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모양의 생강나무 잎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입추가 지났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아직 초록색으로 영글지 않은 열매들이지만 단풍이 드는 가을이 되면 각자 고유의 색을 담을 것이다. 열매가 빼곡하게 들어찬 느티나무 아래에 서니 마음이 한껏 풍요롭다.

한참을 올려다보는데, 두 가지 크기의 나뭇잎이 눈에 들어온다. 열매를 달고 있는 가지의 나뭇잎은 손가락 반 마디만 하고, 열매를 달지 않은 가지 잎은 손가락 길이보다 더 길고 크다. 이렇게 큰 차이로 나뭇잎 크기가 다른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큰 잎은 주로 나무를 먹여 살리는 일을 한다. 나뭇잎이 해야 하는 기본적인 역할이다. 작은 잎은 기본적인 일 외에 열매가 익으면 열매와 함께 날개가 되어 멀리까지 날아가야 하는 특수임무도 함께 맡고 있다. 그래서 열매가 떨어질 때쯤 나뭇잎과 함께 빙글빙글 돌면서 나무 그늘을 벗어나는 열매들을 볼 수 있다. 너무나 멋진 작전이다.

잎의 크기가 다른 느티나무

나무에서 잎 모양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는 종종 있다. 향나무의 경우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모양의 잎이 있다. 어렸을 때는 만지면 정말 아플 정도로 따가운 짧은 바늘잎이 난다. 어린 향나무가 살아남기 위해 바늘잎으로 무장을 하는 것이다. 7~8년 된 가지에서는 대조적으로 계속 만지고 싶을 만큼 부드러운 비늘잎이 함께 난다. 그리고 더 이상 다른 동물들의 공격을 받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크면 진한 향기와 함께 부드러운 비늘잎으로 덮인다. 그래도 여전히 나무 아랫부분이나 중심부에는 바늘잎을 준비하고 있다. 은행나무 잎은 부채꼴 모양이 가운데가 벌어져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실제로 은행나무의 나뭇잎은 여러 개의 가느다란 침엽이 모이고 통합해 만든 활엽이다. 부채꼴 모양인 잎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가운데 부분이 벌어진 것이 아니고, 침엽들이 모여서 붙다가 덜 붙었단 말이다. 부채모양의 잎이 바람에 찢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이다. 그런 나뭇잎은 깊게 찢어지는가 하면 얕게 살짝만 벌어진 것이 있다. 그 모양이 심한 것은 다시 침엽으로 나뉠 기세이다.

은행나무 잎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깊게 갈라진 것은 수그루라는 잘못된 정보도 있었다. 하지만 개체마다 잎이 다르게 갈라지는 뚜렷하고 중요한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의 지문이나 얼굴처럼 개체마다 조금씩 다른 특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봄에 숲에서 가장 일찍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 잎은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삼지창 모양이다. 하지만 어떤 잎은 일반적인 잎 모양을 하고 있다. 대체로 큰 나뭇잎은 갈라지고 작은 나뭇잎은 갈라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잎은 갈라지고 일부 잎만 갈라지지 않는다. 중간단계의 잎들도 분명히 있다. 이렇게 생각을 좁히다 보면 생강나무는 큰 잎들이 사라졌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미리 작은 잎들을 대충 만들어 놓은 듯하다.

나무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그들은 각자의 역할을 확실히 해낸다. 몸에 온전히 그들의 경험을 가지고 살아가고, 또 그 몸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간다. 나무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더니 열매도 맺었고, 그 열매가 아기나무가 됐다. 번개가 쳐서 쓰러지더라도 다시 살아갈 기회만 있다면 나무는 일어설 것이다. 나무는 스스로 살고 있는 지금이 옳은지 판단할 수 없지만, 지금을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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