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는 3억년 전 지구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은행나무는 올 봄에도 어김없이 부채꼴의 잎을 키우며 하루가 다르게 짙푸르러져 갔다.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과 때 이른 더위 속에서도 보는 이에게 싱그러움을 선사해 주는 은행나무이다. 지구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멸종 위기를 겪었을 것인데도 많은 일들을 다 견뎌내고 우리 곁에서 우뚝하게 서 있다. 하나의 생명체

은행나무

가 이처럼 위기를 겪게 되면 자신의 본성 중 하나씩을 덜어낸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그 본성 가운데 하나인 스스로 번성하는 특징을 버리고 사람이 직접 심어 가꾸어주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강인한 생명력의 은행나무가 제자리를 지키면서 한결같은 묵묵함을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서울의 시목은 은행나무이다. 이따금 그곳으로 향할 때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가로수인 은행나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에 안정감을 준다. 은행나무는 공해에 강하다. 차량이나 상가에서 내뿜은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산소를 내뿜으면서 도심의 공기 정화에도 한몫을 한다. 가을날, 크산토필이라는 색소가 있는 잎이 노랗게 물들어갈 즈음 은행나무의 존재는 여실히 드러난다. 문득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을 때 눈에 와 닿는 노란 은행잎은 시간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나무에 매달려 있던 은행잎이 바람이 불어 바닥에 떨어져 내리면 그 위를 걷는 우리도 함께 시간 여행을 한다. 이듬해 다시 새순을 돋아낼 나무의 생과 우리네 삶의 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본다. 나무는 늦여름부터 겨울눈을 준비하고 있다.

은행나무 잎

일찍이 은행나무는 화석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러기에 그 신령스러움이나 신비로움이 특별하다. 명륜동의 성균관대학 문묘(공자를 모신 사당)의 은행나무는 수백 년이 된 굵은 가지에서 생기는 유주를 매달고 있다. 굵은 가지 아래에 마치 종유석을 매달아 놓은 것 같은 모양의 유주 3개가 있는데 젖 모양이면서 기둥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적어도 수백 년 된 굵은 가지에서 생기고 줄기와 멀지 않은 가지 아래쪽에 만들어지며 유주의 세포 속에 많은 전분을 포함하고 있어서 나이 많은 은행나무의 ‘비상 식량 주머니’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는 유구한 세월 속에서 은행나무가 만들어낸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3대 정자목은 느티나무, 은행나무, 팽나무이다. 우리 고장에도 약 500년이 되어 보호수로 지정돼 있는 은행나무가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에 있다. 그 나무 가까이에 다가가면 마치 마을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듯, 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이테 안에 고스란히 아로새겨져 있을 것 같다. 이 나무도 그곳을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의 발자취를 헤아렸을 것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때때로 지친 발걸음을 쉬게 해주는 쉼터가 됐을 것이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무는 존재 자체로 하나의 소우주이다. 그렇게 나무는 공동체 속에 어우러져 하나의 역사가 되고, 이야기가 되고, 생명의 토대가 된다. 마을의 정자목인 은행나무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고 그 자리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문묘의 노거수로, 그리고 마을 정자목으로 만나 봤다.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제 위치와 환경이 서로 다름을 탓하지 않고 안으로 안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 줄기와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으며 순리에 따르며 산다. 은행나무를 볼 때 경쟁과 비교를 일삼으며 ‘빨리빨리’를 외치는 사람들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다. 생명은 생명을 부른다. 은행나무가 지닌 위용을 보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넘어 사람과 나무가 하나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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