무는 망개떡을 찔 때 싸는 둥글고 빳빳한 잎을 가진 청미래덩굴을 말한다. 나무공부를 하거나 요즘 그 나무를 알게 되는 세대들이나 청미래덩굴이라 하지,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망개나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그러나 둘은 전혀 다르게 생겼으니 이름이 같다고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경상북도에서는 살배, 충청북도에서는 멧대싸리라고 부른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 나무 자체를 볼 수 없으니 이름도 없다. 이렇듯 망개나무는 경북과 충북 일부의 계곡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이다. 중국과 일본에도 있다고 하나 그 수가 아주 미미해 전 세계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망개나무가 사는 자생지 몇 곳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망개나무의 생태적 특성에서 그 연유를 찾아볼 수 있다. 망개나무 꽃은 5월 중순에 피고, 8월 중순에 검은빛을 띤 빨간색 열매가 익는다. 그러나 완전히 다 익기 전에 많은 숫자의 열매가 떨어져 버려 자연발아가 되기 힘들다. 그나마 한번 뿌리내리면 그 다음부터 꿋꿋하게 추위도 이겨내며 잘 살아간다니 참 다행이다. 

봄에 만났던 미선나무가 그랬듯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고 알려지는 것은 식물 입장에서 좋은 일만은 아닌듯하다. 몰랐던 사람들이 그 희귀성을 가치 있다 판단하고 덤벼들어 훼손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처음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던 속리산 법주사의 망개나무도 수난을 피해가지 못했다. 만지거나 물을 끓여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퍼지면서 껍질을 벗겨가고 가지를 부러뜨려 가져가 결국 사람들로 인해 죽고 말았다. 그 나무가 없어졌으니 마을 사람들은 나무가 멸종됐다고 믿었다. 다행히 다른 곳에 살고 있는 개체들이 발견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다신 되풀이해선 안 되는 사례다. 

요즘엔 그런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졌지만 다른 방법으로 여전히 자연을 헤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왜 계곡에 가면 꼭 삼겹살을 구워 먹고 라면을 끓여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굳이 국립공원이 아니라도 자연에서 취사하지 말아야 한다. 불 자체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요리해서 먹게 되면 사용한 그릇과 일회용품, 음식 전후 쓰레기가 나온다. 올 때 고이 잘 가져왔으면서 왜 먹고 나면 그 쓰레기들을 가방에 챙기려 하지 않는지, 자신의 배에 넣든 가방에 넣든 자신이 오기 전과 똑같은 상태로 유지해놓아야 하는 것이 깨끗한 자연을 볼 수 있는 자격이자 성품이라 생각한다.

요즘 유튜버니, BJ니 사람들에게 정보나 경험을 파는 사람들 중에 마치 자신이 탐험가인 양 착각해 자연에서 취사나 비박을 하며 잘못된 경험을 전파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이 들어가거나 손을 대면 안 되는 곳,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자연속으로 제멋대로 들어가 파괴하는 몰지각한 무식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보며 부러워하고 따라할 게 아니라 질타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는 잠깐 들리는 손님이지, 계곡의 주인은 망개나무나 하늘다람쥐이기 때문이다. 손님으로서 예의를 갖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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