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나뭇가지가 바닥에 떨어질 만큼 바람이 세게 분다. 바닷가가 고향인 필자는 바람이 부는 날이면 어김없이 고향을 생각한다. 시내를 가로질러 바다로 흐르는 강에는 갈매기들이 수십 마리씩 날아다녔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처럼 바람을 가르며 저공비행을 하는 갈매기도 많았다. 나무의 가지들도 뭉청뭉청 잘려나가곤 했다.

요즘 때아닌 봄바람이 세차게 불어 나뭇가지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너무 빽빽하게 난 가지들이 바람 덕분에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렇게 자신만의 모양을 만들어 간다. 나무들은 스스로 가지치기를 한다. 나무들이 스스로 솎음질을 하는 것과 같다. 침엽수의 경우 가지 끝에 생장점이 있어서 위로 새로운 줄기가 계속 자란다. 동시에 아랫부분의 오래된 가지들은 스스로 탈락하는데, 그 탈락한 가지들이 남긴 흔적이 마디를 만든다. 그 마디를 세어 나이를 추정하기도 하는데 잣나무가 특히 그렇다. 활엽수의 경우 워낙 무성하게 가지를 뻗기 때문에 안쪽 가지들이 굵어지면서 가는 가지들이 떨어진다. 당연히 안쪽 가지일수록 나뭇잎을 달지 않는다. 햇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느티나무 그늘에 앉으면 더 시원하고 아늑하게 느껴지는 것이 가지들의 빈자리 때문은 아닐까.

반면, 작년 초겨울 깔끔하게 가지치기를 한 나무들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바람이 불어도 잘려나갈 가지가 없다. 까치들이 가끔 잘린 가지 꼭대기에서 망을 볼 뿐 작은 박새나 참새들은 잔가지가 없는 나무에 앉지 못한다. 큰 나무에는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산다. 곤충의 애벌레, 그 애벌레의 어른벌레, 새, 청서, 다람쥐, 뿌리 근처 땅속에 사는 소동물, 스쳐 지나가는 동물들까지 생각하면 한 나무가 키워내는 생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양과 수를 훨씬 뛰어넘는다. 그들 각자 나무에 자리 잡는 위치도 다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정리해놓은 나무는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 느낌이다. 가지치기가 못마땅한 한 지인은 이렇게 잘라도 나무가 사느냐, 사생활 보호도 되고 좋은데 왜 가지를 자르냐며 의문을 갖는다.

미세먼지가 심각한 때에 관행적인 나무의 가지치기는 한 번 더 생각해볼 문제이다. 나무가 날아오르는 먼지를 흡착하고, 바람길을 만들어 공기를 순환시키는 것은 우리가 도시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래서 도시숲의 역할을 최대로 살리기 위해 나무의 모양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가로수로 심는 키가 많이 크는 나무인 버즘나무, 은행나무는 아무리 심하게 잘라내도 잘 살기 때문에 모양에 상관없이 전선 높이에 맞춰 가지를 자른다. 키가 큰 나무를 심을 수 없는 곳에는 큰 나무 대신 키가 작은 나무를 더 심고, 자투리땅을 아스팔트로 포장해 깔끔하게 만들기보다 작은 키 나무나 여러해살이풀을 심어 관리하기 쉽게 만들 수 있다. 멀리 봤을 때 더 효율적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다.

처인구 마평동에 ‘게릴라 가드닝’으로 생긴 화단이 있다. 게릴라 가드닝은 1973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한 도심 속 버려진 땅에 활력을 주는 운동이다. 우리나라의 게릴라 가드닝은 보통 식물원에서 사온 화려한 풀꽃을 심는다. 하지만 풀꽃은 잠깐 예쁘고, 매년 식물을 심어서 보충해줘야 유지할 수 있다. 스스로 가지치기하는 작은 나무들로 그 자리를 채우면 덜 신경쓰고 더 오랫동안 볼 수 있는 아담한 도시숲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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