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나무

얼마 전 서울 천호동의 한 공원에 가게 됐다. 그날은 마침 날씨도 따듯해 공원으로 산책 나온 사람들, 운동 나온 사람들, 그리고 사람이 그리워 나오신 어르신들까지 공원이 평일 점심때인데도 북적거렸다. 필자가 사는 곳이 용인 처인구의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보니 마치 장날 나온 것마냥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공원이 어색할 정도였다. 그런데 사람들만 북적거리는 것이 아니었다. 노란 개나리, 분홍 진달래, 크고 하얀 목련, 작년 빨간 열매가 가득 달린 채 피워낸 노란 산수유, 분홍과 연둣빛을 띠는 하얀 매화, 작은 밥풀같은 흰색 조팝, 빨간 명자꽃까지 4월 초의 공원이 형형색색 화려한 꽃단장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꽃잔치에 좀 당황스러웠다. 본디 자연은 경쟁 속에서도 조화가 있는 법으로 같은 봄꽃이라도 피는 시기를 조금씩 달리해 꽃 본연의 임무인 열매 맺기를 용이하게 만든다. 매화를 시작으로 산수유가 피고 목련,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날이 따듯해지면 조팝과 명자가 피기 시작하는 순서라는 게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날 본 공원은 뭐가 그리 급한지, 짧아진 봄에 조급한 생각이 든 건지 여러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있는 모습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서울은 서울이었다.

용인의 우리 동네는 이제 명자가 꽃봉오리를 빨갛게 물들이며 하나둘 피어나려고 준비하고 있다. 작년에 마당에 심어놓은 명자나무는 적응하느라 몸살을 하는지 꽃을 몇 송이 피우지 못했으나 올해는 좀 다르다. 초록색 잎만큼이나 빨간색 꽃이 많다. 기대된다.

얼마 전 세상에 알려진 지 100년이 되는 미선나무에 대한 글을 쓰면서 차마 쓰지 못한 말이 있다. 마치 친구 이름 부르듯이 부를 수 있는 나무 이름 미선이, 그런데 더 토속적인 이름을 가진 나무가 있다. 바로 명자. 요즘엔 이름에 ‘자’자를 잘 안 붙이는데 예전엔 흔한 돌림자였다. 미자, 숙자, 영자 등 필자의 어머니 시대에 많이 들어본 이름들이었는데 명자도 그 중 하나였다. 이름 덕분인지 명자나무는 더욱 친숙하게 느껴진다. 이모 정도 될까? 명자말고 ‘산당화’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중국이 원산지인 명자나무는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꽃과 열매가 보기에 좋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집 주변과 공원에 심어왔다. 장미과라 줄기에 가시도 있고 빨간색 꽃이 핀다. 요즘엔 많은 품종개량으로 분홍색, 흰색 꽃이 피기도 한다. 꽃 모양은 들장미라 불리는 찔레꽃을 닮았다. 다만 색이 빨갈 뿐이다. 꽃이 소박하면서도 화려함을 간직하고 은은하면서도 청초하고 고결해 보인다 해서 생기발랄한 ‘아가씨나무’라는 애칭도 가지고 있다. 빨간 꽃잎이 설레는 볼의 홍조같다. 부럽다.

꽃이 지고 나면 열매가 달리는데 탁구공부터 달걀만한 열매가 작은 배처럼 생겼다. 처음엔 초록색으로 달리나 익게 되면 누렇다. 모과와 같이 직접 깨물어 먹지 않으나, 향이 좋고 몸에 좋아 술을 담그기도 하고 식초도 만들고 약으로도 쓰인다. 중국에서는 ‘탕후루’라 해서 명자나무 또는 산사나무 열매를 꼬치에 꿰어, 물엿을 묻힌 뒤 굳혀 간식으로 먹는다.

명자나무는 환경을 그리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또한 가지치기에도 관대해 원하는 모양으로 가꿀 수 있기에 아름다운 울타리로도 많이 애용된다. 초록색 바탕에 빨간색 포인트는 꼭 크리스마스가 아니어도 우리를 따듯하게 하는 매력적인 색의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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