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직업병 문제 올바른 해결을 위한 반올림 농성 300일 문화제’가 열렸다.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밥 한 끼 해드리기 위해 모인 마음씨 고운 아줌마들이 그곳을 찾았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르는, 밤잠도 설칠 만큼 후덥지근한, 그래서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씨에도 그들은 기꺼이 불 앞에 서서 시원한 콩국수를 만들었다. 가족을 위해 차리는 밥상이었더라도 이렇게까지 신날까? 그렇게 만들어진 시원한 콩국수 한 그릇은 그곳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더위를 잠시나마 식혀주었으리라.
 
이 싸움의 시작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년 전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숨진 황유미양과 아버지 황상기님이 거대기업 삼성에 맞서 싸우기 시작하며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라는 단체가 생겨났다. 2016년 7월, 반올림에 의해 반도체 LCD 피해자는 223명, 사망자는 76명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은 모두 백혈병, 뇌종양 등 희귀암과 중증 희귀난치성질환 피해자들이다. 삼성은 모두 개인질병이라고 발뺌했지만 법원과 공단에서 산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고, 산재인정 싸움을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세상에 나오자 2014년 5월 거대기업 삼성은 비로소 공식 사과를 했다.
 
하지만 거대기업 삼성은 2015년 10월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인 조정위원회를 무산시키고 보상위원회를 만들었다. ‘보상받은 내용을 공개하면 반환 하겠다’는 각서를 피해자에게 쓰게 했고, 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100여명의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돈보다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방지를 원했던 이들은 계속 싸워왔고 그들의 노숙 농성이 300일을 맞이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히도 올해 1월, 삼성전자의 ‘안전보건 예방활동’을 독립적인 기구가 감찰하고 외부에 알리도록 하는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진심어린 사과와 공정하고 투명한 보상에 대해서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반올림 농성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죽어가던 황유미양 앞에서 삼성은 제대로 사과조차 하지 않은 채 "이걸로 끝내자"며 500만원을 내밀었다고 한다. 당시 치료비가 없어 그걸 뿌리치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리신 유미 아버지 황상기님과 뇌종양으로 몸이 불편한 한혜경님과 어머니는 여러 단체들의 연대를 받으며 여전히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이 황유미양에게 죽음 값으로 내밀었던 돈 오백만원. 며칠 전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에서 보도한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불법 성매매 기사에도 같은 금액의 돈 오백만원이 나온다. 2016년의 오백만원 앞에서 2007년의 500만원은 조롱의 돈일뿐이다. 삼성은 반성하고 있을까? 움켜진 돈과 권력으로 세상을 조롱하고 있지는 않을까? 지금도 요양병원에서, 무균실에서, 암병동에서 투병중인 피해자들이 이 기사를 보게 될까 두렵다.
 
뇌종양으로 몸이 불편한 한혜경님이 써온 편지를 읽었다. 병을 앓고 있는 그의 목소리는 귀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다. “얼마나 해로운지 미리 알려주었으면 나 같은 사람이 안 나오잖아요. 삼성 임원들, 저 위에 있는 사람들, 욕심 그만 부렸으면 좋겠어요. 잠깐 아래도 봐주고 그래요. 사과 받아도 저는 몸이 바뀌지 않아요. 그래도 꼭 사과해야 합니다. 안전관리 제대로 하지 않은 것, 사과하세요. 제대로 책임지세요. 삼성 나빠요.”
 
문화제에는 세월호 유가족, 2학년 6반 호성이 어머니가 오셨다. 아이를 잃고 계속되는 악몽과 환청에 시달리며 밤이면 밖으로 돌아다녔던 호성이 어머니 때문에 호성이 아버지는 손에 줄을 묶고 주무셨다고 한다. 삼성이 조정위원회를 무산시킨 것처럼 정부는 강제로 특별조사위원회를 끝내버렸다. 이석태 특조위원장은 위법적인 강제 종료에 저항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8월 4일, 단식 8일째). 보상위원회를 만들어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던 삼성처럼 정부는 유가족을 ‘자식 팔아 돈만 밝히는 파렴치한’으로 만들어 버렸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도 오셨다. 알려진 피해자만 4050명이며 19퍼센트에 달하는 780명이 죽은 엄청난 사건이다. 감기증상으로 보이는 폐섬유화의 잠재적 피해자는 30만이 넘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피해자의 상당수가 세 살 남짓한 어린이와 30대 중반의 어머니라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나마 이 사건은 전국적인 옥시 불매운동 덕분에 지금 국회에서 국정조사가 진행 중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 조용히 묻혀 버렸을 우리 사회의 어두운 한 면이다.
 
삼성 직업병 문제, 세월호 참사, 가습기살균제 사건. ‘안전보다, 생명보다 돈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진 몇몇 사람들의 결정에 의해 수백 명의 목숨이 좌우된 사건들이다. 가해자가 진심어린 사과를 하기는커녕 피해자를 ‘돈만 바라는 욕심스런 사람’으로 몰아갔다. 가해자는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그저 사람들의 눈치만 보며 거짓으로 은근슬쩍 넘어가려 하고 있다. 그러니 피해자는 정당하지 못한 현실의 억울함을 온몸으로 호소하며 싸우고 있다.
 
안전은 곧 돈이다. 위험한 것들을 제거하고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는 돈이 들기 때문이다. 기업이야 말로, 국가 권력이야 말로 돈 때문에 안전을 버리고 위험을 택하고 있다. 참 어리석은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기업은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 국가 권력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감시와 견제 그리고 비판이 없이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옥시 불매운동에서 보았듯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만이 부당한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한 기틀이나마 마련할 수 있다.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찾는 것은 결국 우리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는 돈보다 안전을 말해야 한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