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늘 강자에 의해 쓰여 왔다. 역사를 만드는 힘도, 기록하는 힘도 강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뒷날 역사를 읽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감동을 주고 오래도록 기억되는 인물은 오히려 강자가 아니다. 멀게는 붓다나 예수가 그렇고, 가깝게는 전봉준이나 유관순이 그렇다. 당연히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 중에도 그런 인물이 있다. 나는 오늘 그 가운데 한 사람, 박성율 목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는 강원도 홍천의 시골 교회 목사다. 이름만 목사일 뿐, 오히려 투쟁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09년부터 골프장 난개발로 망가지는 강원도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져 싸우고 있다. 강원도는 경기도 다음으로 골프장이 많은 골프장 천국이다. 대부분의 경우 골프장들은 자연을 망치고, 사람을 짓밟고, 법질서 위에 지어지고 있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골프장 건설을 위한 환경영향평가는 철저히 이뤄지지 않는다. ‘돈만 있으면 다 되는 것이 환경영향평가’라는 소문은 근거가 없지 않다.

자연 파괴 문제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는 더 있다. 그것은 토지강제수용이다. 국가의 공공시설도 아닌 골프장을 짓는데 국가가 나서서 오랜 세월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강제로 삶의 터전을 빼앗는 것이다. 이미 헌법재판소가 ‘골프장 사업을 위해 토지를 강제수용하는 것은 헌법에 불합치하다’는 결정을 내렸음에도 폭력적인 토지강제수용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목사이자 투쟁가인 그는, 2011년 골프장 난개발 문제로 노숙을 시작했다. 그해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선정되면서 그의 투쟁 목록에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운동이 더해졌다. 설악산국립공원은 천연기념물이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산양이 살고 있는 곳이다.(산양은 청정 산간에서만 서식하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217호, 환경부 멸종위기 I급으로 지정된 보호종이다.)

그는 강원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설악산 관광사업, 골프장, 핵발전소, 송전탑 건설과 같은 사안들은 모두 뿌리가 같다고 말한다. 이러한 난개발로부터 강원도를 지키는 일은 ‘단순한 환경운동을 넘어, 자본과의 싸움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모두 함께 싸워야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운동을 위해 홍천 춘천 원주 강릉 화천 인제 양구 속초 양양 고성 등 그 넓은 강원도를 돌면서 간담회를 열고, 사람들과 단체를 찾아다니며 설득했다고 한다. 그렇게 2015년 10월 초에 국민행동이 출범했고, 연이어 강원행동을 출범하면서 강원도청 앞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2016년 1월에는 환경청 앞 비박 농성도 혹독한 추위 속에 시작됐다.

그는 노숙할 때 가장 힘든 것이 모기라고 했다. “여름보다 겨울의 노숙이 더 쾌적하다고 할까?” 라며 웃었다. 추위와 더위는 늘 함께 있는 것이어서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며 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평소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다는 그는 비박 농성 중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고 현재 치료 중이다.

조작과 불법으로 진행된 설악산케이블카 사업을 조건부 승인했던 국립공원위원회와 달리 민간으로 구성된 문화재위원회는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부결시켰다. 비로소 유난히 무더웠고 몹시도 추웠던 날들을 견뎌낸 일 년간의 싸움이 일단의 막을 내리게 됐다. 자연과 생명을 담보로 재벌과 언론, 정권과 공안마피아들의 탐욕스런 질주에 비로소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일 년 넘게 이어왔던 강원도청 앞 노숙농성장과 환경청 앞 비박농성장을 접던 날, 그는 ‘싸움은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양양군은 문화재청 결정에 반발하며 재심의 뜻을 보였고 설악산 관광사업의 절차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고 물었다. 청와대와 환경부가 컨설팅하고 지방정부, 언론사, 지역의 토호세력까지 모두 동의하는 사업을 소수의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막을 수 있겠느냐는 냉소적 시선이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긴다는 생각으로 포기하지 않았어요.” 아마도 그렇게 한 길을 걸었기에 오늘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으리라.

콘크리트혼화제연구소 반대운동에 반쯤 발을 담그고 있는 나에게, 그의 말이 깊은 무게로 다가왔다. “대충 싸워서는 이길 수 없어요. 무모해 보이죠. 그렇지만 생계를 챙기고 가족을 챙기며 싸워서는 이길 수 없어요. 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은 전문성과 업무능력은 좋아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로 싸울 뿐 삶을 던지지 않아요. 화려하게 나타났다가 어느 날 사라지죠.” “일로 싸워서는 이길 수 없어요. 싸움이 곧 삶이 되어야 합니다. 남들은 어렵겠다 말하지만 싸우지 않는 사람의 삶도 어렵기는 다 마찬가지 아닌가요.”

마지막 그의 말은, 추운 겨울을 견디며 오랜 기다림 끝에 피어 올린 목련처럼 아름답고, 깊은 고뇌와 오랜 경험에서 얻은 철학이 엿보인다. 싸움이 곧 삶이라고 말하는 사람. 그를 강자라 말할 수 없지만, 오래도록 기억되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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