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늘 강자에 의해 쓰여 왔다. 역사를 만드는 힘도, 기록하는 힘도 강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뒷날 역사를 읽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감동을 주고 오래도록 기억되는 인물은 오히려 강자가 아니다. 멀게는 붓다나 예수가 그렇고, 가깝게는 전봉준이나 유관순이 그렇다. 당연히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 중에도 그런 인물이 있다. 나는 오늘 그 가운데 한 사람, 박성율 목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그는 강원도 홍천의 시골 교회 목사다. 이름만 목사일 뿐, 오히려 투쟁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09년부터 골프장 난개
수원지방법원 법정동 308호, 판사의 방망이 소리조차 들어설 자리 없는 법정은 마치 대합실처럼 붐볐다. 행선지와 사람 수를 말하면 한번 되물어 확인하고 표를 끊어주는 판매원마냥 판사는 그렇게 사건들의 판결을 내렸다. 지난 4월, 다섯 살 해인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사고의 판결도 그렇게 내려졌다. 판사의 말이 끝나자 해인이 어머니는 오열했다. 금고 1년, 집행유예 2년. 법정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A씨는 부주의하게도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걸지 않고, 기어조차 중립으로 둔 채 차에서 내렸다. 그 바람에 차가
한적한 시골길의 적막을 깨며 트랙터들이 줄지어 달린다. 우악스러운 모양새 때문에 얼핏 보아 탱크가 떠올려지는 트랙터들이, 죽창에 매단 깃발을 펄럭이며 끝없이 이어졌다. 전봉준의 인상 깊은 얼굴이 새겨진 검은 깃발에는 ‘전봉준투쟁단’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박혀 있다. 역사 속 인물, 녹두장군 전봉준이 다시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것인가? 백여 년 전, 흙 일구며 살았던 민초들의 분노를 다시 보는 듯 전율이 인다.1894년, 이 땅에 있었던 혁명을 역사책에서 배웠다.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 ‘이대로는 살 수 없다’며 몸서리쳤던 농민들이
지난 12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하루아침에 청기와집 주인이 바뀌는 기적까지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들 은근한 기대를 가슴에 품은 채 민중총궐기 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집을 나서며 설렜던 내 마음은 돌아올 때 절망이 돼 있었다. 그날 멀리서 버스를 대절해 온 사람들의 숫자를 뺀 지하철 승객 통계만으로도 130만이 넘는 사람이 모인 큰 집회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언을 듣거나, 구호를 외치거나, 유명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어깨를 들썩이는 것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그런 이들에게
최순실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언론만 보면 당장이라도 나라가 전복될 듯한 기세다. 정치에 관심 없던 사람들조차 기사를 퍼 나를 정도니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기는 하다. 하야가 됐든, 탄핵이 됐든, 이제 대통령은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무르지 못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사실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가 정상적인 국가였다면 박근혜가 대통령 자리에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과오를 덮어줄 박근혜 같은 후임자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들의 거래는 그렇게 시작됐을 것이다. 지난 대선을 앞두
밥은 생명이다. 밥은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생명줄이었고, 쌀은 농부에게 목숨과도 같다. 그런 쌀을 1톤들이 가마니에 담아, 힘겹게 도시로 싣고 가서 길바닥에 쏟아 버리는 농부들이 있다.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법한 이 가을에, 들판을 누렇게 물들이는 벼를 기계로 갈아 엎어버리는 농부들도 있다.지난 5일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는 ‘쌀값 대폭락, 분노의 쌀 청와대로!’, ‘백남기 농민 폭력살인 규탄’이라는 구호 아래 ‘청와대 벼 반납투쟁 농민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이날 200여 명의 농부들이 100여 대의 트럭에 나락을 싣고
한가위나 설 명절이 다가오면 ‘부엌으로부터 여자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글을 자주 접하게 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흩어져 사는 가족과 친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정을 나누는 소중한 전통 명절에 음식이 빠질 수는 없다. 명절에도 외식으로 끼니를 때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 일을 맡아야 한다. 그러니 여자를 해방시키려 하지 말고 함께 하면 된다. 그렇게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명절이 되도록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내가 명절 때 진심으로 해방되고 싶은 것은 부엌보다 교통체증이다. 막히는 도로 위 차
미리 걱정하는 일도 별로 없는 느긋한 성격이지만, 내겐 남들은 잘 하지 않는 걱정이 있다. 그저 한번 하고 잊어버리거나 어쩌다 한번 하면 좋으련만, 나는 늘 이 걱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미래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 내 삶의 방식이 다른 생명에게 어떤 피해를 줄까?’ 다른 이들이 듣기엔 오지랖이라고 생각할 일이지만 나에게는 심각한 고민들이다.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세제를 쓰고 있다. 얼굴비누, 손비누 따로 있고, 99퍼센트 살균비누까지 있다. 목욕비누, 샴푸, 린스, 치약, 주방세제와 세탁세제, 표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습니다.”지난 15일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 내용이다. 마치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금기어라도 되는 것처럼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가 신조어들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신조어들이 ‘헬조선’과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대다수 국민들은 이미 ‘헬조선’에 살고 있다. 너무 쉽게 부정적인 풍조를 탓하는 대통령은 ‘딴나
