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프랑스 탐험가이자 학자인 샤를 바라가 조선 제물포에 도착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급격한 변화의 연속이었다.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으로 혼란한 정국이 이어지고 있었다.샤를 바라는 해안 도시를 중심으로 방문하는 서구인들과 달리 조선의 수도인 한성에서 부산까지 내륙을 횡단하기로 했다. 불안한 치안 상황과 전염병으로 위험하다고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조선의 진짜 모습을 보기로 한 샤를 바라는 과감하게 일정을 진행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강을 건너고 도시를 지나갔다.샤를 바라
도대체 여름은 언제 가나 싶게 무덥던 날씨가 갑자기 돌변해 가을옷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추위를 맞이하고 있다. 추위에 민감한 남편은 부랴부랴 긴 소매 옷에 가디건까지 걸치고 출근한다. 날이 추워졌으니 바로 자동차로 직행할법한데 현관을 나서자마자 마당 한쪽 텃밭으로 발걸음을 향했다.초여름에 씨앗을 직접 심어 지금은 한참 열매를 맺고 있는 팥을 둘러보며 행여 추운 날씨로 잘 자라지 못할까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생전 처음 심어본 농작물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팥을 워낙 좋아하는 탓에 올겨울엔 직접 심은 팥으로 만든 팥칼국수, 시루떡,
9월의 수업 주제는 마디풀과 식물들이다. 여뀌, 개여뀌, 고마리, 소리쟁이, 마디풀…. 사진을 인쇄하고 풀에 대해 공부하고 숲으로 갔다. 그 흔하디흔한 개여뀌는 그날따라 왜 그리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대신 파란 꽃잎이 항상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닭의장풀이 지천이었다.닭의장풀은 닭의장풀과의 한해살이풀이다. 길가나 풀밭, 냇가 습지에서 흔히 자란다. 줄기 밑 부분은 옆으로 비스듬히 자라고, 땅을 기고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며 많은 가지로 갈라진다.줄기 하나를 잘라내면 잘라낸 줄기에서 다시 뿌리가 나올 정도로 번식력이 강하다. 꽃은 7
산에 있는 여러 풀 중 질병에 도움이 되는 약초를 찾아 채취한 뒤 말리는 작업을 해서 보관하는 과정은 많은 힘이 들었다. 특히 최근에도 건강기능식품에 백수오와 비슷한 이엽피우소가 혼입돼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있을 정도로 약초와 독초의 감별은 쉽지 않았다.에는 실록 숙종 37년 8월 3일자에 영동·영남에서 진상하는 인삼을 붙여서 만든 것도 있고, 서북의 인삼은 푹 삶아 쪼개서 도라지 등을 넣어 엄히 처벌하자는 내용이 보인다.약초를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었다. 상처나 골절과 같은 직관적으로
9월, 가을에 접어들었다. 공기냄새가 달라졌다. 낙엽 냄새가 섞인 시원한 향기가 났다. 구름은 높고 하늘은 더 높다. 에어컨은 이제 커버를 씌우고 리모컨도 잘 치워두었다. 가을을 알리는 무당거미와 버섯을 여기저기에서 자주 본다.벌초하러 다녀온 시골 화단엔 맨드라미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그 옆 텃밭에 고추 일부는 탄저병에 걸려서 시들해 고춧대만 남아 있었다. 8월 비가 자주 내린 것이 원인이었다.시골에 다녀오니 필자의 어릴 때가 생각난다. 유아기 때 찍은 어느 사진에선 마당에 멍석을 깔아 빨간 고추를 말리고, 화단에는 맨드라미와 채송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잠깐 틈이 생길 때, 무엇을 할까 하다가 노트북을 열고 내 파일상자를 뒤진다. 평소엔 수많은 사진과 파일들을 딴 곳에 흘리지 않고 이 상자 속에 쌓아두고 모아 놓는 것에 만족하다가 이렇게 틈틈이 시간이 날 때면 다시 하나하나 해당 폴더로 분리하는 작업을 한다.며칠 전 사진 정리를 하다가 동영상 하나가 나왔다. 10초 정도 되는 아주 짧은 영상이었는데, 예전에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는 신원저수지 둘레길에 갔다가 찍은 왕지네 사진이었다.지네 영상을 보고, 내친김에 자막도 깔고 편집도 해서 유튜브 채널에 올
1637년 1월 30일 남한산성에 있던 조선의 인조는 성을 나와 삼전도로 향했다. 삼전도에는 높은 단 위에는 청나라 태종이 앉아 있었고, 조선의 왕이었던 인조는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치욕적인 항복 의식이 이어졌다.1636년 12월 8일 압록강을 넘은 청나라는 단 4일 만에 개성에 도달하는 빠른 진격으로 조선의 허를 찔렀다. 임경업 등 수많은 조선의 장군들은 산성에 있었으나, 청나라는 이를 무시하고 바로 조선의 수도로 진격한 것이다. 인조는 허둥지둥 남한산성으로 피신해서 47일간 농성했으나, 결국 추위와
