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생명이다. 밥은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생명줄이었고, 쌀은 농부에게 목숨과도 같다. 그런 쌀을 1톤들이 가마니에 담아, 힘겹게 도시로 싣고 가서 길바닥에 쏟아 버리는 농부들이 있다.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법한 이 가을에, 들판을 누렇게 물들이는 벼를 기계로 갈아 엎어버리는 농부들도 있다.

지난 5일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는 ‘쌀값 대폭락, 분노의 쌀 청와대로!’, ‘백남기 농민 폭력살인 규탄’이라는 구호 아래 ‘청와대 벼 반납투쟁 농민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이날 200여 명의 농부들이 100여 대의 트럭에 나락을 싣고 서울로 향했다. 그러나 경찰은 ‘나락’을 시위 용품으로 쓰거나, 도로에 뿌릴 수 있다며 한강을 건너지 못하게 막았고, 농민대회는 결국 예정대로 열리지 못했다.

농부들의 나락을 실은 트럭은 밤을 넘기며 도로에 갇혀 있었다. 사실 경찰의 이런 교통 통제는 위법이다. 이전에도 나락 실은 트럭을 집회 장소에 가지 못하도록 막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 법원은 ‘불허된 집회라고 할지라도 경찰의 제지를 허용할 수 없다’고 봤다. 뿐만 아니라 ‘단지 미신고 물품인 쌀을 가지고 집회장소로 간다는 이유만으로 제지하는 것은 경찰권 행사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전농은 이미 종로경찰서에 공문을 보내 ‘집회는 평화적으로 진행할 것이며, 벼는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할 것이고, 차량이 대열을 지어 저속운행하거나 정지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미리 밝혔다. 그럼에도 집회 참가 농민들은 경찰의 명백한 불법행위로 한남대교를 건너지 못했고, 길에서 비닐을 덮은 채 밤을 보내야만 했다. 경찰이 농부들의 발을 묶어 놓는다고 서울로, 청와대로 향하는 농심을 어찌 막을까.

농부들이 물대고 모내어, 온갖 정성으로 기른 벼와 쌀을 버리는 기이한 행동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경찰의 통제’가 아니다. 삼십 년 전 수준으로 떨어진 쌀값을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으로 끌어올리면 되는 일이다.

쌀 한 가마니는 30년 전 가격인 10만원 선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17만원 하던 쌀값을 21만원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 쌀값은 반 토막이 돼 버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농부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른다. ‘쌀값은 똥값이고 똥값이 농민값’이라는 웃지 못 할 푸념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공무원들에게 30년 전 연봉 받아가며 일하라고 하면 일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외면할 수 없는 하소연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수백 톤의 쌀이 남아돌고 수 천 억원의 보관료가 든다는데, 정부는 아무런 규제도 없이 쌀 수입을 늘리고 있다. 자기 집 곳간에 쌀이 넘쳐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장날에 나갔다가 쌀을 사서 무겁게 짊어지고 돌아오는 미련스런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쌀값의 높고 낮음보다 더 심각한 사태는 우리나라가 유전자조작(GMO) 쌀을 시험재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국 곳곳의 농촌진흥청 시험재배지에서 상용화를 기다리며 유전자조작 쌀이 자라고 있다. 유전자조작의 종주국인 미국조차 주식인 밀은 GMO 재배가 금지돼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주식인 쌀을 GMO 쌀로 재배를 시도하고 있다니, 자다가도 벌떡 깨어날 일이 아닐 수 없다.

외국 문물이 들어오면서 입는 옷과 사는 집은 바뀌었지만, 아직 바뀌지 않은 것은 우리의 입맛이다. 수천 년 이어져 내려오며 밥상에 올랐던 쌀. 쌀은 음식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런 쌀이 지금처럼 대우를 받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한 해 전 멀리 전남 보성에서 올라와 쌀값 보장을 외치던 농부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신 후 최근에 돌아가셨다. 한 농부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경찰의 불허에도 전국 많은 곳에서 분향소를 차렸다. 용인에는 죽전역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아이와 함께 국화꽃을 준비해 분향소를 찾으면 좋겠다. 우리가 외면할 때 힘겹게 땅을 지켜 오신 백남기 어르신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향을 피웠으면 좋겠다. 타들어 가는 향을 보며 똥값 신세를 면치 못하면서도 해마다 미련하게 남아 땅을 일구는, 이 땅의 모든 농부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건넸으면 좋겠다. 농부가 키운 쌀로 생명을 연장하는 모든 이들이 다녀갔으면 좋겠다.

지금 백남기 어르신의 장례식장에는 경찰로부터 시신을 지키려는 많은 사람들이 몇날 며칠을 병원 복도 바닥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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