‘삼성직업병 문제 올바른 해결을 위한 반올림 농성 300일 문화제’가 열렸다.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밥 한 끼 해드리기 위해 모인 마음씨 고운 아줌마들이 그곳을 찾았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르는, 밤잠도 설칠 만큼 후덥지근한, 그래서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씨에도 그들은 기꺼이 불 앞에 서서 시원한 콩국수를 만들었다. 가족을 위해 차리는 밥상이었더라도 이렇게까지 신날까? 그렇게 만들어진 시원한 콩국수 한 그릇은 그곳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더위를 잠시나마 식혀주었으리라. 이 싸움의 시작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울산 앞바다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일어났다. 형제들이 모여 소식을 나누는 게시판에 대구에 사는 언니가 지진 소식을 전해왔다. “지진을 몸으로 겪으니 순간 두렵더라! 32층에 사는 내 친구는 애들 데리고 탈출했대. 너무 무서워서.” 그러자 다른 언니가 거들었다. “우리나라도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아닌데 경주, 울산, 부산에 다닥다닥 핵발전소를 지어놓은 것도 모자라 신고리 5, 6호기를 새로 짓겠다니 다들 제 정신인지 모르겠다.”그날 고리원자력본부는 ‘B급’ 비상발령을 내렸고, 경주에 있는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인 방폐장도 재난
지난 20일부터, 전국 47만 명의 만 12~13세 여학생(2003~2004년 출생)을 대상으로 자궁경부암 예방을 위한 무료 HPV 예방접종이 시작됐다. 그런데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HPV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이에 더해 자궁경부암 백신 접종을 적극 권장하는 캠페인 활동을 펼쳐왔던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대한산부인과학회 등에 부작용에 대해 문의하거나 항의하는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자궁경부암은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human paillomavirus)의 지속적인 감염이 원인이다. HPV
침대 없는 방에 얇은 요를 깔고 홑겹 이불을 덮은 열 명 남짓한 환자들. 둘로 나뉘어 서로 발을 맞댄 채 줄지어 잠든 모습이 20~30년 전 군대 내무반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 이 뿐만이 아니다. 곰팡이가 슨 천장, 찢어진 환자복, 복도를 청소하는 환자, 재단 이사장의 개를 돌보는 환자의 사진들. 아니?! 21세기 대한민국에 아직도 이런 병원이 있을라고.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사진들은 모두 용인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사진이다. 전국보건의료노조가 공개한 자료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런 병원이 있었다니! 내가 사는 곳, 바로
아주 오래전 한 장애인이 쓴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부모님을 따라 미국 이민을 간 뒤 체조선수가 됐는데 연습 중 척수를 다쳐 장애인이 된 그는 어른이 되어 어머니의 나라를 찾는다. 그는 의문을 갖게 되는데 ‘어디를 가도 장애인을 마주치기 어렵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달리 장애인의 수가 적은 것일까?’였다. 오래지 않아 이유를 알게 된다.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길이나 교통편의 문제에 더해,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시설에서 살며, 외출할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나
중고 시절은 그래도 나았다. 여중, 여고를 다녔으니까 누군가에게 들킬까 조심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 ‘혹시 내가 생리대 갈러 가는 걸 누가 알면 어쩌지?’, ‘화장실 갈 때 생리대 주머니를 챙기는 나를 보고 남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혹시 바지 위로 볼록한 선이 드러나면 어쩌지?’, ‘혹시 누가 냄새를 맡고 눈치 채면 어쩌지?’ 이런 걱정들을 했던 기억이 난다.누구나 똥, 오줌을 누며 사는 것처럼 생리는 여자라면 누구나 하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생리는 부끄러운 것, 감추어야 하는
'국가란 무엇인가' 이 말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한 주간지의 표지 제목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대형 참사에 대응하는 국가를 보며 도대체 ‘국가는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국가는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고,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최소의 기능이라 믿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
온 나라가 가습기 살균제 문제로 시끄럽다.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사망사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오랜 시간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제라도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사회문제로 거론될 수 있어 다행이다.SK케미칼(당시 유공)이 가습기 살균제를 최초 개발해 팔기 시작한 것은 1997년이다. 그리고 2002년 다섯 살 어린이의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사망사고가 최초로 접수됐다. 벌써 십년을 훌쩍 넘겨 말 그대로 ‘옛날’ 이야기 같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언제부터인가 황사, 미세먼지(PM10), 초미세먼지(PM2.5)라는 말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그나마 황사는 비교적 크기가 커서 코와 목이 대부분 걸러 주지만, 미세먼지는 머리카락 굵기의 1/7, 초미세먼지는 1/30 크기로 우리 호흡기에 걸리지 않고 허파와 허파꽈리(폐포)에까지 나쁜 영향을 미친다.세계보건기구(WHO)는 미세먼지를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 납, 오존, 일산화탄소 등으로 이뤄진 ‘1급 발암물질’이라고 발표했다. 미세먼지는 허파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혈관
봄이다. 맑고 푸른 하늘에 흩날리는 꽃잎만 봐도 눈물이 나던 봄을 보내고 ‘이제는 슬픔을 넘어 희망을 노래하자’던 봄을 지나 또 한 번의 봄을 맞았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들추며 이렇게 봄은 오고야 말았다. 무엇하나 속 시원한 적이 없었다.진도 팽목항 앞바다에서 304 송이 아름다운 꽃을 그리 억울하게 보낸 가족들에게 지난 두 해는 견디기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처음 그들은 나라 최고 권력자에게 애원했다. 내 아이를 살려 달라고. 하지만 그에게 찾아가는 길은 경찰에 의해 번번이 막혔다.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모든
세계 여러 나라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본다. 첫째, 나라는 못 살지만 사람들이 잘 사는 나라. 둘째, 나라는 잘 살지만 사람들이 못 사는 나라. 셋째, 나라도 잘 살고 사람들도 잘 사는 나라. 우리나라는 어디에 해당될까?첫 번째에 해당하는 나라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태국과 같은 나라의 경제력은 낮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나라들이다. 두 번째에 해당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일본, 미국, 영국과 같은 신자유주의에 내몰려 빈부격차와 사회 불평등이 심한 나라들이다. 세 번째에 해당하는 나라는 독일, 스웨덴, 덴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