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나무가 열매로 주목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잣나무, 밤나무, 도토리나무, 개암나무, 가래나무 정도가 생각날 듯하다. 먹는 열매부터 생각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모양이 예쁘고 단단해서 오랫동안 볼 수 있는 소나무의 솔방울도 대표적인 나무열매이다. 그리고 작은 솔방울 모양을 한 오리나무의 열매도 한번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저습지가 논밭이나 주거지로 개발되지 않았다면 그곳엔 오리나무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오리나무의 이름은 ‘오리(2km)’마다 심어서 생긴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서식지가 습한 지역임을 봤을 때, 물새를 대표하는 ‘오리’에서 그 유래를 찾는 것이 맞다고 한다. 오리나무는 큰키떨기나무이다. 전국의 저습지에 자라지만 오래된 오리나무를 보기는 힘들다.

용인시 기흥구 동백지구는 택지개발이 되기 전에 넓은 논이었다고 한다. 그곳을 접하는 석성산은 높지 않지만 습기가 많은 숲이다. 산자락에 길게 늘어선 오리나무숲이 있다. “나무에도 꽃이 피나요?” 하는 물음에 필자는 “식물은 모두 꽃이 피고, 꽃이 핀 식물은 당연히 열매를 맺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아마도 키가 큰 나무는 일부러 올려보지 않으면 꽃을 보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꾸준히 듣는 것 같다.

많은 큰키나무들이 그렇듯이 오리나무의 꽃은 이른 봄에 핀다. 밤나무같이 축축 처지는 수꽃을 볼 수 있다. 암꽃은 가지 끝에 작게 핀다. 요즘은 가지 끝에 조롱조롱 달린 초록색 열매의 시기이다. 작년 열매는 겨울을 보내고 아직도 묵은 가지에 달려 있다. 바닥에 떨어진 것들도 아직 눈에 띈다. 오리나무 종류의 사방오리나무, 물오리나무의 열매도 많이 볼 수 있다.

이 식물들은 사람이 필요해서 심은 나무들이어서 오리나무보다 흔하고, 키 작은 나무들도 많아 열매를 보기에 수월하다. 바늘잎을 가진 침엽수는 대부분 굵은 가지가 쭉쭉 뻗고 잔가지가 적은 편이다. 그것에 비해 잎이 넓은 활엽수는 굵은 가지가 자연스럽게 잔가지로 갈라지면서 풍성하게 만든다. 특히 오리나무가 그렇고 흔히 볼 수 있는 느티나무, 아래 지방에서 흔한 팽나무가 그렇다.

오리나무 열매

한여름 느티나무 아래에 있으면 무성한 잎 덕분에 시원한 그늘을 즐길 수 있다. 느티나무 그늘은 빈 틈 없기로 유명하다. 제주 명월리의 팽나무군락에서 팽나무의 멋진 수형(나무모양)을 감상했던 기억이 있다. 아주 오래진 않지만 적어도 30년 이상 됐을 석성산의 오리나무숲도 필자에겐 큰 의미로 다가온다. 반짝반짝 작은 잎들, 상대적으로 거친 수피(나무껍질), 깨알같이 찾아드는 오리나무잎벌레. 지금은 칡, 사위질빵, 으름, 담쟁이 등 다양한 덩굴식물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 그 모습이 300년은 돼 보인다. 이렇게 활엽수림이 울창하고 오래 돼 보이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식물들에 있다.

초록이 보이는 곳에 사는 사람의 면역력이 그렇지 않은 사람의 면역력보다 높다고 한다. 숲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힘을 준다. 우리 주변에 오리나무가 있어 다양한 숲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숲은 여러 식물들이 그냥 무리지어 있는 곳이 아니다. 눈에 띄게 많은 한 종류의 큰키나무가 있고 그와 친한 무리의 작은키나무들과 풀들이 함께 어우러져 숲을 이룬다. 그곳에 함께 사는 여러 동물들이 있어야 하고 오랜 시간이 흘러 그들만의 진정한 동아리가 형성돼야 한다. 참으로 복잡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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