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에 명의로 나오는 화타는 조조의 두통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도끼로 머리를 쪼개어 뇌 속에 있는 병의 근본을 치료하겠다고 제안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한 조조는 화타를 옥에 가두게 했고, 화타는 옥중에서 사망했다.

화타(출처 위키백과)
화타(출처 위키백과)

연의에서는 화타의 뛰어난 의술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조조의 두통을 치료하는데 어려움을 겪던 중 부인이 아프다는 핑계로 고향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통에 시달리던 예민한 성격의 조조는 치료 방법에 대해서 확신을 주지 못한 화타에게 불만을 가졌으며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격노한 것이다. 조조는 화타에 대해서 “천하에 이런 쥐새끼 같은 자는 없어야 한다”며 비난하고 가혹한 고문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

다소 과장이 있지만 당시 의료인으로 높은 평가를 받던 화타조차 의료인 폭행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근대 이전에 질병의 치료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확한 질병의 기전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회복된 사람들이 사용했던 약초나 치료 방법에 대한 경험이 전부였다.

같은 질병에도 수백 개의 치료방법이 시도되고, 반대로 약방의 감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가지 치료방법이 수백 개의 증상을 조절하는데 동원되기도 했다.

치료 방법에도 다양한 의식이나 주술적 요소도 가미되었다. <동의보감>에도 부적과 주문을 외워서 치료하는 방법이 등장하기도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동쪽을 바라봐야 한다는 구절이 등장하거나, 쇠붙이에 의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약재를 구하기 위해 단옷날 아침에 네 방향에 위치한 초목의 줄기와 잎을 채취하라는 구절도 나온다. 이런 의식과 주술적 요소들은 결국 치료의 효과가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에 알려진 약초에 대한 정성스러운 태도로 보완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서구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기원전 21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에는 수술에 실패한 의사의 손을 자르게 하는 형벌이 기재돼 있다. 이런 형벌이 있었다는 것은 당시 열악한 의료 수준으로 환자를 호전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의사들에 대한 환자나 보호자들의 물리적 위협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 과학기기의 발명과 세균의 발견 등 질병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가 시작되면서 양상은 바뀌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질병의 치료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체계적인 접근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자신감도 항생제가 발견되기 이전까지 세균 감염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1891년 루크 필데스가 그린 의사라는 제목의 그림은 당시 의료인의 진료 형태와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의사는 가정에서 신음하고 있는 환자 옆에서 질병의 경과를 한없이 보고만 있어야 했던 것이다. 반면 사람들은 환자 곁을 지켜주는 의사의 모습에 큰 호응을 했다.

항생제가 개발되고 각종 검사 방법이 나타나면서 의사의 역할은 달라졌다. 적극적인 수술이 진행되었고, 과거에는 회복되지 못하던 환자들이 생명을 구하게 되면서 치료의 중심은 집에서 의료기관으로 이동했고, 각종 장비가 동원되었다. 과거에 포기했던 환자들이 의료기관에 모이면서 진료 대기시간은 길어졌다. 오랜 대기시간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예민하게 했으며, 과중한 업무로 지친 것은 의료진도 마찬가지였다. 의료진의 관심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갈등은 시작되었다.

루크 필데스 의사(1891)
루크 필데스 의사(1891)

첨단 의학 장비들이 속속 개발되면서 의사들은 진료에 필요한 정보를 주관적인 환자의 면담에서 계측화한 수치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런 작업은 질병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치료하는 점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환자와의 소통에 있어서 취약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든 환자가 회복하는 것이 아니고, 특히 위험도가 높은 외과적 수술 분야에 있어서 충분한 상호관계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1892년 미국 테네시주의 한 의사가 치료에 불만을 품은 부부로부터 길거리에서 공격을 받았다. 성실하고 신중한 의사로 신망이 높았던 의사였지 치료 결과에 따른 비난과 협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총기가 허용된 미국의 경우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1980년대 100여명의 의사가 살해당했고, 50%가 넘는 응급실 종사자가 무기로 위협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구에 비해 현대의학의 도입이 늦고 의료시설이 부족했던 아시아 지역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인도의 경우 75%의 의사들이 진료 중 폭력 피해를 입었으며, 중국의 경우 매년 수십명의 의사가 사망하자 급기야 2020년부터 금속탐지기 등 보안검색대를 설치한 곳이 나타났다.

의료진에 대한 불만 원인으로는 대기시간, 의료진의 행동에 대한 환자나 보호자의 반응이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진료 과정은 변수가 많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과거 버스를 기다릴 때 언제 도착할 지 몰라 5분도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감정이 의료현장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전문화된 의료분야에 옳고 그름보다 결과를 전달하는 행동과 태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의료진의 입장에서 큰 의미가 없는 발언이나 행동을 환자나 보호자는 더 심각하게 여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불만을 증폭시키는데 정부와 언론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의료 분야의 발전으로 많은 비용이 발생하게 되었다. 의료비를 줄이려는 정부는 비용 절감을 요구하는 규정을 만들어 이를 위반할 경우 불법으로 규정하며 홍보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신속항원 검사에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자 일부 언론에서 소수 의료진의 일탈된 행동을 선정적인 제목으로 전달하고, 인터넷 업체들은 무분별하게 댓글을 허용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켰다.

최근 한국에서도 진료 과정에 불만을 품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엄중한 처벌과 응급실의 보안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강력한 대응만이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모든 의료진은 환자의 완치를 기대하며 진료에 나선다.

그런 사실을 시민들이 알고 이해하는 사회적 환경이 필요하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도 갈등을 줄이고 배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정책적 지원을 한다면 모든 시민이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진료받아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화타를 처형했던 조조는 사랑하던 아들 조충이 위독해지자 땅을 치며 후회했다고 한다. 이미 죽은 화타는 조조의 아들을 치료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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