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 계곡에 가면 꼭 만나는 나무 꽃이 하나 있다. 노란색도 아니고 분홍색도 아닌 애매한 색을 가진 꽃이다. 마치 우리 악기 중에 입으로 불었던 긴 나발처럼 꽃부리가 길게 뻗어있는 모양의 꽃이다. 이미 나팔꽃이란 이름을 가진 꽃이 어엿하게 있으므로 이 꽃에는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그런데 좀 지나니 꽃이 지고 열매가 생겼다. 물병인지 술병인지 보는 사람 좋을 대로 상상하며 볼 수 있는 영락없는 병 모양이다. 요즘 쉽게 볼 수 있는 긴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음료수병처럼 생겼다. 병이 달리는 꽃나무라 병꽃나무라 했을 것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한편으론 꽃 모양을 보며 주둥아리가 넓은 병처럼, 아니면 꽃을 뒤집어 세워 놓고 아래가 넓고 점점 좁아지는 병처럼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병꽃나무라 불렀다고 한다. 나팔, 고깔, 깔때기, 아무튼 꽃 모양을 두고 여러 가지 사물을 빗대어 표현한다.

병꽃나무를 보면 한 나무에 두 가지 색의 꽃이 함께 달린다. 연한 노란색과 붉은색 꽃이 피어있는데 붉은색도 여러 단계로 연한 분홍부터 좀 더 진한 붉은색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한 나무의 꽃이 이렇게 여러 색으로 보이는 건 흔한 게 아니다. 병꽃나무가 갖고 있는 특징인 셈이다. ‘팟꽃나무’로도 불리는데 붉은색 꽃이 팥색을 닮아서일까? 조심스레 호기심을 가져본다.

병꽃나무 꽃을 보며 필자는 아이들에게 곧잘 물어본다.

“이 꽃하고 저 꽃하고 누가 먼저 핀 꽃일까?”

그러면 아이들은 더 주의 깊게 살펴 나름의 이유를 대며 ‘이 꽃이여, 저 꽃이여’ 한다. 정답은 진한 붉은 색 꽃이다. 병꽃나무 꽃은 노란색으로 피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붉은빛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니 가장 붉은 꽃이 가장 오랫동안 피어있는 나이가 제일 많은 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붉은색 꽃만 피는 붉은병꽃나무도 있으니 잘 살피고 나서 수수께끼를 내야 한다. 이와는 다르게 꽃이 흰색으로 피는 흰병꽃나무도 있다.

병꽃나무는 계곡 근처에서 많이 자란다. 그래서 병꽃나무를 보면 근처에 계곡이 있거나 습한 골짜기가 있나 보다 하고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계곡을 따라 한 줄 서기 하듯 죽 무리 지어 자라기도 한다.

진짜 병처럼 생긴 열매는 가을에 익는데 안에 씨앗이 잘 익으면 껍질이 바나나 껍질 벗겨지듯이 2개로 갈라지며 날개가 달린 아주 작은 씨앗이 나온다. 병꽃나무는 사람보다 약간 큰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 나무로, 목재나 생활도구를 만들어 쓸 수 있을 만큼이 아니다. 그나마 화력이 좋아 땔감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많은 꽃으로 벌과 나비같은 곤충들에게는 아주 고마운 나무임에 틀림 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희귀성이 곧 가치 있음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다수가 갖고 있는 것보다 소수가 갖고 있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긴다. 무릇 식물에 있어 특산종이라 하면 일부 한정된 지역에서만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적응력이 떨어지며 생명력이 약할 것이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개나리나 병꽃나무처럼 예외도 있다. 둘 다 한국 특산종으로 우리나라에만 사는 나무들이지만 전국 어디에나 퍼져 봄에 산과 들을 아주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우리 땅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 아닐까. 역시 봄에는 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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