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가 환경단체 등과 함께 추진한 ‘생활감동 프로젝트-쓰레기 제로 마을실험실’을 통해 버려진 페트병이 티셔츠라는 새활용 제품으로 다시 태어났다.시는 1일 시청 컨벤션홀에서 마을실험실 활동공유회를 열고 각 마을실험실에서 진행된 성과를 공유하고, 페트병으로 만든 티셔츠 전달식을 진행했다. 시민들은 티셔츠 2850여장을 만들 수 있는 투명 페트병 325kg(500ml 기준 2만개)을 수거, 이중 500ml 700개 분량의 투명 페트병이 100장의 티셔츠로 제작됐다.
흔히 용인의 지형을 통일성이 결여돼 있다고 말한다. 물길이 사방으로 흐른다. 일반적으로 자연적인 지형지물에 따라 경계가 나뉜다는 점에서 용인의 지형적 조건은 구심력이 약하고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한다. 처인과 기흥 그리고 수지에 거점형 도시가 형성된 것도 이 같은 요인 때문이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단층 때문인데 청명산 산계를 따라 원천단층이 지나면서 물길을 가른다. 즉 청명산은 분수령이 되는 셈이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기흥호수를 거쳐 오산천으로 들어가는 지류가 된다. 용인 기흥에서 수원 영통으로 넘어가자면 잔
용인시가 2일 ‘사랑의 온도탑’ 제막식을 갖고 연말연시 이웃돕기 운동인 '사랑의 열차 이어달리기’ 시작을 알렸다. '경기사랑의열매 희망2022 나눔 캠페인 용인추진단' 출범을 겸해 열린 제막식에는 백군기 시장과 김기준 용인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이순선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해 사랑의 이어달리기 출발을 응원했다.
과거 선조들은 마을을 소우주(小宇宙)로 여겼다. 소우주는 사람과 자연 외에 또 하나의 축이 있었다. 바로 신(神)의 공간이다. 대개 마을입구에는 성황당 같은 하당신의 장소가 있었으며 마을을 감싸는 뒤편 산에는 상당신이라 하여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 있었다. 동네주민들의 안녕과 평안 그리고 마을의 영속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의 형태로 볼 수 있다.용인에서 가장 그 흔적이 많은 곳이 석성산과 할미산 자락이다. 용인의 진산 격인 이곳을 중심으로 사방 골짜기에 마을이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기흥구 동백·중리 원주민들은 대대로 산신제를 중히 여
역동저수지는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함박초등학교와 역북지웰푸르지오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다. 본래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였지만 지금은 전망 테라스와 산책로 등이 갖춰진 작은 수변공원으로 변했다. 본디 역북동은 금령역이 있었던 역동과 북쪽에 위치한 북동(北洞)을 합쳐서 지은 이름이었으니, 과거 금령역에 가까운 저수지였다..주변에 있었고 큰 연못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규모였지만 낚시로는 꽤 유명했다. 붕어와 베스 등이 많았는데 의외로 월척이 나오곤 했다. 과거 사진을 찍을 당시 사진을 보면 햇빛가림막이나 큰 우산을 쓰고 낚시 삼매경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갈곡마을이 ‘구갈 3지구’란 이름으로 개발되기 전, 용인의 오랜 전통가문 경주김씨 갈천공파에서 세운 기념비가 국도변에 있었다. 하나는 갈천공병자호란창의근국기념비(葛川公丙子胡亂倡義勤國紀念碑)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갈천공은 경주김씨 계림공파 후손으로 용인 입향조 김원립이다. 신‧구‧상‧하갈에 걸쳐 재지사족이자 명문거족으로 널리 퍼졌다.알려진 이름만 해도 김근태, 김학민, 김학규, 김민기 등이 갈천공의 후손들이다. 갈천(또는 갈내)이란 지명도 김원립에서 유래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는 1636년(인조14) 병
기흥구 신갈동 상미마을은 용인의 관문이다. 수원과 가깝고 수원‧신갈IC를 통과하면 상미를 만난다. 1968년 12월 경부고속도로 1구간(서울-신갈)이 개통되면서 우리나라 고속도로 시대가 열렸고 이에 따라 마을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본래 신갈오거리 주변까지 상미마을이었던지라 ‘신갈상권을 살리는 것은 상미사람들’이라는 말이 회자되곤 했다. 기록 시점과 날씨 탓이기도 하겠지만 따뜻하고 평화로운 과거사진(2013년)에 비해 오늘날은 삭막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뒤로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곳이 됐다고 한다. 부침
절정에 달한 가을 단풍에 마음마저 붉게 물들며 타 오른다. 처인구 운학동과 원삼면 사암리를 잇는 곱등고개는 여전히 용인에선 얼마 남지 않은 구불구불한 산길이다. 독조봉과 형제봉으로 연결된 등줄기가 문수봉으로 이어질 즈음 산허리를 가로지른다. 지세도 만만치 않아선지 조선중기 의적 ‘임꺽정’의 무대였다는 전설같은 얘기도 전해지는 곳이다. 용담호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암·좌항리 일대와 어울려 가히 ‘용인 제1경’이 아닐까 싶다.
