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아

침대 없는 방에 얇은 요를 깔고 홑겹 이불을 덮은 열 명 남짓한 환자들. 둘로 나뉘어 서로 발을 맞댄 채 줄지어 잠든 모습이 20~30년 전 군대 내무반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 이 뿐만이 아니다. 곰팡이가 슨 천장, 찢어진 환자복, 복도를 청소하는 환자, 재단 이사장의 개를 돌보는 환자의 사진들. 아니?! 21세기 대한민국에 아직도 이런 병원이 있을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사진들은 모두 용인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사진이다. 전국보건의료노조가 공개한 자료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런 병원이 있었다니! 내가 사는 곳, 바로 용인에 말이다.

용인정신병원은 인력이 부족해서 환자가 직접 청소하고, 세탁물을 수거하고, 심지어 배식도 직접 한다고 한다. 병원 기숙사의 불법시공에 환자가 동원되고, 재단 이사장 가족 일에 병원 직원들이 동원되고, 직원들을 시켜 ‘젤리샷’이라는 술을 만들게 하고 판매까지 시켰다고 한다. 그나마 일한 환자에게는 대가로 커피를 지급하고, 이사장의 개를 돌보는 환자에게는 한 달에 5만원을 병원에서 지급한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이 병원에서는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고 대리처방한 의사 9명이 적발되고 1명이 자격 정지된 사례도 있다. 한마디로 경악이다.

이 병원의 경악할 행동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용인병원유지재단지부에 따르면 이 병원은 건강보험 환자와 의료보호 환자를 차별하면서 돈으로 환자의 등급을 매기는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다.

건강보험 병동은 24시간 따뜻한 물이 나오지만 의료보호 병동은 아침, 저녁 1시간씩만 제공한다. 건강보험 환자는 매일 환자복을 바꿔주지만 의료보호 환자는 환자복이 찢어질 때까지 입어야 하고 찢어지면 반바지로 만들어 준다고 한다. 대소변이 묻으면 빨아서 다시 제공할 때까지 속옷만 입고 있어야 한다니 환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마저 찾아볼 수 없다.

이 병원은 3대에 이른 경영권 세습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독선경영으로 본래의 목적인 진료는 사라지고, 오직 비용절감을 통한 수익 창출에만 매달렸다. 직원 급여는 8년간 제자리에, 상여금 체불에, 연말정산 및 연차수당은 지급되지 않았다. 반면 (비상임)이사장 급여는 직원 임금이 동결된 지난 8년 동안 월 900만원에서 1400만원으로 인상됐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변경된 의료수가 방침을 내어 놓자 용인병원유지재단은 장기입원환자와 의료보호환자 500여명을 퇴원시키고 병실을 4인실로 고쳐 병상을 축소한 다음 6개월 단기입원환자, 건강보험 환자를 중심으로 병원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돈이 되지 않는 환자는 돌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보호자가 퇴원시키는 이유를 묻거든 “병원 전체 리모델링 이유로 타 병원 알선하는 거라고 답변하시면 됩니다.” 라고 답하라 했단다. 병원에서 간호부 직원에게 보낸 카톡 내용이다.

보건복지부의 개선방침은 아직 적용 시기가 확정되지 않았고, 장기입원환자 퇴원에 따른 지역사회의 대책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결국 한 달 사이 200여명이 퇴원하고 2개 병동이 비워졌다. 이 가운데 150여명은 가족이 없는 무연고 환자이다. 또 추가로 120여명의 퇴원을 예고했다.

“이곳에서 근무하며 마치 왕권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너무나 부당하게 수모와 모욕을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점차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나 자신과 모두가 안타까웠다. 병원이 마치 침몰하는 배 같다. 간호사들은 경력만 쌓고 다른 병원으로 옮긴다. 처우가 낮은 이유도 있지만 병원이 환자를 위하지 않아 미래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정신장애 환자들은 환경이 바뀌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병원에서 나가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지 퇴근할 때 나를 붙잡고 자기를 데리고 퇴근하라고 얘기하는 환자도 있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면 보호자가 자신을 버릴 것 같다고 걱정한다. 정신장애 환자들이 퇴원을 하게 되면 투약관리가 잘 안 된다. 그러면 환자 증상이 더 나빠진다. 퇴원한 환자 상당수가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이지만 이들을 돌볼 지역 사회의 시스템은 부족한 실정이다.”

홍혜란 노조 지부장(간호사)의 증언이다. 홍지부장은 ‘원치 않으면 퇴원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퇴원 거부에 관한 권리를 보호자에게 알렸다는 이유로 업무방해와 의료정보유출 혐의로 징계해고된 상태다.

용인정신병원의 문제는 한 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계 전반의 문제다. 양승조, 정춘숙, 이용득(이상 더불어민주당) 이정미, 윤소하 (이상 정의당) 국회의원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주최로 국회에서 ‘용인정신병원 실태를 통해 본 정신병원의 현황과 공공성 강화과제’라는 주제로 긴급 국회 토론회가 있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공공의료 민간위탁과 입원환자의 인권유린, 강제퇴원, 의료계 최초의 정리해고에 대해 용인정신병원 간호사와 입원환자 보호자의 현장증언이 있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닮아 있었다. 치료하는 병원의 의미는 사라지고, 환자는 그저 돈으로만 보일 뿐이다.

최소한 건강과 생명이 직결된 의료기관은 누구에게라도 골고루 의료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원칙아래 우리나라의 모든 의료법인은 영리를 추구하지 못하는 비영리법인이나 공공병원이었다. 하지만 이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공공의료가 맡아서 해야 할 역할을 민간에 위탁 운영하자 위탁받은 의료법인이 입원한 환자들과 직원들을 가혹하게 내몰았고, 급기야 공공병원은 민간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전형적이고 악랄한 사례가 용인정신병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공병원을 민간에 위탁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는 자본의 습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경기도가 직영으로 운영해야 한다. 이 기회에 경기도립정신병원과 경기도립노인전문용인병원에 대한 특별감사도 제대로 실시해야 한다. 더 이상 용인정신병원의 사례가 지속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발, 건강과 생명이 다뤄지는 곳에서 돈벌이를 생각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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