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나무 열매

호두 두 개를 손안에 쥐고 돌려 본 적이 있는가? 수없이 돌려서 반질반질해진 호두알을 필자는 기억한다. 여기에서 하나, 호두열매는 맞는 표현일까? 추석 전에 호두를 털면 알이 완전히 영글지 않아서 딱딱한 속껍질이 잘 까진다. 반면에 추석을 지낸 호두는 열매가 영글어서 속껍질은 잘 까지지 않고 겉껍질은 잘 부서진다. 맛은 당연히 후자가 더 고소하고 양도 많다. 자연에서 얻는 모든 것들이 수월하게 얻어지지 않지만, 호두도 참 여러 단계의 수작업을 거쳐서 탄생한다.
 


수고스럽게 열매를 털어와 겉껍질을 까고, 또 말려서 속껍질을 깐다. 호두는 알맹이를 부수지 않고 최대한 크게 또는 그 모양 그대로 까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유럽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호두나무는 여러 지역에서 호두 까는 도구를 연구하게 했다. 천천히 나사를 돌려가며 힘을 주어 깨는 도구, 스프링으로 순간적인 힘을 줘 깨는 도구, 여러 크기에 맞게 적당한 힘을 줄 수 있게 만든 도구, 수압을 이용하는 도구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중에 호두까기인형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도구이다. 긴 콧수염과 군인 정복을 입은 인형의 입을 벌리고, 호두를 넣은 후 손잡이를 누르면 인형의 입이 닫히면서 호두가 깨진다. 기계적으로 호두를 까는 한 사람의 모습이 아닌, 단란하게 화롯가에 모여 호두를 까며 대화를 나누는 가족 모습이 떠오른다. 유명한 호두까기인형을 재료로 한 동화도, 발레공연도 연말이면 언제나 등장하는 일반적인 일이 됐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호두나무 모습은 키가 큰 아름드리나무이다. 잎은 여러 작은 잎들이 하나의 큰 잎을 만든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호두 모습은 3가지이다. 우선 우리가 먹는 고소하고 주름이 많은 속 모습, 두 번째는 그 속을 단단한 껍질이 싸고 있는 모습, 마지막으로 그 단단한 갈색 껍질을 둥글게 초록색 과육이 싸고 있는 모습이다. 마지막 모습은 어쩌면 흔하게 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과일을 먹을 때 달고 육즙이 나오는 맛있는 과육을 먹는다. 하지만 호두는 무엇일까? 호두는 열매일까? 일반적인 과일이 아님은 틀림없다. 과육은 단단하고 맛이 없는 반면, 딱딱한 씨앗 안의 속은 너무도 고소하고 기름지다. 우리가 먹는 호두는 씨앗 속이다.

호두나무를 심고 열매가 열릴 때까지 10년이 걸린다고 했다. 호두나무를 심으면 열매 열릴 때 심은 사람이 죽는다는 속설이 있는 이유이다. 실제로 어릴 적 필자의 할아버지는 연세가 많으셨음에도 불구하고 호두나무를 다른 할아버지에게 심어달라고 부탁하셨다고 한다. 다른 과실수에 비해 열매가 늦게 열리는 호두나무를 우리 할아버지들은 자식 손자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심으셨던 모양이다.

아직도 필자 고향에는 30년 넘은 커다란 호두나무가 7그루 남아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가 뒷산 밭에 심은 호두나무에 열매가 열린 것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지낸 어린 시절이 또렷한 기억보다 흙냄새와 바람 냄새에 그대로 남아있다. 호두의 과육은 목장갑에 고무장갑까지 끼지 않고 까면 손에 검은 물이 든다. 그래서 그 과육으로 염색을 하면 초콜릿색이 나고 은은한 향도 있다고 하니 한 번쯤 염색을 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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