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아

아주 오래전 한 장애인이 쓴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부모님을 따라 미국 이민을 간 뒤 체조선수가 됐는데 연습 중 척수를 다쳐 장애인이 된 그는 어른이 되어 어머니의 나라를 찾는다. 그는 의문을 갖게 되는데 ‘어디를 가도 장애인을 마주치기 어렵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달리 장애인의 수가 적은 것일까?’였다. 오래지 않아 이유를 알게 된다.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길이나 교통편의 문제에 더해,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시설에서 살며, 외출할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길에서 장애인을 마주치기 어려운 나라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안산에 간 적이 있다. 그 뒤로 다시는 유모차와 함께 지하철은 타지 않는다. 너무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찾는 것은 물론 환승을 위해 이동하는 것도 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그때 유모차나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차량 칸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안내도 없고 그마저도 규칙 없이 배치돼 있어 해당 차량 칸을 찾기 위해 플랫폼 처음부터 끝까지 헤매기도 했다. 이 경험으로 나는 생각하게 됐다.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겠구나’라고.

어쩌면 지하철은 그래도 나은 편인지 모른다. 저상버스는 거의 다니지 않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더군다나 멀리 가기 위한 고속버스나 기차는 아예 불가능하다. 차가 없는 장애인들에게 다른 도시로의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일 것이다.

경기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장애인 활동보조권리 보장,
장애인 기초소득 보장 등을 요구하며 경기도청에서 한달 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 용인촛불 밴드

독일 베를린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곳의 버스는 모두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일 뿐만 아니라 보도와 차 바닥 간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정차 시 차가 오른쪽으로 기울어 바닥의 높이를 낮춘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승강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버스기사가 차에서 내려 차 아래쪽에 접힌 판을 펼쳐 다리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안전하게 탄 것을 확인하고 판을 접고 다시 운전을 시작한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기다리는 장애인이 있으면 승무원이 내려서 탑승을 도와주는데 간격이 넓거나 턱이 있을 경우 다리를 만들어준다. 또 내리고자 하는 정거장을 승무원이 확인했다가 내릴 때도 도와준다. 당연히 평소 정차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려도 다른 사람들은 불평하지 않고 기다린다.

장애인과 관련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태어날 때부터 소아마비로 걸을 수가 없는 아이가 있었다. 장애인 학교가 따로 있지만 아이 부모는 일반학교를 보내고 싶어 했다. 긴 시간 베를린 시와 학교와 부모가 이야기를 나눴고 어렵게 입학을 결정했다. 내가 이야기를 듣고 놀란 것은 아이가 4년간 다니는 동안 불편함이 없게 하려고 백년도 더 된 옛 건물을 고쳐 계단 옆에 장애인 통로를 내고 전용엘리베이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장애인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알려진 스웨덴을 이야기 해보자. 스웨덴은 이미 1950년대부터 대규모 시설을 없애고, 소규모 시설과 장애인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생활을 도와왔다. 자립생활을 위한 주거비용 전부를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또 1974년 건축법이 개정돼 건축 허가를 받으려면 장애인이나 노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주택을 건물 면적의 10퍼센트 이상 지어야 한다.

스웨덴은 ‘장애인 최저소득이 생활비를 뺀 나머지 15퍼센트의 여유가 남아야 한다’고 사회서비스법에 규정돼 있다. 저축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겨우 월 20만원이다. 그것도 소득분위 하위 47퍼센트까지만 받을 수 있다. 월 소득액 기준, 1인 93만원, 배우자 포함 148만원 이하의 소득자만 받을 수 있다. 직업을 가진 이들은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수준이다.

지금 장애인 한 사람이 여의도에 있는 ‘이룸센터’ 입구 좁은 유리 난간 위에서 고공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의 이도건 집행위원장이다. 그는 지난 2일 휠체어에 앉은 채 몸을 수원역 육교 난간에 줄로 매달고 목숨을 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깡그리 무시해 이렇게라도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했다. 바닥에 앉거나 누울 수도 없이 휠체어에서 단식 농성 중이지만 소수자의 외침이 무시되지 않도록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 장애를 무릅쓰고 이런 위험하고 힘겨운 농성을 벌이는 것은 경기도에서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힘이 있다면 다른 방법을 선택했겠지만, 목소리를 전달할 방법이 이 외에는 없다. 기본적인 이동권조차 보장되지 않으니 교육을 받고 개인의 역량을 강화할 수 없다. 직장을 다니는 등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사회 구조적으로 제한적이다. 평등한 사회를 위해 어렵게 법을 마련해도 지자체장들은 예산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법조차도 지키지 않고, 정부에서도 조용히 넘어가고 있다”고 했다.

또 그는 “장애인의 평등을 위한 활동을 십년 째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이동권을 위해 싸운다. 제자리걸음이라고 봐야 한다. 자괴감이 든다.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부족한 우리 사회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꼭 하지 않아도 되는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의식이 가장 넘기 어려운 벽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그것을 위해 호소하지만 아직도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다. 약자를 위한 구조를 만드는 것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의무다. 지역사회도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기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5월 13일부터 경기도청 예산담당관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장애인 차별철폐선언, 장애인 탈시설 정책수립, 장애인 활동보조권리 보장, 장애인 기초소득 보장,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 장애인 주거권 보장, 장애인 이동권 보장, 장애인 교육권 보장, 발달장애인 및 장애인 가족지원 체계 강화, 장애인 자립생활 인프라 강화다.

성남시를 제외한 경기도의 다른 시에서는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위한 재정적인 지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저소득 중증장애인을 위한 전세주택 보증금(최대 8500만원)을 무상으로 최장 6년으로 임대하고 있지만 경기도는 장애인을 위한 어떠한 정책도 없다. 남경필 도지사는 2015년 10월에 약속한 특별교통수단 및 저상버스 증차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지원예산을 일몰예산 처리했다. 현재 저상버스 도입비율은 전국이 20퍼센트, 경기도는 10퍼센트로 절반 수준이다.(일몰예산 :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폐지되는 예산)

나는 묻고 싶다. 우리 사회가 정녕 돈이 없어 장애인을 위한 예산 편성이 어려운 것인지. 왜 정부나 지자체는 장애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인지. 혹 국민을 등급으로 나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에게도 묻고 싶다. ‘장애인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들도 나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고 자유로워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있는지’.

우리는 어떤 사회적인 문제가 화두가 될 때 '구조'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맞는 말이다.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소수의 노력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의 인식 전환이라는 밑거름이 있어야 한다. 그 밑거름을 위해 제안한다.

장애인, 그들이 사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단 하루만이라도 그들이 되어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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