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선나무

3·1운동 및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는 여기저기서 큰 의미를 두고 행사가 치러졌다. 그런데 100주년이 되는 것이 또 있다. 1919년 세상에 알려진 아름다운 우리 꽃나무가 있으니 바로 미선나무다. 1917년 식물을 연구하던 정태현이 처음 충북 진천에서 미선나무를 발견하게 된다. 미선나무는 1속 1종의 식물로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산식물이었으니 처음 본 새로운 식물이 얼마나 놀라웠을까? 그런데 1919년 일본인 나카이에 의해 전 세계 학계에 보고되며 만국공용인 ‘Abeliophyllum distichum Nakai’라는 학명을 갖게 됐다. 본디 학명 끝에는 최초 발견자의 이름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우리 꽃 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사람 이름이 붙어 나라를 빼앗긴 설움이 그대로 남겨지게 됐다.

3·1운동이 일어난 해 한쪽에선 한국 고유 식물종의 이름마저 약탈당한 셈이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식물 중 개나리를 비롯한 327종의 학명에 ‘나카이’라는 이름이 들어있다. 참으로 치욕스럽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열매 모양이 우리 전통부채의 일종인 미선을 닮아서 불리게 된 ‘미선나무’라는 이름도 쉽지 않았다. 일본은 자신들의 이름인 ‘부채나무’라고 부르라고 강요했다. 당시 우리말로 된 이름을 정리하던 조선박물연구회 소속 학자들이 이를 어기며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 ‘미선나무’라고 기록함으로써 현재 미선나무라는 이름이 남게 됐다. 미선나무의 최초 발견자인 정태현도 이 연구회 소속이었다.

개나리와 닮은 물푸레나무과의 낙엽활엽관목으로 외국에서는 화이트 포시티아(White Forsythia) 즉, 흰 개나리라고도 불린다. 통꽃의 꽃잎이 네 갈래로 갈라져 개나리꽃 모양과 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선나무 꽃은 개나리보다 훨씬 일찍 피며 조금 작고, 그윽한 향기가 진한 것이 특징이다. 비슷한 모양, 같은 물푸레나무과의 개나리, 영춘화는 향기가 없지만 미선나무 꽃은 향기가 아주 좋다. 신기하게도 개나리와 미선나무 모두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다.

전국 어디나 흔하게 건강하게 잘 자라는 개나리에 비해 미선나무는 가녀리고 청초한 모습처럼 주변 환경에 민감해 특정지역에서만 자라 그 자생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처음엔 진천과 괴산 등지인 충북 북부에서만 발견되다가 이후 북한산, 전북 부안, 충북 영동, 황해도 등에서도 자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그러나 그 수가 많지 않아 여전히 보호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식물이다.

겨울이 지나 이른 봄이 되면 3월에 잎보다 먼저 개나리꽃 비슷하게 생긴 하얀 꽃이 줄기를 따라 수북하게 달린다. 연분홍색, 상아색 꽃이 피는 미선나무도 있지만 흔하지 않다. 꽃이 지고 나서 잎이 나오는데 키도 1미터 남짓밖에 자라지 않고 옆으로 가지가 퍼지며 자란다. 꺾꽂이로도 잘 번식한다. 열매는 둥글고 납작하게 생겼는데 끝이 안으로 얕게 파여 있어 미선을 닮았다. 납작한 반달 모양 씨앗이 두 개 들어있다.

한반도 특산식물인 미선나무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주목을 받고 있다. 학계에 보고된 지 올해로 100년을 맞았다. 그동안 한반도 한쪽에서 조용히 살던 미선나무에게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정태현이 처음 발견해 1962년 천연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된 충북 진천군 자생지는 사람들에 의한 훼손이 심해 보전가치를 잃어 지정 7년만인 1969년 천연기념물 지정에서 해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2017년까지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보호를 받다가, 꾸준한 자생지 보전과 복원, 서식지 외 보전기관 등의 노력으로 많은 개체 수가 유지돼 2018년부터 해제됐다. 이제는 유럽과 일본으로 전해져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는 나무가 됐다.

올 봄 지인들과 떠나는 산책길엔 우리 민족과 역사를 같이 해온 미선나무를 만나러 가려 한다. 이름도 뺏기는 수모를 당하고, 못된 사람들의 발에 밟히기도 하고 뿌리째 뽑히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가녀린 몸으로 굳세게 살아남아 환하게 꽃을 피우는 우리네 미선이를 보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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