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다닐 때에 향나무 연필이 있었다. 향나무 연필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렸지만, 돌이켜보니 향나무라는 나무는 알지 못했다. 많고 많은 연필 중에 하나인 연필 이름으로만 인지했던 것 같다. 또 어릴 적 큰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 집안 어르신들이 제사상을 놓고 그 앞에서 절을 하시며 향을 피울 때에도 그 향이 어디에서 나는지, 그 나무의 원료가 무엇이었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 때만 해도 향나무는 내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향나무라는 존재 자체를 몰랐던 것 같다. 그 이후 세월이 흘러서 고즈넉한 산사에 들르게 되면 법당 내부에서 은은하게 번져 나오는 그 향으로 부처님을 만나게 되었고 향을 피우는 그것의 정체도 알게 됐다. 내 주위를 둘러보니 오래된 노거수로 향나무가 많다는 것 또한 알았다.

향나무는 한자로 향목(香木) 또는 원백(圓栢)이라고 하며, 영어로 Chiness juniper이고 중국이 원산지이다. 요즘은 길가나 정원에서 향나무 중 하나인 가이스까향나무를 흔히 본다. 날카로운 바늘잎이 처음부터 생기지 않고 비늘잎만 달리도록 일본인 가이스까라는 사람이 개량한 나무이다. 향나무 바늘잎은 어릴 때에 나온다. 바늘잎은 짙은 녹색으로 돌려나거나 마주나는데 끝이 날카로우며 손에 찔릴 정도로 가시가 단단하고 아래 가지에 많다.

한편 7~8년이 지나면 비늘잎이 생긴다. 비늘잎은 능형으로 끝이 둥글며 가장자리가 흰색이다. 향나무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대다수는 시간의 흐름과 풍화 작용에 의해 모가 나거나 뾰족한 것이 둥글어진다. 뾰족함은 자신은 물론 타인도 상하게 한다. 사람 중에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날을 세우며 고집이나 아집에 사로 잡혀 있는 이들이 아직도 적지 않음을 보면서 ‘내 모습은 어떠한가?’ 성찰해야 함을 절감하곤 한다.

얼마 전에 솟대 만들기 체험을 해 봤다. 솟대 받침으로 사용된 나무도 향이 좋고 붉은 빛이 도는 향나무였다. 붉은 빛이 도는 자주색이라 자단(紫檀)이라 하고, 향기가 난다고 해서 목향(木香)이라고도 부른다. 향나무는 빛과 향, 거기에 전체적인 수형은 귀족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긴다. 마치 용트림을 하고 있는 듯 기이한 형상을 한 향나무를 볼 때면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수많은 ‘역(易)’을 하며 자신을 지켜냈을 나무의 이면을 어렴풋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다. 최근에 본 향나무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향나무는 조선시대 왕이 풍년을 기원하며 농사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선농단’에 있는 향나무(천연기념물 제240호)로 신비로움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소위 ‘격’을 지니고 있는 나무의 대명사처럼 깊은 인상으로 다가왔다.

식물의 계통을 분류해 고유한 이름을 부여한 린네는 식물이 내뿜는 향의 느낌을 유쾌한 순서에 따라 여섯 가지로 나눴다. 방향성 냄새, 향기로운 냄새(향수), 머스크 향과 같은 사향 냄새, 마늘과 같은 짜릿한 냄새, 땀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 그리고 역겨운 냄새이다. 주로 향이라 하면 좋은 의미로 와 닿고 냄새라 하면 그 반대의 느낌이 강하다. 만약 우리도 어떤 냄새의 주체가 된다면 이왕이면 좋은 향을 머금고 품어내야 함은 물론이다. 외면에서 느껴지는 향보다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야 좋은 향이라고 할 수 있다. 향나무의 은은한 향이 많이 쓰여 우리 주위를 향기롭게 하는 것처럼 사람이 머물다가 간 자리에서도 그가 남기고 간 잔향으로 인해 세상이 아름다워졌으면 좋겠다. 문득 맑고 향기롭게 살다가 입적하신 법정 스님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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