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단풍의 계절이고, 단풍은 곧 떨어져 낙엽이 된다. 나무에 달려있을 땐 생기 있던 나뭇잎들이 떨어짐을 준비하고, 마르기 시작해서 땅 위에 내려오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때 우리는 나뭇잎을 자연스럽게 만질 수 있다. 단풍잎을 말려서 창호지에 덧발라 붙였던 우리 할머님들의 마음이 너무도 예쁘게 느껴진다. 요즘은 그런 감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요즘은 가까운 숲보다 주변 가로수길이나 공원에서 더 훌륭한 단풍을 볼 수 있고, 더 예쁜 낙엽길을 만날 수 있다. 동네를 흐르는 하천 주변도 잘 정비해 사람들이 자연을 느낄
높은 산의 자연림이 아니더라도 여름 숲은 울창하고 짙다. 한낮에도 숲속은 어두워서 나무그늘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더 밝고 따뜻하다. 밝은 빛을 따라 가다보면 숲길이 아닌 곳으로 자꾸 발이 간다. 무수한 거미줄을 얼굴로 끊어가며 숲을 헤매다가 푸른빛의 열매를 만났다.숲 입구에서 봤던 닭의장풀 파란색 꽃보다 더 짙다. 숲을 푸르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청록을 말하는 것이고, 파란 꽃과 열매는 정말 ‘블루(Blue)’를 말하는 것이다. 푸른 숲에서 파란색은 영화 ‘아바타’의 판타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 판타지의 열매는 노린재나무 것이다.보
가로수에도 유행이 있다면 지금 최고의 유행 아이템으로 뽑히는 나무는 단연 이팝나무다. 얼마 전 용인시민신문에 나온 기사를 보더라도 처인구 마평동과 양지면 사이 42번 국도의 대표적 가로수인 플라타너스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이팝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또한 새로 조성되는 공원이나 학교 숲에도 빠지지 않고 이팝나무가 심어지고 있다.봄이면 벚꽃처럼 화려한 꽃을 자랑하고 여름이면 푸른 잎이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열매가 버찌나 은행처럼 지저분하게 떨어지지도 않고 콩 모양의 작은 열매들이 겨울까지 달려 있다가 깔끔하게 떨어진다. 또한 플라
어릴 적 추억 속의 나무인 주목을 태백산에서 처음 봤다. 죽은 나무처럼 속이 다 파이고 색이 바랜 나무를 보고 아버지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가는 주목이야”하고 말씀해 주셨다. 주목은 우리나라 전국의 높은 산에서 볼 수 있는 키가 큰 나무이다. 높은 산에서 사는 나무다보니 자라는 속도가 느려 길이도 부피도 천천히 늘어난다. 그래서 나무는 더 단단하고 강해, 죽은 나무로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서있다. 이 때문에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는가 보다. 실제로 태백산에는 300년 이상 된 주목만 40
지구촌 축제인 브라질 리우올림픽 열기만큼 지구도 온난화의 영향으로 점점 그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는 1994년 이래, 한반도 전역을 뜨겁게 달구었다. 올림픽 개최지인 리우는 1992년 UN이 주재한 리우환경회의가 열린 곳이다.그 회의에서 세계 160여 개국의 지도자가 모여 지구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이념으로 ‘지속가능한 개발’, ‘개발과 환경보전의 조화’를 채택했고,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으로 의제21을 작성했다. 이후 세계 8000개 도시에서 작성 및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6개 광역시·도가 전부 작성을
숲에서 나무가 열매로 주목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잣나무, 밤나무, 도토리나무, 개암나무, 가래나무 정도가 생각날 듯하다. 먹는 열매부터 생각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모양이 예쁘고 단단해서 오랫동안 볼 수 있는 소나무의 솔방울도 대표적인 나무열매이다. 그리고 작은 솔방울 모양을 한 오리나무의 열매도 한번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우리나라 저습지가 논밭이나 주거지로 개발되지 않았다면 그곳엔 오리나무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오리나무의 이름은 ‘오리(2km)’마다 심어서 생긴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서식지가 습한 지역
