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아

'국가란 무엇인가' 이 말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한 주간지의 표지 제목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대형 참사에 대응하는 국가를 보며 도대체 ‘국가는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는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고,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최소의 기능이라 믿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참사가 일어난 지 두 해가 지났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소름끼치도록 닮은 사건이 내가 사는 용인에서도 일어났다. 다섯 살 아이가 어린이집 하원버스를 타려다 죽은 사고가 그것이다.
4월 14일, 해인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맞은 편 유치원 주차장에서 밀려 내려온 차가 어린이집 버스를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하원버스를 타려고 줄 서있던 해인이는 두 차 사이에서 충격을 받고 쓰러진다. 그런데 어린이집에서는 즉시119에 신고도 하지 않았고, 사고로 쓰러진 아이를 걷게 하는 등 사고에 대한 응급대처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결국 해인이는 장파열로 인한 과다출혈로 숨을 거두었다.

이 어린이집은 원아가 100명 이상으로 간호조무사를 의무적으로 두어야 하는데 이날 간호조무사는 이미 퇴근하고 없었다. 평소에도 의무실에 있지 않고 부원장 아이의 등·하원까지 도맡아 돌보고 있었다고 한다. 의료지식을 가진 간호조무사가 있었더라면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살릴 수 있었다. 아니, 우리 아이는 살 수 있었다." 해인이 가족은 이렇게 절규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그랬듯이 해인이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배가 침몰할 때 적절하게 안내방송을 하고 적극적으로 구했다면 전원을 구조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처럼 해인이도 적절한 응급조치가 있었다면 살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 사고는 브레이크를 걸지 않은 차 주인에게 1차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런 부주의한 사고에 대비한 안전교육과 어린이집 안팎에 안전 대책을 미리 세워두는 않은 것이 더 큰 책임이라고 봐야 한다. ‘안전 대책 시스템이 망가진 사회에서 일어나는 참사를, 참사에 직접 원인이 된 촉발사건 하나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안전전문가의 말이다. 이는 안전 대책를 소홀히 한 어린이집에 사고의 책임이 있다는 것과 같다.

만약 어린이집 버스의 문이 보도 쪽을 향하고 있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차도와 보도의 경계석이 있었다면 밀려오는 차가 경계석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평소 충분한 안전교육을 받았다면 119신고와 적절한 응급조치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충분히 해인이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아이가 죽었다. 도로에서의 무당횡단이나 차량사고와 같은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어린이집 차를 타려다 일어난 사망사고다. 그런데 경찰에서도, 해당관청에서도 철저한 수사와 감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어린이집이 재원생 부모들에게 휴원과 리모델링, 그리고 운영진을 변경한다고 공지한다. 제대로 된 조사와 수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납득할 수 없는 시민들은 가족과 함께 다음날인 5월 20일에 기흥구청을 찾았다.

그런데 담당공무원들은 영혼 없는 얼굴로 ‘우리도 어린이집에 지도점검을 갔었다’, ‘공정한 경찰수사 결과가 나와야 우리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경찰이 가지고 가서 없다는 말에 원내 CCTV도 보지 못했다’, ‘어린이집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신들과) 똑같이 억울하다고 이야기 한다’, ‘우리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칠 수 없고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한다’, ‘법에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으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말들을 되풀이 했다.

어린이집이 사고가 나고 3주가 지난 5월 4일에 이미 어린이집을 다른 이에게 매각한 사실이 드러났다. 기흥구청 관계자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또 교육자로서 원생의 죽음에 애도하고 사과와 재발방지에 힘써야할 사람들이 이미 어린이집 매각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어린이집에서는 자신들도 피해자라며 처음부터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고, 적극 돕겠다고 말하면서 해인이 부모가 사고관련 기록들을 모으기 위해 원내 CCTV 요청과 119 신고음성 녹취내역 열람동의를 구했지만 거절했다.

억울한 죽음, 많은 이들이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라고 여기며 그냥 넘긴다. 하지만 언제라도 내 주변에 일어날 수 있는 사고다. 이런 사고를 겪고도 우리 사회가 아무런 대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참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해인이 사망사고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고의 재발방지를 위해서 경찰은 사고를 철저히 수사해야 하고, 해당 관청에서는 어린이집을 철저히 감사해야 한다.

어린이집 울타리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분향소가 있다. 꽃과 인형, 아이들이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들로 울타리가 가득 차있다. 그런데 어린이집에서는 분향소를 강제로 치우려 했다. 세월호에서 희생된 학생들의 교실을 강제로 치우려는 단원고와 너무도 닮았다.

해인이는 사고 후 부모의 동의 없이 퇴소처리 되었다고 한다. 세월호 희생학생들을 부모와 상의하지 않고 재적처리한 단원고와 너무도 닮았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생업을 포기하고 이 사건에 매달리는 해인이 아빠의 모습은 세월호 희생자 부모들과 너무도 닮았다.
사고를 직접 본 뒤 차를 타지 못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해인이 반 친구들이 있다. 세월호에서 친구들의 죽음을 목격한 생존 학생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것과 닮아 있다.

사고 당일 어린이집은 부모들에게 사고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고, 사고 일주일 후 어린이집을 다시 정상운영하며 수행성경비를 깎아주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어이없게도 어린이집은 진상규명을 위해 뛰어다니는 해인이 가족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었다. 보상금을 들먹이며 세월호 유가족들을 모욕하는 것과 너무도 닮았다.

거짓으로 일관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데만 혈안이 된 소위 교육자라는 어린이집 관계자들과, 권한을 가지고도 뒷짐 지고 있는 관련공무원들의 모습을 세월호 참사 때 우리는 이미 다 보았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뒤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생존수영을 가르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수영을 잘해도 소용이 없다. 선박의 안전에 관한 규제와 구조체계 정비 등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세월호 참사는 반복될 것이다. 내 아이가 ‘사고의 피해자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것’에 안도할 것이 아니라 어린이집의 안전에 관한 규정 강화, 교사 안전교육, 미비한 시설보완 그리고 책임자 처벌에 관한 규정을 강화하는 등 전반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엄연히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분명 우리를 보호해야할 국가가 존재한다. 하지만 사망사고가 일어나면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경찰을 대신해 피해자의 가족이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사고관련 자료들을 모으고 기록한다. 아이를 보호해야할 어린이집의 안일함으로 말미암아 아이가 죽었지만 관리·감독해야 할 해당 관청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에 피해자 가족은 지금도 계속해서 다양한 곳에 민원을 넣고 정보공개를 요청하고 있다.

“너무 억울하게 보내서 우리는 날마다 여기 납골당에 와 있어요.” 해인이가 좋아하던 군것질거리와 꽃을 정성스럽게 올리신 할머니는 해인이 앞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그림책을 읽었다. 그러고는 몸을 추슬러 다시 거리로 나간다. 사고가 난 뒤 밥 한 끼, 잠 한숨 편한 적이 있었을까.
슬픔과 분노의 힘으로 일어나 전단지를 나누고, 서명을 받기 위해 거리에 선 해인이 가족의 얼굴은 넋이 나간 사람의 얼굴이었다. 이런 해인이 가족의 모습은 어쩌면 사회적 사고를 지금껏 외면해온 우리가 만나게 될 뒷날의 우리 모습일지도 모른다.

안전한 사회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오직 우리들의 관심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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