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나 설 명절이 다가오면 ‘부엌으로부터 여자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글을 자주 접하게 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흩어져 사는 가족과 친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정을 나누는 소중한 전통 명절에 음식이 빠질 수는 없다. 명절에도 외식으로 끼니를 때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 일을 맡아야 한다. 그러니 여자를 해방시키려 하지 말고 함께 하면 된다. 그렇게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명절이 되도록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명절 때 진심으로 해방되고 싶은 것은 부엌보다 교통체증이다. 막히는 도로 위 차 안에서 시달리는 것에 견주면 부엌에서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은 오히려 즐거운 일이다. 한국도로공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가위(15일)에 역대 최대 교통량인 535만대의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이용했다고 한다. 요즘은 그나마 교통정보를 실시간 이용할 수 있게 돼 최대 정체 길이는 짧아졌다고 하지만 이름만 고속도로일 뿐 저속도로였다.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고속도로에서 통행료를 내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마어마한 세금을 들여 고속도로를 만들고 또 통행료를 내면서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이유는 일반 도로와는 달리 빠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어김없이 저속도로로 변하는 명절에도 꼬박꼬박 통행료를 받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

다른 나라를 살펴보자. 속도무제한이란 특징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한 번쯤 꿈꾼다는 아우토반. 독일이 열한 개 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아우토반의 통행량은 매우 많을 뿐 아니라 전체 길이가 1만3000킬로미터에 달한다. 그런데 이 거대한 고속도로가 모두 공짜다. 다만, 화물트럭은 유료다. 나들목에 요금정산소가 없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휴대전화를 통해 요금을 부과하고 있다.(요금정산소가 없는 대신 고속도로에 진입할 수 있는 나들목이 많아 접근성이 좋다.) 무료로 도로 지체의 요소를 제거하는 것, 이것이 속도무제한 도로 아오토반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그밖에도 고속도로가 (전부 혹은 일부) 무료인 나라들이 꽤 있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영국, 미국 서부 등이다.

이렇게 무료 고속도로에 대해 쓰고 보니 고속도로를 예찬하는 사람 같지만 사실 나는 운전을 하지 않는 뚜벅이족이다. 환경을 위해 스스로 자동차를 포기한 자발적 뚜벅이다. 에너지 과소비와 환경파괴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오늘날의 자동차 문화는 옳지 않다. 풀 한포기 비집고 나올 틈 없는 아스팔트,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에너지를 소비하며 그만큼의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는 인간뿐 아니라 다른 생명에게 하나의 폭력이다. 그런 점에서 이용증가를 불러올 수 있는 무료 고속도로가 좋은 제도는 아니다. 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명절의 저속도로 현상을 막을 수 있다면 그만큼 환경오염은 줄어들 것이다. 우리나라도 고속도로를 무료로 운영하는 나라들처럼 (명절만이라도) 통행료를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일까?

광복 70주년을 맞아 임시휴일로 지정된 지난 8월 14일 하루 동안 고속도로를 이용한 차량은 518만대로 굉장히 많은 차들이 고속도로로 몰렸지만 심각한 정체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명절과 휴가철 같은 때에 고속도로를 무료로 하면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증거다. 또 다른 효과도 있다. 교통체증의 해소뿐만 아니라 통행료 징수와 관련한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가족과 함께 명절과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다. 이미 중국과 대만 등 다른 나라에서는 명절 고속도로 무료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명절과 휴가철의 교통체증을 해소할 다른 방법들이 더 있다. 서울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사는 기형적인 인구쏠림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푸는 데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보다는 더 쉽게 도입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연휴기간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두 번째로 긴 시간을 일한다는 우리나라의 노동자들! 그들이 한 해 두 번 명절 때라도 편하게 고향에 다녀올 수 있도록 지금보다 연휴를 늘리자. 또한 연휴기간을 일률적으로 정하기보다는 쉬는 날을 설과 한가위 명절날을 기준으로 앞과 뒤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독일의 경우, 연휴 기간이 길 뿐만 아니라 지방마다 학교의 방학 시기가 달라 여름 휴가철에도 우리나라와 같은 쏠림 현상이 없다고 한다.

한 번 정해진 규칙만 늘 보다보면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명절이나 여름휴가철에 막히는 고속도로는 당연한 것이니 그 길 위에서의 고생도 당연하다는 믿음을 이제 한번 깨보자! 헬조선에서 명절 때만이라도 몸 편히, 맘 편히, 고향을 찾을 수 있게 다른 길을 찾아보자. 인류가 오늘날처럼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묻고 좀 더 나은 길을 찾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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