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아

울산 앞바다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일어났다. 형제들이 모여 소식을 나누는 게시판에 대구에 사는 언니가 지진 소식을 전해왔다. “지진을 몸으로 겪으니 순간 두렵더라! 32층에 사는 내 친구는 애들 데리고 탈출했대. 너무 무서워서.” 그러자 다른 언니가 거들었다. “우리나라도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아닌데 경주, 울산, 부산에 다닥다닥 핵발전소를 지어놓은 것도 모자라 신고리 5, 6호기를 새로 짓겠다니 다들 제 정신인지 모르겠다.”

그날 고리원자력본부는 ‘B급’ 비상발령을 내렸고, 경주에 있는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인 방폐장도 재난대응 ‘주의’ 단계를 발령하며 비상상황실을 가동했다. 이는 규모 5.0 정도의 지진으로도 핵발전소와 방폐장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야기는 이어졌다. “전기는 서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데 핵발전소는 시골에다 짓고, 하는 짓들이 너무 고약해. 그리고 당장 핵발전소를 다 멈춘다 해도 핵폐기물 처리는 다음 세대들이 감당해야 할, 산더미보다 무거운 짐인데, 오히려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니 기가 막힌다!”
실제로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영광, 울진, 경주, 울산, 부산에 있다.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이 결정되면서 고리·신고리 핵발전소 단지에는 모두 10기의 핵발전소가 들어서게 되는 셈이다. 핵발전소 반경 30킬로미터 안에 380만 명이 살고 있지만, 이런 위험천만한 결정이 이뤄질 때 그곳에 사는 시민들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핵발전소를 새로 짓겠다는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는 결코 전기가 부족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우리나라도 이제 살만큼 사는데 아직도 경제 성장을 들먹이며 건설경기 부양을 위해 이런 어리석은 결정을 하다니.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해 가까운 앞날에 핵발전소를 모두 멈추겠다는 나라들이 하나 둘 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그렇게 안하냐고?”
우리나라는 1980년대에 핵발전소를 많이 지었다. 전기가 남아돌게 되자, 핵발전소가 생산해 내는 전기 규모에 맞춰 수요를 늘리기 위해 전기요금 인하정책을 썼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더 많이 낮췄다. 중국보다 낮은 전기요금은 전기를 많이 쓰는 해외기업들이 우리나라에 공장을 짓게 했고, 이런 상황들은 다시 전기의 수요를 늘렸다. 전기수요가 늘었으니 다시 핵발전소를 짓는다. 악순환이다.

핵발전소는 쉽게 끄거나 켤 수 없다. 그래서 밤낮으로 같은 양의 전기를 만들어내는데 전기를 많이 쓰지 않는 밤에는 전기를 그냥 버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심야전기를 쓰게 하기 위해 심야 전기보일러를 권장했고, 이렇게 늘어난 수요는 다시 줄이기 어렵게 되었다. 늘어난 수요를 따라가기 위해 화력발전소를 더 짓기도 했다.

우리나라 1인당 전기 사용량은 국민소득에 비해서 아주 높다. 아마도 수십 년 동안의 싼 전기요금이 낳은 전기낭비 습관 탓일 것이다. 선진국은 해마다 전기 사용량이 조금씩이나마 줄어들고 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집을 고치고, 재생가능 에너지 개발에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나라는 태양광 발전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독일보다 태양에너지가 훨씬 풍부하다. 바람도 많이 부는 편이어서 풍력발전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개발에 적합하지 않다’는 잘못된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듯하다. 핵에너지 개발에 눈먼 정부와 핵마피아들의 탐욕이 심어 놓은 그릇된 정보 때문이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 때는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없애버렸다. 그나마 늘고 있던 태양광 발전을 오히려 후퇴시킨 것이다. 이 일로 누가 이익을 보았을까? 정책 방향이 합리적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사용에도 불평등이 존재한다.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전기를 많이 쓰는 대기업에게 생산가보다 싸게 전기를 팔아 큰 이익을 주고, 한전은 적자가 되는 이런 구조를 바꿔야 한다. 한전의 적자는 오롯이 국민의 몫, 바로 세금으로 메워지고 있다. 이것도 부족해 국민들은 핵발전소로 인해 더럽혀지고 위험한 땅에서 살아가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전기가 부족하지 않다. 여름철 에어컨을 많이 켜는 피크 시간대를 뺀 나머지 기간에는 전기가 남아돈다. 태양이 가장 뜨거운 이 시간대는 태양광 발전으로 관리하면 매우 유리하다. 우리나라는 땅이 좁아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주차장 지붕이나, 고속도로 접도구역, 강 주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된다. 이러한 일들이 정책으로서 제대로 실행된다면 우리나라도 핵발전소나 (미세먼지의 주범인)석탄 화력발전소를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보다 추운 곳으로 옮겨가 살고 있는 언니의 말이 따끔한 일침으로 다가왔다. “겨울에도 보일러 펑펑 틀어 놓고 반팔에 반바지 입고 사는 것이 결코 행복이 아니라는 걸 사람들은 왜 모를까? 싼 전기, 싼 에너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우리와 아이들이 어떤 대가를 치르며 살아야 하는지 알면 그렇게 함부로 쓰지는 못 할 거야.”

핵폐기물은 원자로 밖으로 나오더라도 핵반응을 완전히 멈춘 것이 아니어서 엄청난 양의 열을 내뿜는다. 이를 식히는데 최소 십 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린다. 이뿐이 아니다. 다 식은 핵폐기물은 적어도 십만 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덜 위험하다.
지금, 우리가 무심코 쓰는 전기에너지는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십만 년 동안 위태로운 쓰레기를 물려주는 것이다. 핵발전소, 이제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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