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양목 꽃

짧은 봄이 시작됐다. 들에 나가 냉이를 캔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냉이꽃이 피었다고 난리다. 냉이와 함께 꽃다지, 광대나물도 피어나고 개불알풀이 한창이다. 숲에 가니 괭이눈이 기지개를 펴고 있고, 제비꽃과 현호색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올해는 복수초와 너도바람꽃을 볼 수 있는 행운도 찾아 왔다.

풀꽃만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나무에도 꽃이 피고 있다. 생강나무는 일찌감치 노란 꽃을 피웠고 개암나무도 암꽃 수꽃 나란히 피고 있다. 브로콜리처럼 생긴 딱총나무의 꽃봉오리도 올라와 있다. 매화, 산수유, 영춘화도 피고 있고 성미 급한 진달래마저 한두 송이 보이기 시작한다. 맘이 급해진다. 우리나라에 피는 꽃 중에서 70%가 봄에 핀다고 하지 않던가. 짧은 봄이 휙 가기 전에 챙겨 볼 꽃들이 많다.

그 어떤 나무들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고 누구나 한 번 이상 반드시 보았을 회양목 꽃이 핀다. 회양목이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정원이나 화단에 울타리로 네모지게 각을 져서 자라거나 동그란 모양으로 자라고 있는 모습은 결코 낯설지 않을 것이다.

겨울이 돼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 상록이라 초록색 잎이 다 붙어있는 상태에서 연두같은 노란 꽃이 핀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이 피는 변화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가지 끝이나 그에 가까운 잎겨드랑이에 수꽃과 암꽃이 함께 몇 송이씩 뭉쳐 피는데, 암꽃은 3개의 암술머리가 있고 대개 가운데 위치한다. 수꽃은 1~4개의 수술이 있는데 암꽃 주변에 둘러 핀다. 이른 봄부터 피기 시작하는데 잎과 비슷한 색과 작은 크기로 대부분 꽃을 모르고 지나가게 된다. 다만 주변의 윙윙거리는 벌의 날갯짓 소리에 깜짝 놀라게 된다. 이른 봄 꿀을 찾아 헤매는 벌에게 회양목꽃은 작아도 아주 매력적이다.

꽃이 지고 난 뒤에 맺는 열매는 손톱 크기의 계란 꼴로 암술대가 뿔처럼 세 개가 삐죽이 솟아있다. 익으면 갈색으로 물든다. 열매는 다 익게 되면 세 조각으로 갈라져 안에 두 개의 방안에 각각 하나씩 검은색 초승달처럼 생긴 씨가 들어있다. 갈라진 조각과 씨앗이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부엉이나 올빼미를 닮았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아이들이 화단에서 부엉이 찾기로 재미있어 한다.

회양목

회양목은 겨울이 돼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 상록수이다. 잎의 수명이 일 년을 넘기에 새잎이 나서 자라는 동안 옛 잎도 붙어있어 일년 내내 푸르게 보이는 것이다. 잎은 손톱만한 데 타원 모양으로 생긴 잎은 끝이 약간 패여 있고 가죽처럼 빳빳하고 윤기가 난다.

우리 주변 공원이나 정원, 학교, 도서관, 관공서, 아파트단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회양목이지만, 그 진짜 모습을 본 이는 드물다. 대부분 네모 또는 동그라미 등으로 반듯하고 정갈하게 잘라 키우기에 원래 그런 줄 아는 사람이 많다. 어떤 모양으로 잘라 놓아도 잘 자라고, 음지 양지 가리지 않고 습기가 있는 곳은 물론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라기에 정원수나 조경수로 많이 쓰이고 있다.

항상 작은 키의 울타리용으로 심은 동그랗고 각지고 단정한 모양에 익숙해진 터라 가끔 숲에서 길게 가지를 뻗고 키가 커진 모습을 볼 때면 너무나 어색하고 놀란다. 원래 자연상태에서는 7m가량까지 자랄 수 있다. 이렇게 자유로운 기상을 가진 나무를 그렇게 작은 틀에 맞춰 상처를 내가며 잘라 키운다는 것에 새삼 미안하고 슬픈 마음이 든다. 누구에게나 자유가 꺾이는 것은 커다란 아픔일 텐데. 꽃말이 ‘참고 견뎌냄’ 이라는 것이 더 진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원래 회양목은 석회암지대를 좋아하며 산 중턱과 골짜기 등에서 잘 자란다. 석회암지대가 발달한 북한 강원도 회양(淮陽)에서 많이 자랐기 때문에 이름을 회양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향을 이름에 담았다. 마치 순천이모, 전주댁, 청주총각, 부산아지매 하듯이 말이다.

회양목은 예부터 쓰임새가 많은 나무였다. 조선시대에 목판활자, 호패, 표찰을 만드는 데 쓰였고 도장, 장기알도 만들었다. 거문고의 열여섯 괘(棵)를 만들 때도 쓰였다. 이는 목질이 아주 균일하고 단단한 속성 덕분이었다. 그래서 다른 말로 도장나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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