흔히 ‘쌍팔년도’로 부르는 1988년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도 배경을 삼았듯이 기성세대에겐 특별함이 있다. 무엇보다 88서울올림픽을 빼 놓고는 얘기하기 어렵다. 서울올림픽은 당시로선 건국 이래 최대의 국제행사였다. 온 나라가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 행사를 위해 동원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인 기흥은 어땠을까. 오랫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신갈사거리가 ‘신갈오거리’로 변한 것도 1988년 그해다. 현재 국도가 된 우회도로를 신설하는 대규모 공사가 이뤄졌으며 전국에 걸쳐 지역별로 이어진 성화 봉송행사를 이곳에서 대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요즘 용인을 보면 ‘하루가 다르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럴 진데 50년 전·후라면? 얼마 전 1919년 용인 기흥지역 만세길 고증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기흥 3·30만세운동 집결지와 그 이동 경로에 대한 고증 문제였다. 다행히 당시 만세시위를 주동한 김구식 선생 재판기록 등에 따르면 하갈동 ‘개울번던’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는 기록과 지역 원로들의 증언을 통해 지점을 특정할 수 있었다. 신갈천은 상갈동에서 하갈동으로 넘어오면서 물길이 직각 가까이 구부러지는 부근이다. 신갈‧수원IC
용인경전철은 여전히 용인지역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아직도 많은 빚이 남아있고, 대중교통으로서의 역할도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여론이 비등하기 때문이다.논란을 접어두고 보면 노선주변은 과거와 비교해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2007년 경전철 공사가 한창이던 때 처인구 역북동 신성교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경안천 정비가 안 된 상태로 남아있다. 에버라인 건너편 ‘용인고 입구삼거리’에 길게 조성된 역북소공원은 빌라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경전철 에버라인 사업과 더불어 주택단지를 헐고 공원화하면서 주위는 쾌적한 환경으로 바뀌었다.금학천 정비
글보단 사진 한 장으로 더 많은 것을 설명할 때가 있다. 이번 사진이 그렇다. 그간 용인의 급성장 과정을 많이 보고 담아왔지만 이번은 고민을 좀 하게 됐다. 필자가 을 통해 흑백 사진으로 공개한 바 있긴 하지만 다시 내 보이기가 주저스러웠다. 기흥구 구갈동을 고향으로 둔 원주민들이 사진 속에서 추억보단 아픔을 더 느낄 것 같았기 때문이다.집 한 채 남기지 않고, 나무 한 그루 남기지 않고 마치 지우개로 지우듯 사라진 마을 풍경이다. 그 안에 있던 마을 우물, 한 집안의 여러 채 가옥을 큰 울타리로 묶고 대문 구실을
올해 공공비축미 수매가 시작된 가운데, 용인시 처인구 농촌 들녘이 황금색으로 변했다. 원삼지역 농민들은 태풍이나 장마 등을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하지만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산업단지에 편입돼 있는 농민들은 올해를 끝으로 농사를 접을 수밖에 없어 착잡하기만 하다. 황금들녘으로 변한 원삼의 가을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갈곡을 요즘은 대부분 ‘강남마을’로 부른다. 마을 중심에 강남대학교가 자리한 때문이다.본래 금(김)령 김씨(金寜金氏)가 대성(大姓)을 이루며 집성촌을 형성했던 곳이다. 예로부터 이 마을은 오목조목 풍치가 이름다워 ‘갈곡 5경’이 있었다.정월대보름 두루봉 달맞이, 마을 앞산 영화대, 갈내(신갈천) 버드나무 숲, 갈내 배터, 서낭대 마을숲 등이다. 얼추 200세대에 이르는 큰 마을이었다. 미터골에 강남대가 들어서고 급기야 1996년 택지개발예정지구(구갈3지구)로 지정되면서 대변화가 예고됐다. 경기도시공사(현 GH경
