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환경운동가

봄이다. 맑고 푸른 하늘에 흩날리는 꽃잎만 봐도 눈물이 나던 봄을 보내고 ‘이제는 슬픔을 넘어 희망을 노래하자’던 봄을 지나 또 한 번의 봄을 맞았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들추며 이렇게 봄은 오고야 말았다. 무엇하나 속 시원한 적이 없었다.

진도 팽목항 앞바다에서 304 송이 아름다운 꽃을 그리 억울하게 보낸 가족들에게 지난 두 해는 견디기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처음 그들은 나라 최고 권력자에게 애원했다. 내 아이를 살려 달라고. 하지만 그에게 찾아가는 길은 경찰에 의해 번번이 막혔다.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그러나 말뿐이었다. 오히려 갖은 방법으로 진상규명을 방해했다. 정부 고위 책임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고 구조 실패의 책임을 해경 123호 정장 한 사람에게 떠넘겼다. 결국 대통령의 눈물은 6.4 지방선거를 위한 연극이었다.

유가족은 매도됐다. 원하지 않았던 섣부른 배·보상 문제를 들이대며 ‘돈이나 밝히는 비윤리적인 사람들’로 유가족들을 몰아세웠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TV와 신문도 제대로 된 보도는커녕 그들을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데 동조했다.

그 즈음부터 평범한 사람들의 입에서 ‘세월호? 놀러가다 죽었는데 왜?’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수학여행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교육청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는 학사 일정이다. 그리고 '여객선'을 타고 가는 수학여행을 교육청이 공문으로 학교에 홍보했다)

한 아비는 46일간 먹지 않았다. 그는 진실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갉아 먹으며 싸웠다. 유가족들은 국회에서, 청와대와 가까운 청운동에서 여러 날 한뎃잠을 자며 진실을 찾고자 했다. 그렇게 힘겹게 싸워 얻어낸 세월호특별법은 수사권과 기소권 없는 반쪽짜리였지만 그렇게라도 어렵게, 어렵게 열리게 된 청문회는 어떤 방송에서도 보도하지 않았다.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으려는 언론 통제가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청문회에서 구조 책임자들이 뱉어내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를 수없이 들어야 했다.)

온갖 기록들은 조작됐다. 운항기록을 숨기려 했고 항적과 교신 파일을 조작했다. 세월호 활동가와 유가족을 폭행하고 전화를 감시했다. 사람을 고용해 세월호 반대집회를 여러 차례 열었다.(탈북자들에게 일당을 주며 세월호 반대집회에 참여하도록 해온 어버이연합이라는 극우단체는 1259명의 사람들을 세월호 반대집회에 동원했다. 모두 서른아홉차례다.

그 돈의 출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렇게 그들은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이 목소리 내지 못하도록, 행동하지 못하도록 억압했다.

그럼에도 맞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참사를 책임져야할 보이지 않는 손들은 끊임없이 협박하고 통제하며 사람들을 억압하지만 ‘왜 세월호가 침몰했는지’, ‘왜 아무도 구조하지 못했는지’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이 있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이 그동안 밝혀진 산더미처럼 많은 기록과 자료를 모아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라는 책을 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세월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침몰할 때까지 101분 동안 선장과 선원들은 무엇을 했는지, 해경과 지휘부는 무엇을 했는지... (중략) '과연 승객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476명이 탄 여객선이 갑자기 침몰하는 상황에서 해경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중략) 기록팀은 객관적인 자세로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구할 수 있었다!" (선원이 구할 수 있었다. 해경이 구할 수 있었다. 구할 수 있었다.) (중략)

10시 30분 세월호는 침몰했다. 배가 기울어진 8시 49분부터 101분 만이었다. 구조된 인원은 172명. 헬기 3대가 한 명씩 끌어올려 35명을 서거차도로 옮겼고 123정이 선원 17명을 포함해 79명을 태웠다. 10시 전후에 도착한 어업지도선과 어선이 마지막까지 남아 승객 58명을 구조했다. 304명이 희생됐다.

아직 아홉 명의 미수습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를 인양하라’는 외침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외쳐졌지만 구조 책임이 있는 자들은 지금도 진실을 감추려 애쓰고 있고 세월호는 진실과 함께 진도 팽목항 앞바다에 아직도 잠겨있다.

난 믿는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언젠가는 진실이 거짓을 이길 것이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을 읽으며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진실을 밝힐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나는 가슴에 ‘노란리본’이라는 희망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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