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활동가)

 

겨울을 이겨낸 홍매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세상 구경 준비 중이다. 낙락장송 소나무는 궁궐의 운치를 더한다. 후원의 취한정 주련에 걸린 글귀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정자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 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나도 옛사람이 돼 그 정취에 빠져 본다.

일정화영춘류월(一庭花影春留月)
만원송성야성도(滿院松聲夜聽濤) 
온 뜨락의 꽃그림자 봄은 달을 붙잡고
집안 가득 솔바람 소리 밤에 파도소리 듣는 듯.

궁궐은 물론이고 일반 가정집의 정원수나 가로수로도 널리 사랑받고 있는 것이 소나무이다. 우리 선조들은 소나무와 생을 함께 했다.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태어나 생활하고 소나무로 만든 관에서 생을 마쳤다. 내 유년 시절 소풍의 행선지도 인근 솔숲이었던 적이 있다. 소풍날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 것처럼 솔숲에서의 즐거운 시간은 마음속 한귀퉁이에 보물창고처럼 저장돼 있다.

소나무의 깊게 휘어지거나 거북 등처럼 패인 나무껍질을 볼 때면 아버지를 떠올린다. 강인하고 한결 같은 소나무는 아낌없이 주기도 한다. 땔감으로 쓰인 솔잎이나 솔가지뿐만 아니라 송화로 빚은 다식이나 소나무에서만 나는 맛있는 송이버섯 등 먹을거리를 준다. 송편을 쪄낼 때면 솔 향을 내게 하는 2가닥의 솔잎 등 그러한 것들을 받기만 하며 고마워할 줄 모르면 소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소나무는 그 푸름을 간직하기 위해서 역설적이게도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추운 겨울을 지나봐야 소나무의 진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추운 겨울에 벗할 만한 존재로 세한삼우(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꼽았다고 한다.

소나무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한 대표적인 인물은 추사 김정희이다. 『세한도』를 그려 제자 이상적에게 준 이유는 1844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하고 귀양살이 하고 있는 자신에게 의리를 잊지 않고 두 번씩이나 북경에 가서 귀한 책을 구해줬기 때문이다. 곤궁에 빠진 스승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존경한 제자의 인품에 반했다고 한다.

소나무는 나무 중의 영물이다. 박희진 님의 글을 빌리자면 ‘소나무는 어떤 영기가 서려 있어, 보랏빛으로 그늘이 은밀히 떨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청정하고 겸허한 마음의 눈에나 감지될 수 있다’고 했다. 소나무는 감히 인간의 잣대로 그 깊이를 헤아릴 수는 없겠으나 한편, 소나무가 지니고 있는 심연에 도달하고 싶은 나무이다.

“모질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명을 유지하며 휘어질지라도 끝까지 살아내는 소나무를 보면 그 강인함에 놀라우면서도 생을 밀어 올리느라 노력하는 모습이 마치 내 모습과 같아 보여서 마음이 애잔하다”고 한 지인의 말이 큰 울림으로 와 닿는다.

소나무가 그렇듯이 생은 끝까지 노력하는 데 의미가 있다. 이 땅에 소나무가 없었다면 우리 삶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무 소나무에 대한 외경심을 달리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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