용인시의회 김기준 의장을 비롯한 4개 특례시의회 의장으로 구성된 전국특례시의회 의장협의회는 29일 오후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만나 '인구 100만 특례시에 걸맞은 특례시의회 지위 및 권한 확보' 건의문을 전달하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지난 13일 오전 10시 58분경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보정역 앞 버스정류장(분당방향)에서 시내버스 한 대가 정차해 있던 버스 2대를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버스 운전기사와 승객 등 16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사고가 나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조대가 사고현장에 임시 응급의료소를 설치하고 부상자를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다. 부상자 중 1명은 중상으로 전해졌다.경찰은 나중에 도착한 버스가 버스정류장에 멈춰 있던 버스를 보지 못하고 들이받아 연쇄 추돌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운전기사를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매년 9월 30일은 용인시민의 날로 올해 26주년이다. 그런데 용인군 시절까지 포함하면 50년째이니, ‘반백년’이다. ‘용인군민의 날’을 제정해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1971년부터이다.주로 읍·면 대항 체육경기가 주요행사였는데, 시합도 치열했지만 응원전도 볼만했다. 읍면 단위로 자존심을 건 대결이 펼쳐지다보니 과열되기 십상이었다. 특히 축구경기가 집단 난투극으로 번지기도 했다.1981년 사진은 당시 ‘용인공설운동장’이다. 권위주의 정권이었던 5공화국이 막 탄생한 시점이어서 그런지 입장식 모습도 경직돼 보인다. 처인구 마평동에 위치한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 소재 조비산(鳥飛山, 296m)은 자연경관이 빼어난 산으로 유명하다. 드넓은 백암평야에 홀로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고고하기도 하거니와 신비스러워 여러 전설을 안고 있음이 자연스레 느껴진다.여러 차례 경험인데 외지에서 용인에 돌아오는 길에 조비산이 저 멀리 보이면 유난스레 반갑고 마음도 편해진다. 아~ 용인에 도착했구나! 뭐 그런 기분이다. 길잡이 산인 동시에 사람들 염원을 하늘에 전하는 우주목(宇宙木)같은 존재다.옛 사진 속 조비산은 백암면 장평초등학교 인근에서 1960년대 말경 찍은 것이다. 용인인삼
한가위 명절을 앞두고 지난 10일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용인중앙시장 ‘대목장’이 열렸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시장의 활기는 예전만 못하다. 그런 가운데 정부와 경기도가 추석 전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을 풀기 시작했다. 급격한 매출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통시장과 소상인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김기준 의장을 비롯한 용인시의회 의원들이 지난 9일부터 추석맞이 전통시장 이용하기 챌린지를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챌린지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전통시장을 찾는 시민들이 줄어 전통시장 상인들을 격려하고, 활발한 이용을 촉진하기 위해 실시됐다. 챌린지에 나선 시의원들은 ‘올 추석 장보기는 용인전통시장에서, 차례상은 용인 농축산물로’ 문구를 달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