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길의 적막을 깨며 트랙터들이 줄지어 달린다. 우악스러운 모양새 때문에 얼핏 보아 탱크가 떠올려지는 트랙터들이, 죽창에 매단 깃발을 펄럭이며 끝없이 이어졌다. 전봉준의 인상 깊은 얼굴이 새겨진 검은 깃발에는 ‘전봉준투쟁단’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박혀 있다. 역사 속 인물, 녹두장군 전봉준이 다시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것인가? 백여 년 전, 흙 일구며 살았던 민초들의 분노를 다시 보는 듯 전율이 인다.

1894년, 이 땅에 있었던 혁명을 역사책에서 배웠다.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 ‘이대로는 살 수 없다’며 몸서리쳤던 농민들이 농기구 대신 무기를 들고 일어났던 혁명.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 기억 속에 한 줄 글귀로만 존재했던 동학농민혁명이 2016년, 이 땅의 농민들에 의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조선 말기, 권력기반이 약한 민씨 정권과 지금의 박근혜 정권은 많이 닮아있다. 탐욕에 눈이 멀어 측근 비리, 양극화 방치, 조세제도의 모순 등 썩어빠진 모습들이 쏙 빼닮았다. 역사의 반복이 우리를 조롱하는 듯하다.

‘이게 나라냐’라는 자조는 이제 초등학생들 입에도 오르내린다. 견딜 수 없는 참담함에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쌀값 보장을 외쳤던 백남기 어르신을 물대포로 죽여 놓고 반성할 줄 모르는 박근혜 정권을 꾸짖기 위해 떨쳐 일어난 수백의 전봉준이 청와대로 향했다. 전봉준투쟁단은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서군은 15일 해남에서, 동군은 16일 진주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경찰은 경기도 오산과 안성 나들목에서 투쟁단의 고속도로 진입을 막았다. 이유는 나락과 볏집, 깃발, 트랙터와 같은 시위물품을 싣고 있기 때문에 진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법원이 허용한 집회를 경찰이 막아설 법적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경찰에 협조하려 했다. 경찰이 꼬투리 잡는 물건들을 내려놓고 서울로 향하려 했지만, 경찰은 양재 나들목에서 끝내 전봉준투쟁단의 발목을 잡았다. 백여 대의 트럭을 움직일 수 없게 막아놓고, 차에서 내리지 않는 농민을 강제로 끌어 내리고, 차 열쇠를 빼앗았다. 자신들이 도로를 막아 놓고는 도로교통법 위반이란다. 오갈 수 없게 된 농민들이 구호를 외치자 이번에는 집시법 위반이라는 형법 조항을 들먹였다. 그리고 전원 검거, 전차량 견인 명령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은 경찰의 채증카메라 봉에 머리를 맞았고 피가 얼굴을 타고 턱까지 흘렀다. 한 농민이 경찰 방패에 맞고 쓰러져 의식을 잃기 전까지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은 계속 됐다. 경찰의 민낯은 그렇게 포악했다. 모두 29대의 트럭이 견인되고 38명이 연행됐으며 5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이런 전봉준투쟁단의 소식을 전해들은 시민들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임에도 담요와 따뜻한 음식을 준비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지난날 후원물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이던 백남기 농민 장례식장의 풍경이 떠올랐다. 오지 못하는 이들의 트랙터 기름 값 후원도 이어졌다.

주요 언론들의 태도는 달랐다. 26일 집회를 두고 연행자와 부상자 없는 평화시위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날을 위해 열흘을 달려온 농민들이건만, 경찰에 맞아 응급실로 실려 가고, 길바닥에서 비닐 덮고 밤을 보낸 농민들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우리나라 농민은 언론에게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존재인 것일까. 결국 전봉준투쟁단은 ‘무장해제’된 굴욕적인 모습으로, 지하철과 버스로, 집회 장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눈까지 내려 ‘집회 참가자가 적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의 눈으로 하늘을 바라봤다는 유문철 전농 단양군농민회장은 굳은 날씨에도 광장을 꽉 채운 시민들을 보며 힘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겨우내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노숙하며 끈질기게 백남기농성장을 지켰다. 또 한 해 동안 공들여 농사지은 쌀의 절반을 팔아 투쟁기금으로 내어 놓았다. 집회 다음날 그는 갈비뼈를 다친 성치 않은 몸으로 견인된 트럭을 찾아 다시 광화문으로 향했다.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경찰에 막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전봉준투쟁단의 광화문 입성을 홀로나마 이루고 기록으로 남겼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했다.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반생명적 도시문화는 긴 시간 인간성을 파괴해왔고, 농업이라는 생명의 근간에 대한 성찰을 잃게 했다. 유문철 단양군농민회장은 말한다. “도시인들은 자신이 기계인줄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 적응하며 사는 도시의 삶이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멈춰야 한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한 사람이라도 더, 스스로 흙을 찾아 도시를 떠나오기를 바란다. 가려진 생명의 감수성을 다시 살려내기 바란다.”

2016년 11월, 우리는 역사적 전환기에 서 있다. 수백 년 이어 내려온 농민 수탈의 역사를 이제 끝낼 수 있을 것인가. 값싼 외국농산물로부터 우리 농산물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기초농산물의 최저가격을 보장하고, 농업기반을 지키기 위한 ‘혁명’이 필요한 때다.

전봉준투쟁단 결의문의 일부를 옮긴다.
‘우리의 행진과 결의는 박근혜가 퇴진할 때까지 전진한다. 목이 잘릴지언정 의를 세우고 나라를 지켜온 사람이 이 땅에서 흙 묻히며, 땀 흘리며 살아온 농민이다. 그가 바로 전봉준이다. 우리의 말과 우리의 깃발은 승리할 때까지 전진한다. 전봉준투쟁단은 막히면 뚫을 것이고, 잡혀가면 또 다른 전봉준이 나설 것이다. 마침내 농민 손으로 박근혜정 권을 끌어내리고 나라다운 나라를 반드시 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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