어딘가에서 씨가 날아왔는지 작년엔 보이지 않던 구릿대가 지난봄부터 마당 끝자락에서 자라고 있었다. 키가 2m 가까이 자라는 잡초(필자 기준엔)인지라 더 자라기 전에 뽑을까 말까 고민을 엄청 했더랬다.그러다 문득 몇 년 전 아이들과 수업하던 중 구릿대에서 발견한 산호랑나비 애벌레 생각이 나서 일단 뽑지 않고 살려두었다. 거기에다 구릿대에겐 운 좋게도, 필자에게는 우울하게도, 봄 끝자락에 다리를 다쳐 근 두 달 동안 마당 근처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소파에 누워 풀이 쑥쑥 자라는 마당을 한없이 쳐다보기만 하는 게 올 여름 필자의 일상이었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는 올 여름 계곡은 정말 깨끗하고 멋지다. 시원스레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수량이 풍부해 아이들은 그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다이빙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신나는 놀이터로 변신했다.그렇게 재밌게 아이들과 계곡에서 만날 생각으로 숲에 도착했다. 근데 차를 주차하려는 순간 오래된 밤나무 줄기에 앉아있는 익숙한 듯 낯선 새의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6월 어느 때부터 걷다 보면 어린 새들과 자주 마주친다. 털은 조금 덜 자란 듯하고 덩치도 작고, 걷고 뛰는 모습들, 먹이를 찾는 모습들, 주변을 살피는 모습들도 아직 미
에 신라 헌강왕 때 동해 용왕의 아들 처용 이야기가 등장한다. 처용은 신라에서 관직을 얻어 봉사했으며 역신을 춤을 춰서 물리쳤다는 고사가 에 나온다. 처용에 대해서 여러 설이 존재하나 전해 내려오는 특이한 외모는 외부에서 이주해 온 사람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특히 중동 지역 출신일 것이라는 학설이 제기되기도 했다.당시 아라비아 상인들이 신라까지 찾아왔다는 기록도 있다. 876년 중국 남부 지역에서 발생한 ’황소의 난‘은 해안가를 중심으로 무역을 하던 이슬람인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일부는 탈출해 다른 지
사람은 적응이 빠른 동물이다. 여름이 시작될 때는 이렇게 더워서 어떻게 여름을 날까 걱정했는데, 이젠 한낮에도 그늘을 찾아다니며 여름에 몸이 적응한 것이 놀랍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 아닐까?정해져 있는 자연법칙이지만 언제나 다른 사건이 생기는 계절은 우리에게 변화에 대처하는 기회를 주고, 그에 대한 적응력을 갖게 한다. 평생 사계절을 경험하며 적응력을 갖는 것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어벤져스에도 나오지 않는 초능력 하나를 장착한 느낌이랄까!더위를 식히며 시원한 커피 한잔 마시고 산책
아침 10시 약속으로 부리나케 걸어가고 있었다. 앞에는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와 엄마가 걷고 있었다. 남자 아이였는데 가면서 자꾸만 “여기, 여기. 여기”란 말을 하고 있었다. 말과 함께 아파트 담벼락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뭐지? 궁금함에 아이가 가리키고 간 곳을 바라보니 세상에, 아파트 시멘트 담벼락에 매미 애벌레 허물들이 붙어있었다.한두 마리도 아니었다. 가면서 보니 계속이었다. 나무줄기나 풀잎에 올라와 있는 매미 애벌레 허물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길가 시멘트 담벼락에 붙어있는 모습은 왠지 낯설었다.어디서 왔을까? 매미 애벌레들은
1752년 6월 폭풍우가 몰아치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마을에서 연이 하늘에 떠 올랐다. 십자가 모양의 단단한 삼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비단을 단 연은 강한 바람을 타고 높이 날아갔다. 이날 아들과 함께 연을 날린 사람은 벤자민 프랭클린이었다. 번개가 전기와 같은 성격을 가졌을 것이라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실험에 나선 것이다.마찰을 통해 발생되는 정전기를 현상을 넘어 전기를 모을 수 있는 방법이 1745년 네덜란드 라이덴 지역의 과학자들에 의해 개발되었다. 라이덴병이라고 불리게 되는 일종의 축전기는 전기 성격을 연구하는 전환점이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던 것 같다. 변변한 유치원 하나 없는 시골 마을에 학교도 안 다니는 예닐곱 살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친구들과 모여 노는 것뿐이었다.뜨거운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엔 친구들과 마을 입구 개울가로 수영하러 가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 필자 고향 마을엔 ‘동쪽골’과 ‘저건너’라는 두 개의 큰 개울이 있다. 해가 뜨는 동쪽에 있어서 ‘동쪽골’, 마을 저 건너에 있어서 ‘저건너’ 라고 지어졌던 듯싶다.어린 시절엔 아무렇지도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불렸던 그 이름이 커서 생각해보니 참으로 성의없게 지어졌다는 생각에 헛웃
