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표의 용인 어제와 오늘

과거 선조들은 마을을 소우주(小宇宙)로 여겼다. 소우주는 사람과 자연 외에 또 하나의 축이 있었다. 바로 신(神)의 공간이다. 대개 마을입구에는 성황당 같은 하당신의 장소가 있었으며 마을을 감싸는 뒤편 산에는 상당신이라 하여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 있었다. 동네주민들의 안녕과 평안 그리고 마을의 영속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용인에서 가장 그 흔적이 많은 곳이 석성산과 할미산 자락이다. 용인의 진산 격인 이곳을 중심으로 사방 골짜기에 마을이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기흥구 동백·중리 원주민들은 대대로 산신제를 중히 여겼다.

지금부터 90년 전인 1931년에 25명의 주민들이 참여해 ‘보개산신제 보존위원회’를 만들어 오늘에 이른다. 매년 음력 8월 초 주산격인 보개산 중턱(기흥구 중동 산22번지)에서 제를 올렸다. 초당곡·내촌·외촌·어은목 주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큰 동제(洞祭)였다. 민속신앙을 곡해하는 이들에 의해 터줏가리가 자주 훼손되자 석물로 조성해 그 곳을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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