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 바로 멈춘다. 이렇게 이름이 헷갈릴 수도 있을까? 매실나무? 매화나무? 뭐가 맞을까?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니 의견이 분분하다. 학계나 농업 관련 기관에서는 매실나무가 많았고, 정서적이거나 문화적 성향을 띠는 기관에서는 매화나무가 많았다. 두 이름을 다 쓰는 경우도 많았다. 꽃인 매화와 열매인 매실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엔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비슷한 모양이다. 필자는 국립수목원과 국립생물자원관의 의견에 따라 매실나무라고 우선 부르겠다.

올 봄엔 용인보다 더 앞서서 매화를 보겠다고 섬진강변으로 달려갔다. 산과 들에 온통 하얀 매화가 잔뜩 피어 있었다. 또 토종 홍매화를 보겠다고 순천의 금둔사까지 찾아갔다. 그렇게 매화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얼마 후 마당에 있던 매실나무에서 꽃이 폈다. 옮겨 심은 뒤 첫봄이었던 작년엔 꽃이 열 송이 남짓밖에 피지 않았는데, 올핸 가지를 꽃으로 감쌀 만큼 많이 피었다. 광양이나 순천의 흐드러진 매화보다 곁에 있는 작은 내 나무가 더 예뻐 보이는 것은 당연하리니. 그런데 그 기특한 매실나무가 올해 일을 냈다. 매실이 달린 것이다. 작년엔 꽃을 보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는데, 처음으로 올해는 열매까지 달리다니 눈물 나게 감격스러웠다. 달린 매실이 필자의 눈에는 사과처럼 크게 보인다.

매실은 여름에 초록에서 노란색으로 익는데 단맛보단 신맛이 강하다. 초록이 절정을 이룰 때 가장 신맛이 강하다가 노랗게 익어감에 따라 단맛이 진해진다. 그러나 대부분 초록일 때 딴다. 설탕에 재워서 매실청 또는 매실액기스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다. 때로는 술을 담그기도 한다. 그러나 여느 과일처럼 날로 먹지는 않는다. 익지 않은 초록 매실에는 독성분이 있어서 식중독이나 탈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설탕에 재운 매실은 일정 기간 지나면 액과 과육으로 분리해 매실차로 먹거나 요리할 때 넣는 조미료로 쓰고 장아찌를 담그기도 한다.

예전에는 매실 껍질을 벗기고 짚불 연기에 그을려 말리면 검게 변하는 데, 이를 오매(烏梅)라고 했다. 이를 가지고 오매차나 제호탕을 만들어 먹었는데 모두 더위나 갈증에 도움을 주는 음료였다. 요즘도 더울 때 매실청에 냉수를 섞거나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마시곤 하는데, 그 풍습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매실은 음식의 재료뿐만 아니라 약재로도 사용된다. 할머니들의 경험에서 나온 처방으로 과식을 하거나 소화불량으로 배가 아플 때 매실차를 진하게 타서 먹으면 효과가 있었다는 경험자가 많다.

매실의 신맛을 전략으로 이용한 사례도 있다.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조조가 대군을 거느리고 출병했다가 군졸들이 지치고 물도 없이 갈증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 큰소리로 군졸을 향해 “저 산을 넘으면 큰 매실나무 숲이 있다. 열매를 따 먹자”라고 외쳤더니 이 말을 들은 군졸들이 매실을 생각하며 금방 입안에 침이 돌아 갈증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일화다.

남쪽 지방의 매실이 마트에 올라오는 것을 보니 이제 얼마 후면 우리 집도 매실을 수확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까지 겹쳐 마냥 행복하다. 노랗게 익혀 황매로 매실청을 담가볼까 상상도 해본다. 나무를 보며 행복감을 느끼는 건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봄이 되면 매화꽃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야깃거리를 아껴놔야겠다. 그땐 매화나무라고 부르고 싶을 것 같다. 볼 게 많은 봄에는 매화를 보고 열매가 열리는 여름에는 매실을 보라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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