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언론만 보면 당장이라도 나라가 전복될 듯한 기세다.  정치에 관심 없던 사람들조차 기사를 퍼 나를 정도니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기는 하다. 하야가 됐든, 탄핵이 됐든, 이제 대통령은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무르지 못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사실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가 정상적인 국가였다면 박근혜가 대통령 자리에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과오를 덮어줄 박근혜 같은 후임자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들의 거래는 그렇게 시작됐을 것이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국가정보원 뿐만 아니라 국군사이버사령부까지 여론 조작에 매달렸다. 인터넷 여론 조작을 위해 사실과 다른 정보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계속 퍼 날라 여론이 되게 했다. 이 사건은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선거와 정치에 개입한 사건이었지만, 법정은 ‘정치개입은 맞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책임자였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어디 그 뿐인가. 세월호 참사 때는 어땠나. 참사가 있던 날 7시간 동안 사라졌다가 나타나서는 어디서 꿈을 꾸다 온 사람처럼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왜…’라며 무책임과 무능함의 극치를 보였다. 메르스 사태 또한 세월호와 다르지 않았다. 온 국민의 반대에도 역사 왜곡의 의도가 분명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실 추진하고, 헌법에 명시된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을 부정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어떤가. 피해 당사자의 뜻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합의를 ‘불가역적’이라는 조항을 덧붙여 비굴하게 추진했다.

이 뿐인가. 절차를 무시한 채 일방적이고 성급하게 개성공단을 닫아버림으로써 입주기업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끼쳤고 남북관계를 악화시켰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사드 배치를 결정함으로써 국익의 손실은 물론이고 나라를 전쟁의 위험에 놓이게 했다. 후보시절 공약했던 쌀값의 공약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집회에 참가했던 백남기 농부. 그에게 경찰은 물대포를 조준 직사해 숨지게 했다. 엄연한 국가권력에 의한 살인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으며, 경찰과 공권력은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고인의 부검까지 시도하려 했다.

이렇게 나열된 일들만으로도 박근혜는 대통령 자리에서 진작 내려왔어야 했다. 국민과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고, 나라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할 국가 원수로서의 역할을 저버린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순실 사건은 대통령이 혼자서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어찌 국가의 원수로 자격을 인정할 수 있을까?

최순실의 사업을 위해 청와대 비서관들이 동원되고, 재벌들은 뒷돈으로 줄을 대어 더 많은 이득을 챙기려고 달려들었다. 최순실의 딸은 ‘헬조선에서 살아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청춘들’에게 엄청난 무게의 무기력을 안겨주며 그 젊은이들을 짓밟았다. 진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은 충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우리는 정직하지 못하고 너무나 어리석은 지도자 때문에 몸서리치지만, 어쩌면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마을이 모여 도시를 이루고, 도시가 모여 나라를 이룬다’는 너무도 당연한 이치처럼, 지도자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대변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간다. 

내가 속한 어느 단체에서 벌어진 일이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졌지만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지도자를 끝내 버리지 못하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지도자의 품성이나 태도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억울함과 부당함을 풀어줄 것이라는 욕심만 있었을 뿐이다. 지도자가 도덕적이지 못하고 소속 회원들 위에 군림하려 할 때, 그 지지는 폭력의 자양분이 되고 만다. 스스로를 경제대통령이라던 이명박, 그가 ‘부도덕한 자’ 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집 값만 올려준다면…’ 하는 욕심이 그를 찍게 만들었던 것과 닮아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예상하겠지만, 박근혜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해도 갑자기 나라가 훨씬 살만해 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제이, 제삼의 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그들을 떠받히는 세력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세력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다.

자연과 생명, 작은 것과 오래된 것의 소중함은 퇴색됐고, 소박함과 순수함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빠르고, 화려하고, 편한 것이 모든 가치의 꼭대기에 앉아버린 지금,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른 박근혜를 다시 지도자로 가질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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