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가습기 살균제 문제로 시끄럽다.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사망사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오랜 시간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제라도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사회문제로 거론될 수 있어 다행이다.

SK케미칼(당시 유공)이 가습기 살균제를 최초 개발해 팔기 시작한 것은 1997년이다. 그리고 2002년 다섯 살 어린이의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사망사고가 최초로 접수됐다. 벌써 십년을 훌쩍 넘겨 말 그대로 ‘옛날’ 이야기 같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알려진 13살의 피해자 임 군은 매일 산소통을 매고 학교에 다니고 있고 몸무게가 30kg이 되지 않는다.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들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최초 사망사고가 접수된 다음해인 2003년,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를 수출하려고 호주정부기관(NICNAS)에 제출한 보고서 내용에는 ‘PHMG의 흡입독성이 있고, 상온에서 분말형태로 존재해 비산 시 호흡기 노출가능성 때문에 보호장비 갖추기를 권고한다’ 라는 내용이 명기돼 있다. 원료를 생산하는 업체가 그 독성을 이미 알면서도 팔았다는 뜻이다.

그 뒤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으로 아이들은 계속 죽어갔다. 2011년 보건복지부가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 모를 폐 손상의 요인으로 추정된다”는 보고서를 내고 이에 따라 질병관리본부가 “사용과 출시 자제를 권고”할 때까지 연간 판매된 수량이 60만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까지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사망자는 모두 239명이다.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사망사고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옥시의 의뢰를 받아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실험연구 보고서를 써주고 거액의 연구용역비를 받은 혐의로 서울대 수의학과 조아무개 교수가 구속됐다. 이 실험에서 임신한 쥐 15마리 가운데 13마리의 새끼가 뱃속에서 죽었다. 그러나 옥시의 법률대리인인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피해가 없었던 일반 쥐 실험내용만을 발표했다. 조 교수의 실험결과를 왜곡한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성분의 독성을 알면서도 숨긴 채 생산, 판매하며 이윤만을 추구한 기업에 1차 책임이 있다.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맡고 있는 옥시뿐만 아니라 애경, 롯데, 이마트, 홈플러스 그리고 원료를 공급한 SK케미칼까지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납품, 판매한 회사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다.(언론이 유독 옥시만 비추고 있어 다른 기업들은 책임이 없는 듯 숨겨져 있지만)

욕심 많은 기업들만의 책임일까?
이 사건과 관련해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법 제도와 관계기관의 감시와 통제는 작동되지 않았다. 화학성분의 사용 용도를 변경해도 독성실험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 우리나라 제도가 문제다. 피해자가 나타나고 피해 실태조사와 보고서가 나왔는데도 판매중지를 명하지 않은 정부에 책임이 있다. 어찌 이리 허술하고 무능할까? 하기야 비단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서만 나타난 문제겠냐만.

그동안 야당이 꾸준하게 법안을 발의해 왔지만 번번이 정부와 여당은 반대나 소극적 태도로 기업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환경부에서는 피해자 접수를 해오다 어느 순간 그마저도 닫아 버렸다. 몇 푼 안 되는 의료비 지원을 빼면 피해자에 대한 대책이 없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환경관련 시민단체를 찾아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여론이 들끓어 온 국민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환경부는 다시 피해자를 접수하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원칙 없는 태도인가?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원칙을 잃고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거나 여론의 눈치만 살피며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정부기관을 보면 누군들 깊은 불신과 실망감에 빠져들지 않겠는가?

기업, 학자, 법률대리인, 정부와 여당 못지않게 이 사태에 책임이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언론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전에 언론은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좀 더 자세히 알렸어야 했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고 또 지금도 고통 받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은 이렇게 말한다. “오히려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은 우리보다 나아요. 사람들의 관심이나 받고 있잖아요. 이것은 안방의 세월호입니다.”

책임을 묻고 싶은 또 한 무리가 있다.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 너무 편한 것, 완벽히 깨끗한 것을 무분별하게 추구해 왔다. 일상화된 물티슈에도, 렌즈세정제, 손세정제에도 이번 사태에서 문제가 된 성분이 포함돼 있다. 어디 그뿐인가. 주방세제, 세탁세제, 섬유유연제, 표백제, 샴푸, 린스, 향수, 방향제, 일회용생리대…. 우리는 너무 많은 화학성분에 노출된 채 그 편리함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사회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안전한 성분을 찾고 “내 손으로 만들어 쓰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편리함을 좇기 위해 별 생각 없이 썼던 화학제품들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사람들이 알아채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 사태는 너무도 많은 희생자를 낳았지만 더 늦기 전에, 더 많은 것을 잃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뼈아픈 교훈인 셈이다.

“설거지할 때 헹궈지지 않는 세제잔여물을, 우리는 날마다 먹고 있으며 그 양을 평생 모으면 한 병은 될 것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에겐 전혀 우습지 않다. 섬뜩한 경고로 다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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