어른들과 숲을 다니다 보면 꼭 질문을 받는다. “어디에 좋아요?”, “항암효과가 있다는데 정말인가요?” 전문 한의사나 약초를 전공한 학자가 아니기에 식물의 약효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조심스럽다. 잘못된 정보나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전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기에 아예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그리고 숲의 생태 이야기는 저와 함께 나누어요’를 좋아한다. 그런 점에 있어 이번 나무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로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없음을 밝히고자 한다.이런 무리수를 두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다닐 때에 향나무 연필이 있었다. 향나무 연필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렸지만, 돌이켜보니 향나무라는 나무는 알지 못했다. 많고 많은 연필 중에 하나인 연필 이름으로만 인지했던 것 같다. 또 어릴 적 큰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 집안 어르신들이 제사상을 놓고 그 앞에서 절을 하시며 향을 피울 때에도 그 향이 어디에서 나는지, 그 나무의 원료가 무엇이었는지 관심이 없었다.그 때만 해도 향나무는 내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향나무라는 존재 자체를 몰랐던 것 같다. 그 이후 세월이 흘러서 고즈
장마가 지기 전 한창 숲이 싱그러울 때이다. 뻐꾸기 소리가 오전 내내 뒷산을 울린다. 참새, 까치, 까마귀, 박새 등 새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개미, 거미, 노린재, 여러 나비종류들도 우리주변에 가득하다. 뭔가 꽉 찬 느낌이 든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장이 섰다. 여러 과일들이 풍성하다. 장마 전이라 맛이 정말 좋다며 상인들이 손짓을 한다. 과일을 보고 있자니 “봄에 잎이 가장 늦는 나무는 감나무란다.” 엄마의 말씀이 생각난다.그런데 감나무만큼이나 늦게 잎이 나는 게 대추나무다. 다른 나무들은 벌써 잎이 다 피고 그늘을 만드는데 대추
어린 시절 친구들과 불렀던 재밌는 노래가 떠오른다. “뽕나무가 뽕 하고 방귀를 뀌니 / 대나무가 댓끼 놈 야단을 치네 / 참나무가 점잖게 하는 말 참 아 라”아이들이 ‘방귀’라는 단어만 나와도 까르르 웃는 데 방귀소리를 표현할 때 쓰는 의성어 ‘뽀옹! 뽕!’이 나무 이름에 붙었으니 아이들에겐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빵하고 터지는 뽕나무다. 실제로 뽕나무 열매를 먹으면 소화가 잘돼 방귀가 뽕뽕 나온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달콤한 뽕나무 열매를 먹고 나서 뀌는 방귀는 달콤한 향이 날까 궁금해진다. 뽕나무
은행나무는 3억년 전 지구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은행나무는 올 봄에도 어김없이 부채꼴의 잎을 키우며 하루가 다르게 짙푸르러져 갔다.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과 때 이른 더위 속에서도 보는 이에게 싱그러움을 선사해 주는 은행나무이다. 지구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멸종 위기를 겪었을 것인데도 많은 일들을 다 견뎌내고 우리 곁에서 우뚝하게 서 있다. 하나의 생명체 가 이처럼 위기를 겪게 되면 자신의 본성 중 하나씩을 덜어낸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그 본성 가운데 하나인 스스로 번성하는 특징을 버리고 사람이 직접 심어
뒷산을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다. ‘언제나 푸르러질까?’ 했는데 숲은 어느새 울창해졌다. 소나무의 송홧가루가 봄꽃의 끝물을 알린다. 개구리들의 짝 찾는 소리로 숲은 밤도 바쁘다.예전에는 숲과 밭이 어우러진 뒷산에 자주 오르내렸다. 여름엔 매주 바닷가에서 물놀이와 모래놀이를 했다. 그런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 필자는 지금도 자연과 함께하는 흥미진진한 생활을 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 산과 들이 있는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반반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산, 들, 강, 바다보다 식물원이나 동물원, 수족관
