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서 씨가 날아왔는지 작년엔 보이지 않던 구릿대가 지난봄부터 마당 끝자락에서 자라고 있었다. 키가 2m 가까이 자라는 잡초(필자 기준엔)인지라 더 자라기 전에 뽑을까 말까 고민을 엄청 했더랬다.

산호랑나비 번데기
산호랑나비 번데기

그러다 문득 몇 년 전 아이들과 수업하던 중 구릿대에서 발견한 산호랑나비 애벌레 생각이 나서 일단 뽑지 않고 살려두었다. 거기에다 구릿대에겐 운 좋게도, 필자에게는 우울하게도, 봄 끝자락에 다리를 다쳐 근 두 달 동안 마당 근처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소파에 누워 풀이 쑥쑥 자라는 마당을 한없이 쳐다보기만 하는 게 올 여름 필자의 일상이었다. 꽃들은 풀 속에 파묻혀 형태를 알 수 없었고, 잡초보다 생명력이 약한 몇몇 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게 마당인지, 정원인지, 풀밭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만 빙빙 돌려대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드디어 지난주 깁스를 풀고 걸을 만해지니 마당으로 출근했다. 풀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막막한 마당을 바라보며 한숨 쉬고, ‘그래도 할 수 있다!’ 마음 다잡으며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조금씩 풀을 뽑았다.

구역을 나눠서 풀을 뽑는데 뽑힌 풀들이 쌓이며 산더미를 이뤘다. 여전히 풀이 우세하지만 풀 뽑은 자리에 수줍게 피어있는 꽃들을 보노라니 풀은 보이지 않고 꽃만 보였다.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자족한다.

그렇게 비 오는 날은 비를 맞으며 땡볕엔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풀과 전쟁을 하다 보니 마당 끝자락까지 왔고, 봄에 뽑지 않았던 구릿대를 보게 되었다.

산호랑나비 애벌레
산호랑나비 애벌레

몇 주 전 어슴푸레 흰색 꽃이 핀 모습을 봤는데, 꽃은 다 사라지고 초록색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다. 누구 짓인가? 아! 초록색 애벌레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봄에 잠시 ‘산호랑나비 애벌레가 생길까?’라고 고민하며 뽑지 않고 남겨놨던 선택이 옳았다며 나를 칭찬했다. 10마리는 족히 넘어 보였다. 아직 어린 애벌레부터 번데기가 되려고 준비 중인 녀석까지 크기도 다양했다.

산호랑나비 애벌레는 초록색 몸통에 선명한 검정 노랑 무늬가 있으며 사람 손가락 굵기 정도로 자란다. 털이 없어서 징그러운 느낌보다 귀여운 느낌이 드는 친근한 벌레로 살짝 건드리면 ‘취각’이라고 하는 주황색을 띠는 뿔을 세우는데, 평소 먹이로 먹는 식물 냄새를 저장하고 있다가 위험한 상황이 되면 냄새로 상대방을 위협한다.

위협하려고 내미는 주황색 뿔마저도 귀엽다. 산호랑나비 애벌레는 편식쟁이다. 미나리나 방풍나물, 당귀, 구릿대 등 향이 강한 산형과 식물을 먹고 자란다.

몇 년 전에 어르신들이 잘라버린 구릿대에서 애벌레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키운 적이 있었다. 다행히 집에서 당귀를 키워 당귀잎을 먹이로 주었는데, 키우는데 까다롭지 않아 번데기가 돼 나비로 부화하는 과정까지 볼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부화시킨 산호랑나비
몇 년 전에 부화시킨 산호랑나비

산호랑나비 애벌레들을 생각하자니 갑자기 걱정이 앞섰다. 기와 지붕 사이에 참새들이 집을 지었고, 옆집 처마 밑엔 제비들이 살고 있다. 멧비둘기들이 마당을 활보하고, 까마귀들이 집 옆 전봇대에서 쉬고 있다.

구릿대 잎도, 꽃도 다 갉아 먹어 먹이도 바닥이 났다. 아직 애벌레의 공격을 받지 않은 구릿대를 찾아야겠다. ‘동네 어르신네 방풍나물 잎이라도 뜯어다 줘야 하나?’ 오지랖을 피운다. 이 어려운 상황을 잘 견뎌내면 몇 주 뒤엔 마당에 아름다운 산호랑나비들이 날아다닐 것이다.

마당엔 아직 꽃들이 많이 피어있어 나비로 부화하면 먹이를 구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힘내길 바란다, 산호랑나비 애벌레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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