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아

중고 시절은 그래도 나았다. 여중, 여고를 다녔으니까 누군가에게 들킬까 조심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 ‘혹시 내가 생리대 갈러 가는 걸 누가 알면 어쩌지?’, ‘화장실 갈 때 생리대 주머니를 챙기는 나를 보고 남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혹시 바지 위로 볼록한 선이 드러나면 어쩌지?’, ‘혹시 누가 냄새를 맡고 눈치 채면 어쩌지?’ 이런 걱정들을 했던 기억이 난다.

누구나 똥, 오줌을 누며 사는 것처럼 생리는 여자라면 누구나 하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생리는 부끄러운 것, 감추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아직 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인간 존엄성이나 인권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몸에 대한 존중, 여성에 대한 배려가 아직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으로도 약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깔창 생리대 기사를 읽고 많이 안타까웠다.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에 휴지를 얹어 쓴다는 것이다. 가슴 아픈 사연은 또 있다. 교사가 일주일 동안 결석한 학생의 집에 찾아가보니 학생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수건을 깔고 누워 있었고, 둘은 서로 안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여자로 태어나면 누구나 겪는 몸의 현상이지만 자신의 몸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지키는 것조차 힘겨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형마트에 가면 물건들이 넘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그 흔한 물건조차 살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민낯이다. 자본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속성인 양극화(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깨끗하게 몸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돈이 없으면 보장받지 못하는 몹쓸 사회라는 사실을.

여성이자 엄마로서 단호하게 말한다. 저소득층 청소년의 생리대 부족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으로 접근해야 할 ‘인권의 문제’라고. 지난달 미국에서 생리대 면세 법안이 통과됐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2004년부터 생리대는 부가가치세 면세품목이다. 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가 주도해 이뤄낸 성과다. 생리대 면세 주장을 두고 이런 저런 공방이 있었지만 ‘생리대는 필수품’이라는 명제를 부정할 수는 없기에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면세 혜택이 정작 소비자에게는 돌아가지 않았다. 면세 혜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깔창 생리대 문제를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생리대를 만드는 제조사들이 꾸준히 가격을 올려 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쓸 수밖에 없는 생필품이라는 점을 기업이 악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리대의 주재료는 펄프다. 펄프 가격은 2010년보다 약 30퍼센트 낮아졌으나,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유한킴벌리는 지금까지 2년 주기로 생리대 가격을 꾸준히 올려 왔다. 이를 따라 2위, 3위 업체도 줄줄이 가격을 올렸고 결국 생리대의 가격인상률은 소비자물가지수보다 높다. 현재 우리나라의 생리대는 다른 나라보다 50퍼센트에서 많게는 70퍼센트까지 비싸다고 한다.

면세혜택과 낮아지는 원가에도 불구하고 판매가격을 올려 거둬들인 유한킴벌리의 막대한 이익은 주주배당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최근 5년간 유한킴벌리의 배당성향은 평균 88퍼센트로, 제조업 평균 20퍼센트의 4배가 넘는 규모다. 유한킴벌리의 7할의 지분을 가진 1대 주주, 미국의 킴벌리클라크는 최근 3년간 3200억원이 넘는 돈을 가져갔다. 배당에 더해 기술사용료는 따로 챙겼다. 이익이라는 탐욕 앞에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은 자본을 국가가 나서서 바로 잡지 않는다면 여성의 기본적인 권리를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

늦었지만 그나마 좋은 소식도 있다. 생리대 문제가 불거지자 이재명 성남시장은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1년에 30만원 가량 생리대 구입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대전시, 대구시에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당장 고통 받는 아이들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은 적절한 대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몇몇 도시가 아닌 우리나라 어디에서라도 생리대를 구입할 수 없어 고통 받는 청소년이 없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생리가 부끄러운 것, 불결한 것’이라는 인식을 깨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숭고하고 고결한 몸의 현상’이라는 인식으로의 전환도 필요하다. 여자 아이에게는 어머니가 되기 위한 자랑스러운 현상이라 느끼도록 가르치고, 남자 아이에게는 남성들을 대신해 여성이 겪는 수고로움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가르치면 좋겠다.

이번 생리대 문제를 겪으며 우리는 근본 문제에 대해 다시 돌아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회적 약자에게 고통이 가해지는 이와 비슷한 일들은 언제고 다시 일어날 것이다. 인간존엄, 생명 중시와 같은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약자를 배려하고,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는 일, 이제 국가가 나서서 그 바탕을 만들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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