“단풍나무에 꽃이 폈네요” “네?” “단풍나무가 꽃이 있어요?”사람들과 이맘때 쯤 단풍나무 앞을 지나며 나누는 대화입니다. 식물이라면 당연히 씨앗을 퍼뜨리기 위한 생식기관이 있을 테고 그 대표적인 기관이 꽃입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꽃이 있으리라 생각되지 않는 대표적인 나무가 단풍나무입니다. 왜 그럴까요?단풍나무는 평소엔 별로 눈에 띄지 않다가 가을에 너무나 유명한 대표나무가 됩니다. 가을이 돼 잎이 초록이 아닌 색으로 물드는 현상을 ‘단풍 든다’라고 하는데 오죽하면 나무 이름까지 단풍나무라 부르지 않습니까?그렇게 유명세를 타는 나
겨울을 이겨낸 홍매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세상 구경 준비 중이다. 낙락장송 소나무는 궁궐의 운치를 더한다. 후원의 취한정 주련에 걸린 글귀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정자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 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나도 옛사람이 돼 그 정취에 빠져 본다.일정화영춘류월(一庭花影春留月)만원송성야성도(滿院松聲夜聽濤) 온 뜨락의 꽃그림자 봄은 달을 붙잡고집안 가득 솔바람 소리 밤에 파도소리 듣는 듯.궁궐은 물론이고 일반 가정집의 정원수나 가로수로도 널리 사랑받고 있는 것이 소나무이다. 우리 선조들은
요즘은 숲에서 온전히 나무만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시기이다.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던 소나무나 노간주나무를 눈여겨볼 수 있고, 낙엽지고 난 나무의 높은 가지를 푸른 하늘에 놓고 천천히 즐길 수도 있다. 이런 겨울 숲에서 아직도 크고 누런 잎을 달고 있는 나무를 보았다면 그건 반드시 떡갈나무이다. 여름 숲에서 가장 큰 잎을 달고 있는 나무도, 겨울 숲에
분명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 있을 거라 예상했던 겨울 나무에 초록 잎들이 마치 새 둥지처럼 무성하게 모여 있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놀라웠다. 나중에 그것이 다른 나무에 달려 기생이라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겨우살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더구나 겨우살이가 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땐 그 생태가 너무나 궁금해졌다. 겨우살이를 우연찮게 다시 볼 수 있게
“용인에 전나무가 많네, 눈여겨 볼만해.” 몇 년 전 아는 박사님이 필자에게 넌지시 건넨 말씀을 내내 마음에 두고 있었다. 영동고속도로를 타러 양지톨게이트를 향할 때에도 도로를 따라 심심치 않게 늠름한 전나무를 볼 수 있다. 그때마다 ‘이상하다. 높은 곳에 있어야할 것 같은데…’ 짧은 안목에 항상 의아
겨울이 돼 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을 때 비로소 나무 살갗이 보인다. 그동안 싱그런 잎, 화려한 꽃, 앙증맞은 열매에 시선을 빼앗겨 보지 못했던 나무 껍질과 줄기와 수형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느끼게 된다. 아! 다 다르구나! 그저 일자로 곧게 뻗어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나무 모양과 색깔과 촉감이 나무마다 제각각의 고유함을 가지고 있음을 알
예전에는 집안에 쌀 이는 조리가 서너 개씩 있었는데 요즘은 조리 찾아보기가 힘든 것 같다. 우리 집에도 조리 하나 없으니 내 아이들부터 조리가 무엇인지 모른다. 갑자기 어른으로서 할 일을 다 하지 않은 것 같아 반성하게 된다. 섣달 그믐날 한밤중부터 정월 초하룻날 아침 사이에 사서 걸어놓고 복을 빌었던 조리를 특히 ‘복조리’라고 하는데
겨울이 되면 유난히 시선을 잡는 게 있다. 누가 그렸을까? 담벼락에 그려놓은 낙서치고는 너무나 수준 높은 그림이다. 멀리 굽이치는 산줄기에 기암절벽이 있고, 쏟아져 내려오는 폭포와 휘돌아나가는 강이 흐르고, 넓게 펼쳐지는 들판도 있다. 담을 뒤덮었던 잎들이 다 떨어지자 선명하게 드러나는 담쟁이덩굴 줄기들이 기어간 역사가 그림이 됐다. 한 폭의 산수화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