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피었냐며 벚꽃들이 후두두 지고 나니 연둣빛 잎들이 무성하다. 꽃눈도 잎눈도 모두 피어나는 시기이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는 것처럼 우후죽순이다. 가로수들도 지난 가을 무시무시한 가지치기를 당했지만 올해도 죽지 않고 새로운 잎을 내밀고 있다.

풀들은 절대적 양에서 나무들을 넘어서기 힘들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겨울눈의 위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풀과 나무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풀은 겨울눈이 땅 근처나 땅 아래에 있다. 풀은 실제로 씨앗을 남기고 모두 죽거나, 땅바닥에 붙어서 겨울을 나거나, 땅 속 뿌리 부분만 살아남는다. 그래서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살아있는 풀들도 죽었다고 표현할 때가 참 많다. 풀의 싹트기는 땅 위에서 줄기 없이 시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나무는 땅 위에 겨울눈이 있다.

겨울눈이 땅 위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겨울에도 땅 윗부분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땅 윗부분 어디든 겨울눈은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나무의 눈은 잎이 달리는 수관(樹冠)의 가지에 있다. 그래서 가지는 쑥쑥 길어지고 나무를 크게 한다. 평소에 알아차렸는지 모르겠지만 자세히 보면 잎은 나무의 큰 줄기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별일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나무들은 뿌리 주변에서 새로운 가지를 뻗기도 하고, 번개를 맞아 부러진 나무는 부러진 가지 옆에서 새로운 가지를 낸다. 나무가 강한 바람에 넘어지더라도 뿌리가 땅에 붙어만 있다면 그 나무는 쓰러진 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새로운 가지와 잎을 낼 수 있다.

필자가 학생이었을 때, 가장 많이 한 일은 산불로 훼손된 지역에서 참나무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싹을 하나하나 자료화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타고 남은 줄기 옆에서 새로운 싹이 얼마나 많이 올라오고 이것이 얼마나 빨리 재생해 다시 숲을 이룰지, 불이 나기 전과 같은 모양의 숲이 될지, 결과적으로 불이 나서 황폐해진 숲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작업이었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싹튼 줄기의 두께를 버니어켈리퍼스라는 기구로 하나하나 측정했다. 커다란 그루터기에서 수많은 싹이 올라왔고, 매년 급속도로 생물량을 늘였다. 몇 년 안에 그곳은 놀라울 정도로 푸르러졌다. 숲이라고 표현하기엔 어려웠지만 나무들은 싹트기를 계속했다.

나무는 완전히 타버렸거나, 완전히 잘린 것처럼 보이는 그루터기에서도 그렇게 활발한 싹트기를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는 현명하게 스스로 가지치기를 하고, 굵은 줄기만 가지고 살아간다. 풀들은 씨앗이 싹이 트면 그 해에 완전한 어른식물이 되기도 하고, 다음 해에 어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무는 씨앗에서 싹이 트면 적어도 5년 이상 자라고 꽃을 피운다. 자손을 퍼트리기에 풀이 더 유리하게 느껴진다. 풀은 씨앗의 싹트기에 에너지를 쏟아서, 땅속에 많은 씨앗 창고를 만든다. 나무는 풀과 많이 다른 전략을 쓴다.

과실수에서 나무의 가지치기는 매우 중요하다. 가지치기 후 꽃이 얼마나 많이 피느냐, 열매가 얼마나 탐스럽고 맛있게 달리느냐는 가지치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꽃눈도 잎눈도 언제나 만들 준비를 하며 살아야겠다. 잔가지 하나 버리지 못해 모두 잡고 가려는 마음은 버리고, 적당히 스스로 가지치기하며 살아야겠다. 큰 열매 한두 개만 남길 수 있게 싹틔울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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