한여름도 아니고 초여름의 요즘 날씨가 진짜 무덥다. 무더위가 물과 더위가 합쳐진 ‘물더위’에서 유래되었다는데 진짜 요즘이 물더위다. 지난주 장마가 계속되고 소강상태인 지금(7월 6일)은 물과 더위가 합쳐져 사람의 진을 빼고 있다.하지만 지난주 장마철에 아주 재밌는 경험을 했다. 비만 내리기 시작하면 밤마다 울어대는 어떤 소리가 며칠째 계속 되었다. 소리가 너무 컸다. ‘수컷아 얼른 암컷을 찾아 결혼하고 그만 울어라. 밤마다 오늘 밤이 마지막이길 바랐다.웬걸, 아니다. 다음날이면 또 어김없이 아주 큰소리로 암컷을 찾는다. 아니 한 마
에 명의로 나오는 화타는 조조의 두통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도끼로 머리를 쪼개어 뇌 속에 있는 병의 근본을 치료하겠다고 제안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한 조조는 화타를 옥에 가두게 했고, 화타는 옥중에서 사망했다.연의에서는 화타의 뛰어난 의술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조조의 두통을 치료하는데 어려움을 겪던 중 부인이 아프다는 핑계로 고향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두통에 시달리던 예민한 성격의 조조는 치료 방법에 대해서 확신을 주지 못한 화타에게 불만을 가졌으며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격노
장마가 시작되었다. 내리던 비가 잠시 주춤하다가 또다시 소나기처럼 퍼붓고 잠잠해지나 싶다가도 추적추적 오기 시작한다. 길을 걸을 때 신발이 젖는 것을 생각하면 장화를 신어야겠지만 발에 땀이 차는 것까지 생각하면 슬리퍼나 고무신(젤리슈즈)이 오히려 편하다. 발도 발이지만 많은 양의 비 때문에 축축한 공기 안에서 이러다가 모두가 물이 될 것 같다.비가 많이 오면 가장 좋은 곳은 습지일 것이다. 습지의 신비로운 모습과 그 진정한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다. 가까운 곳에 논이나 연못이 있다면 지금 바로 가봐야 한다.지금 논은 모내기 후 작은
‘시골 쥐와 도시 쥐(때론 서울쥐)’라는 우화가 있다. 서로의 집에 놀러 가서 겪게 되는 이야기로 시골 생활과 도시 생활의 차이점으로 일어난 해프닝을 담고 있다. 요즘 필자는 사정이 있어 일주일 중 평일에는 주로 도시인 용인 수지구에 있고, 주말엔 시골인 처인구 원삼면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골과 도심을 오가며 서로 다른 것에 대해 새삼 실감하고 있다. 그 두 마리의 쥐처럼 말이다.오전에 시간이 날 경우엔 집 앞에 있는 광교산에 오른다. 물론 광교산은 용인과 수원에 걸쳐 있을 만큼 엄청 크고 넓어 뻗어 나간 한 자락에 잠시 오
1967년 미국 뉴욕 베스 이스라엘 병원에 일본인 레지던트 신야 히로미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진행되던 내시경 검사법 연구 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다.광섬유가 소개되면서 빛을 모아 인체 내부 장기에 조명을 주고, 동시에 내부 영상을 카메라를 통해서 관찰하는 것이 시도되고 있었다. 곡선이 적은 인체 내부 영상은 간단한 장비로 접근 가능했지만 굴곡이 많고 꼬임이 많으며 1미터가 넘는 길이를 관찰해야 하는 대장과 소장은 쉽지 않았다. 당시 기술로는 30~50cm 정도의 구불결장까지가 한계였다. 격렬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마
매일 아침이 참 신선하다. 나뭇잎들은 하루가 다르게 그 색이 짙어지고, 바람은 그 사이를 지나다니며 나뭇잎들을 잠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바람과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에 귀가 즐겁다. 나뭇잎의 춤사위에 마음도 덩달아 춤춘다.아침부터 수업 준비로 분주하다. 집에서 꽤 먼 초등학교 수업을 하러 가는 날이었다. 일주일 내내 어떻게 수업할지 고민했다. 수업 날 아침 즐거운 긴장감이 계속되었다. 일찍 가서 준비물을 확인하고 수업할 장소를 둘러봐야 했다.수업은 나뭇잎이었다. 우선 바람과 햇빛과 온도가 높은 요즘, 잎의 증산작용을 알아보기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