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한창 나무에 꽃이 피는 계절이다. 하얗고, 분홍빛 꽃들이 피어서 봄이 왔음을 알게 한다. 그때 피는 꽃들이 살구, 자두, 복숭아, 매실 등 열매를 맺는 과일나무들이다. 모두 장미과(科) 식물이라 그 모양이 비슷비슷하다. 어느 나무의 꽃인지 알아보기는 참 힘들다. 그렇게 비슷한 꽃을 피운 나무들은 여름의 한복판인 7, 8월에 열매를 보면 구분하기 쉬워진다. 6월부터 초록 매실은 상자째 팔려나간다. 살구도 노랗게 익어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복숭아는 가장 늦은 8월, 단연 크기와 맛과 가격에서 차이를 보이며 한철 장사의 정점에 있을 것이다. 과일의 계절인 여름이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살구(殺拘)라는 이름은 ‘개를 죽인다’는 뜻이다. 우리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맛있는 간식이었지만 ‘행인’이라고 부르는 살구 씨앗에는 독이 있어서 떨어진 살구를 먹고 죽은 개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개와 관계가 있는 이름은 흔하지 않는데,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름이다. 달고 신맛이 나는 살구 열매는 ‘핵과’이다. 씨앗이 열매 한가운데에 크게 박혀있는 모든 과일은 핵과이다. 핵과인 과일들은 특히 먹음직스럽다. 이런 식물들의 전략은 탐스러운 과일을 누군가가 먹고 멀리에 가서 씨앗을 버리게 하는 것이다. 열매가 아주 많이 달리지 않기 때문에 씨앗은 꽤 크다. 살구, 매실, 버찌, 복숭아, 올리브, 체리, 호두, 은행, 모두 단단한 씨앗이 가운데 박혀있다.

살구나무에 살구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그런데 주변에 있는 살구나무를 보면 나무 아래 작년에 떨어진 열매의 씨앗들이 많이 쌓여있다. 사람들이 살구를 먹지 않아서 씨앗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나무 입장이나 사람 입장에서 모두 손해를 보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가 먹는 과일은 마트에서 사는 과일에 한정된다. 예전에는 먹기 위해 담장 안에 과일나무를 심었다면, 요즘은 먹는 것보다 관상용, 조경용으로 그 심는 목적이 많이 달라졌다. ‘이왕 심는 거 아파트나 공원에서 관리하고, 동네 주민들과 함께 가꾸어서 나눠 먹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살구나무와 아주 비슷한 나무로 매실나무가 있다. 둘을 비교했을 때, 씨앗이 과육에서 잘 분리되면 살구이고, 잘 분리되지 않으면 매실이다. 잎 앞뒷면에 털이 없으면 살구, 있으면 매실이다. 꽃이 피었을 때 붉은색 꽃받침이 뒤로 젖혀지면 살구이다. 하지만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먹어보는 것이다. 복숭아와 다르고, 자두하고 또 다른, 특유의 살구 맛이 생각난다.

노란 열매 하면 요즘 아이들은 망고나 바나나, 파인애플을 떠올릴 것이다. 주황색 열매에는 오렌지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이들. 크레파스의 ‘살색’ 표기가 인종차별적이고, 더 이상 우리나라 살색으로 말하기에 무리가 느껴졌을 때 대안으로 나온 것이 살구색이다. 지금은 모든 크레파스에 살색 대신 살구색이란 이름표가 붙어있다. 그 이름을 선택할 때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크레파스를 가장 많이 쓰는 우리 아이들이 다른 나라 과일에 익숙하고 살구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진 않다. 살구는 지금이 아니고는 맛볼 수 없는 귀한 우리나라 과일이다. 아이들과 살구를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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